영동의 바람, 물, 햇살이 키워낸 무공해 버섯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시골마을에선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간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오래된 구멍가게, 며칠 전 내린 눈이 그대로 머물러 있는 낮은 돌담, 그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소꿉장난에 한창인 동네 아이들….
그리고 마을 이름을 딴 작은 간이역에 멈추는 무궁화호 열차. 경부선의 정중앙에 자리 잡은 황간역은 한때 석탄 수송용 화물열차가 정차하는 제법 큰 규모였으나, 2000년대 이후 이용객이 급감하면서 쇠락했다. 고속철도 개통 이후로는 무궁화호 열차만 하루 14차례 정차할 뿐, 대부분의 열차들은 멈춰 서지 않고 쏜살같이 황간역을 지나친다.
구름도 쉬어가는 고즈넉한 시골 마을도 외지인들로 북적이는 때가 있다. 버섯이 자라는 8월부터 10월까지, 무공해 버섯을 따기 위한 사람들의 발길이 전국 곳곳에서 이어진다. 추풍령 등산을 왔다 영동 임산 5일장을 찾는 등산객들도 많다.
“내가 오늘 새벽 일찍 직접 따온 무공해 버섯이여. 시장에서 파는 거랑은 맛도 향도 다르제.”
돗자리 가득 버섯을 펼쳐놓은 할머니의 구수한 입담과 넉넉한 인심, 산내음 가득한 자연산 버섯의 향에 이끌려 양손 가득 버섯을 사가는 사람들. 버섯철이면 점심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버섯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니, 자연산 버섯을 맛보려면 서둘러야 한다. 버섯은 균사가 땅이나 나무에 퍼지면서 자라는데, 한번 퍼진 균사는 그 땅과 나무에서 산다. 그래서 전국 어디서나 야생버섯을 볼 수 있지만, 오래전부터 균사가 많이 퍼진 곳, 버섯이 많이 나는 지역이 따로 있다. 추풍령 자락에 둘러싸인 영동군의 크고 작은 산에는 송이, 능이버섯 등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귀한 버섯부터 가지버섯, 닭다리버섯, 싸리버섯, 밤버섯 등 야생에서만 자라는 희귀한 버섯들이 풍부하다. 영동의 자연환경은 야생버섯의 서식지로 적합할 뿐만 아니라 표고버섯의 재배지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다. 1960년대부터 표고버섯 재배를 시작한 영동군은 현재 90여 가구에서 표고를 생산 중이다. 영동 지역을 둘러싼 산자락에는 표고버섯 종균을 접종할 참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고, 물한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버섯을 잘 자라게 하는 습기가 가득 담겨 있다.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추풍령 덕분에 밤낮의 일교차가 커 이곳에서 생산한 표고버섯은 육질이 두꺼워 씹는 맛이 좋고 향이 뛰어나 전국 최고의 품질로 인정받고 있다.
‘영동표고’는 고산준령이 병풍으로 둘러싸인 지리적 입지 조건과 낮과 밤의 큰 일교차로 육질이 두껍고 맛과 향이 뛰어나 전국 최고의 품질로 인정받고 있다.
1년 내내 자연산 버섯을 맛보다 <대가복궁>
황간역과 나란히 마주하고 있는 버섯요리전문점 <대가복궁>. 버섯이 나지 않는 계절에도 영동에서 나고 자란 자연산 버섯을 맛볼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주말이면 이곳을 찾는 외지인들로 한적한 동네가 활기를 띤다. 1년 내내 자연산 버섯의 맛과 향을 고스란히 상에 올리기 위해 남편 김동일 씨는 여름이 무르익어가는 8월부터 늦가을까지, 매일 새벽 4시 반이면 집을 나선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푸른 새벽, 불빛 하나 없는 산길을 오르는 발걸음에 망설임이란 없다.
“여기 영동에서 나고 자랐으니까요. 어렸을 때부터 산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버섯도 따고 칡뿌리도 캐 먹고 그랬죠. 버섯이 나는 곳은 이제 눈 감고도 찾을 수 있죠.”
버섯이 많이 나는 곳은 산의 7부 능선을 넘는 고지대, 사람의 발길이 뜸한 곳에 은밀하게 숨어서 자라기에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영동 버섯이 유명해지면서 버섯철이면 전국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이른 새벽길에 나서지 않으면 반도 채 차지 않은 배낭을 짊어지고 산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렇게 3개월 동안 누구보다 일찍 산에 올라 5시간 동안 딴 버섯 중, 그날 사용할 버섯을 제외하고는 깨끗하게 씻어 염장한 후 창고에 보관한다.
