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의 강이 키운 풍천장어
고창 선운사 앞을 흐르는 주진천. 밀물과 함께 바닷바람이 강하게 밀려오는 강이라 하여 풍천이라고 한다.
전국 어디를 가도 ‘풍천장어’란 간판을 단 음식점을 찾아보기가 어렵지 않다.
어느 순간부턴가 ‘장어=풍천’이라는 등식이 당연한 것이 되었고, ‘풍천장어’는 맛있는 장어를 대표하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정작 ‘풍천장어’의 유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풍천’을 지명으로 알고 있으니 말이다. 바람 풍(風)에 내 천(川)을 더한 풍천은 ‘밀물과 함께 바닷바람이 강하게 밀려오는 강’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특정 지명을 일컫는 단어가 아닌 것이다. 전북 고창 선운사 앞을 흐르는 주진천도 예로부터 풍천이라 불렸다. 밀물 때 서해의 바닷물이 흘러들어오면서, 강한 바람이 함께 몰려오기에 붙은 이름이다. 민물에서 5~12년을 살던 장어는 알을 낳을 때가 되면 바다로 나가 생을 마감한다.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잃은 새끼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어미가 살았던 강으로 향한다. 다른 지역보다 강한 바람을 뚫고 풍천(주진천)까지 거슬러 올라온 장어는 그 힘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장어가 산란을 위해 바다로 향할 때면 바다와 강이 만나는 주진천 하구에는 손으로 건져도 잡힐 만큼 장어가 풍성했고, 그 맛 또한 뛰어나 ‘풍천장어’는 장어의 대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풍천장어의 유명세와 함께 급격하게 늘어난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자연산 장어의 개체 수도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자연스럽게 주진천을 중심으로 장어 양식장이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했고 현재는 약 500여 곳의 양식장에서 장어를 키우고 있다. 다른 수산물과는 달리 장어는 인공적으로 부화가 불가능하다. 봄이 되면 바다에서 주진천으로 거슬러 올라온 치어를 잡아 1년 동안 양식장에서 키우기 때문에 그 맛과 영양이 자연산 풍천장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양식장에서 사람 손에 의해 길러지는 장어지만, 이 역시 ‘풍천장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0년을 이어온 풍천장어의 맛
선운산 밑을 유유히 흐르는 주진천 옆의 오래된 식당. 40년 전통이라 적힌 간판이 ‘풍천장어’란 간판을 달고 길게 늘어선 가게들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띈다. 1972년에 문을 연 이후로 터를 한번 옮기긴 했지만, 대를 이어 ‘풍천장어’의 맛을 지켜오고 있는 연기식당. 이곳에 가면 풍천장어 맛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다.
“시부모님께서 1972년에 주진천 다리 밑에 작은 가게를 열고 풍천장어구이를 팔기 시작하셨어요. 지금이야 고창 어디를 가도 ‘풍천장어’를 파는 식당이 즐비하지만, 당시에는 저희 식당을 포함해서 장어가게는 3곳밖에 없었어요. 어부들이 배를 타고 다니며 풍천 강에서 잡은 장어 중에서도 가장 실한 장어만을 깐깐하게 골라 손님상에 올렸는데, 그 맛을 잊지 못해 지금까지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이 많이 있죠.”
작은방에 고작 테이블 3~4개를 놓고 하는 장사라, 연기식당의 풍천장어를 맛보려면 한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했던 시절. 날이 좋은 여름이면 기다리다 지친 손님들이 다리 밑에 돗자리를 펴고 장어를 먹기 시작했고, 주진천을 바라보며 먹는 장어 맛은 또 다른 별미였다. 그 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2000년 다리 공사로 인해 가게를 이전하게 됐을 때도, 주진천이 보이는 지금의 장소를 택했다.
2000년대 이후로 주진천 주위로 우후죽순 생겨난 장어집들이 장어를 활용한 다양한 퓨전음식들로 메뉴판을 채우는 것과는 달리, 연기식당은 40년 전 그대로 오로지 소금구이와 양념구이장어만 판다. 대를 이어 온 ‘풍천장어’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참 간결한 메뉴판이다.
연기식당을 시작한 부모님은 세상을 떠나셨지만, 아들 이상균 씨와 며느리 정영옥 씨는 ‘좋은 재료를 사용해 정성 들여 정직하게 만들라’는 부모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연기식당의 장어 맛을 지켜가고 있다. 주진천에서 직접 잡은 자연산 장어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근처 양식장에서 키운 장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장어를 고를 때는 깐깐하기가 혀를 내두를 정도다. 덕분에 ‘연기식당’을 찾는 오래된 단골들은 40년이 흐르고, 부모에서 자식으로 주인이 바뀐 지금도 한결같은 풍천장어의 맛을 볼 수 있다.
연기식당 장어구이는 껍질은 바삭하면서도 쫄깃하고, 속살은 금방 녹아버릴만큼 부드럽다. 복분자 한잔을 곁들이면 그 맛이 단연 으뜸이다.
연기식당에는 고창의 맛이 있다
연기식당의 40년 세월 이야기가 끝날 무렵, 장어 굽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정영옥 사장이 장어를 굽는 중이다. 어찌나 집중해서 장어를 굽는지, 바로 뒤에서 한참을 바라보고 있어도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덕분에 주인의 장어 굽는 솜씨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깨끗하게 손질한 장어에 연기식당의 특제 소스를 골고루 바른 후 앞뒤로 뒤집어 가며 굽기 시작하는데, 짧은 시간에 총 10번을 뒤집어 가며 수시로 소스를 덧바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잠시만 딴짓을 해도 양념이 타거나 너무 많이 익어 질겨지기 때문에 장어를 굽는 동안은 말조차도 아낀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장어구이가 완성된 후에야 “좋은 장어를 사용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정성껏 굽는 일”이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최근에는 손님이 상에서 직접 장어를 굽는 식당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추세지만, 연기식당은 40년 전 방식 그대로 장어 한 마리 한 마리를 10번씩 뒤집어가며 손수 구워 상에 낸다. 장어를 굽던 화로가 전용 화덕으로 바뀌었을 뿐, 장어를 굽는 방법도, 정성도 그대로다.
“손님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주말에는 전통 방식 그대로 장어를 굽는 일이 쉽지가 않아요. 직원 3~4명이 화덕 앞에서 장어만 굽는데도 정신이 없죠. 그래도 부모님 때부터 꾸준히 찾아주시는 단골들의 ‘예전 맛 그대로’라는 칭찬 한 마디면 힘들었던 것이 한 순간 사라진답니다.”
손님이 없는 시간이라고 연기식당의 주방이 한가한 것은 아니다. 직접 담근 고추장에 갖은 양념을 더한 후 12시간을 끓여 특제 소스를 만들고, 손님상에 오를 백김치와 각종 반찬들을 만들다 보면 잠시도 쉴 틈이 없다. 드디어 연기식당의 40년 노하우가 고스란히 담긴 푸짐한 상이 차려졌다. 깨보숭이, 깻잎, 파김치, 백김치, 묵은 김치까지 고창에서 자란 농작물로 소박하게 차린 밑반찬은 깔끔하고 담백하다. 깻잎에 백김치를 찢어 올리고 부추를 듬뿍 넣은 후 장어 한 점을 올려 먹으니, 그 맛이 기가 막히다. 장어 껍질은 바삭하면서도 쫄깃하고, 장어 속살은 살살 녹을 만큼 부드럽다. 속까지 양념이 골고루 배어 접시를 깨끗하게 비울 때까지 비린내나 느끼함 없이 담백하게 먹을 수 있다.살이 통통하게 오른 풍천장어구이에 정영옥 사장이 고창의 복분자로 직접 담근 복분자주를 곁들이니, 풍천장어와 복분자가 왜 고창을 대표하는 먹거리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고창의 강이 주는 선물, 풍천장어와 비옥한 고창의 땅에서 자란 복분자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연기식당을 추천한다. 그곳에 가면 40년을 지켜온 고창의 맛이 있다.
연기식당
전북 고창군 아산면 선운대로 2727. 063-561-3815
풍천장어 맛집
+ 청림정금자할매집
소금구이, 된장구이, 양념구이, 복분자구이의 다양한 장어를 맛볼 수 있는 곳. 알맞게 구워진 장어를
상추에 올려 뽕잎, 복분자양파장아찌, 대파구이, 부추, 미나리, 마늘을 넣고 함께 싸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주소 전북 고창군 아산면 인천강서길 12.
063-564-1406
+ 해주가든
선운사 가는 길에 처음 보이는 장어집이 해주가든이다. 장어구이뿐만 아니라 오리주물럭과 칼국수도 있어 장어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도 함께 즐길 수 있다. 후식으로 나오는 장어누룽지탕도 맛있다. 함께 나오는 밑반찬은 종류도 다양할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깔끔하고 맛있다.
주소 전북 고창군 아산면 선운대로 2781.
063-564-9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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