겨우내 얼었던 대지가 녹고 새봄의 기운을 머금은 봄나물들이 나기 시작하면, 아내 차영미 씨의 손길이 바빠진다. 산 머위, 오가피, 고사리 등 봄나물을 채취해서 일부는 봄 햇살에 바짝 말리고, 일부는 장아찌로 담가 보관한다. 덕분에 <대가복궁>에서는 1년 내내 자연산 버섯과 봄나물을 맛볼 수 있다.
영동의 특산품 ‘버섯’으로 차려 낸 자연의 건강 밥상. 황간역 앞에 자리한 대가복궁에서 버섯요리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영동 버섯으로 차린 정직한 밥상
<대가복궁>의 다양한 버섯 메뉴 중에서도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음식은 갖가지 버섯이 푸짐하게 들어간 시원한 버섯전골이다. 영동의 산자락을 다니며 직접 딴 가지버섯, 싸리버섯, 밤버섯 밀버섯에 영동에서 재배한 표고버섯과 양송이, 느타리, 모기, 팽이버섯까지 8~9종류의 버섯을 푸짐하게 깔고
그 위에 미나리, 양파, 쑥갓을 숭숭 썰어 넣는다. 마지막으로 다시마, 무, 파뿌리, 명태머리 등 6가지 재료를 넣고 끓인 육수를 붓고 보글보글 끓이면 버섯전골 완성.
손님들이 버섯 특유의 향과 맛을 음미할 수 있도록 최대한 깔끔하게 끓여내 갖은 양념에서 오는 텁텁함도 전혀 없다. 덕분에 싸리버섯은 향이 강하고, 가지버섯은 씹는 맛이 부드럽고, 밤버섯은 고소한 맛이 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음식 맛에 민감한 미식가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함께 나오는 6~7가지 밑반찬은 하나같이 깔끔하고 맛깔스럽다. 지난봄 만들어 놓은 머위장아찌와 며칠 전 직접 만든 아삭한 백김치까지, 자연의 건강과 안주인 차영미 씨의 손맛이 더해진 밑반찬은 어느 것 하나 구색 맞추기로 자리를 차지한 것이 없다.
덕분에 그 맛에 감탄하며 쉴 새 없이 먹다 보면 어느새 “공깃밥 추가”를 외치게 된다.
항암, 소화 기능에 뛰어난 능이버섯 무침과 토종닭에 능이버섯을 넣고 끓여낸 능이백숙 역시 <대가복궁>에서 꼭 한 번 맛봐야 할 메뉴다. 가을 산에서 직접 채취한 능이버섯을 급냉동시켰다가 최소한의 양념으로 무쳐낸 능이버섯 무침은 능이의 맛과 향, 쫄깃한 식감이 그대로 살아 있어 그 맛을 잊지 못해 다시 찾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할아버지 때부터 대대로 음식 장사를 해왔어요. 저희도 중국집, 일식집을 거쳐 4년 전에 대가복궁을 시작했죠.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가장 강조하신 것이 정직하게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손님의 상에 가장 좋은 것만 올려야 한다고.”
부부가 영동의 산 구석구석을 다니며 채취한 버섯과 산나물로 만든 음식을 손님상에 올리는 이유, 자연에서 얻은 음식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자연의 맛과 향이 그리워지면, 가장 느린 열차에 몸을 싣고 추풍령 산자락에 자리한 작은 간이역으로 향할 것이다. 고즈넉한 세월의 흔적과 마주한 그곳에 자연산 버섯의 맛과 향을 오롯이 담고 있는 정직한 밥상이 있는 곳, <대가복궁>이 있으니 말이다.
대가복궁 043-742-4036 / 충북 영동군 황간면 하옥포2길 11
영동의 또 다른 버섯 맛집
+ 대동버섯칼국수
버섯과 야채를 넣고 끓인 버섯삼색칼국수.
향토음식경연대회에서 동상을 받았다. 백년초, 솔잎, 보리를 넣어 반죽한 삼색국수가 식감을 더한다. 버섯과 야채가 푸짐하게 담긴 웰빙 칼국수다.
전화 043-745-6617
주소 충북 영동군 심천면 국악로 27
+ 아리랑가든
산에서 채취한 자연산 능이버섯으로 끓여낸 능이버섯전골이 유명하다. 산지가 아니면 절대 맛볼 수 없는, 흔하지 않은 자연산 야생 버섯을 푸짐하게 넣어 함께 나온다.
전화 043-744-0203
주소 충북 영동군 영동읍 학산영동로 1039-20
믿을 수 있는 영동버섯 구입하기
우체국쇼핑(mall.epost.go.kr) 1588-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