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불평도 나약함도 한꺼번에 날려주는, 맛있는 밥이 있어.
-만화 <고독한 미식가> 중에서
굳이 만화책이나 영화, 드라마를 들춰보지 않아도 ‘혼밥’과 ‘혼술’은 이제 식당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상적인 풍경이 되었다. 아무리 피곤하고 힘든 하루였어도, 맛있는 저녁만은 혼자 즐길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힘겨운 하루를 견디는 위안을 찾는 ‘고독한 미식가들’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 그런데 혼자 밥을 먹는 것은 아무래도 인간의 본성은 아닌 것 같다. 그것이 완전히 즐거운 일이라면, 우리는 혼자 밥을 먹을 때 일부러 텔레비전을 켜거나 휴대폰을 보거나 하면서 ‘혼자 밥먹는 순간의 심심함과 외로움’을 잊기 위한 보상적 행동을 전혀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식사 자체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것’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신문을 읽거나 식당 안의 텔레비전을 보는 분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대부분 휴대폰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보다 간편하게, 보다 효율적으로 외로움을 잊을 수 있는, 어른들의 장난감이 된 휴대폰 덕분에 우리는 혼밥과 혼술을 좀 더 민망하지 않게 즐길 수 있게 된 셈이다.
문화의 차이에서 달라진 동서양 혼밥
수렵과 채집이 먹거리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시절, 인간은 대체로 혼자 밥을 먹지는 않았다고 한다. 무리지어 생활하는 것이추위와 배고픔, 동물들의 공격이나 폭풍우 등의 자연재해에 대응하기에는 훨씬 나았기 때문이다. 원시시대의 사람들은 물론 농경사회에이르기까지 사람들은 함께 밥 먹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으며, 먹거리를 함께 나누는 것을 인생의 중요한 쾌락으로 삼았다. 잔치, 파티, 축제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들의 공통점은 항상 ‘다함께 맛있는 음식’을 원없이 먹는다는 점이었다. 함께 먹는다는 것은 행복의 원천이었고, 풍요로운 계절에만 허락된 축복이었다.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급증한 것은 산업화 이후,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최근의 일이다. <심야식당>이나 <고독한 미식가> 같은 일본 드라마에서는 혼밥이나 혼술이 전혀 특이한 현상이 아니었다. 반면 우리나라의 혼밥과 혼술 문화만 발견되는 특히 재미있는 점은 ‘이왕 혼자 밥을 먹는다면, 반드시 맛있는 것을 먹겠다’는 열망이 유난히 강하다는 점이다. 그것은 우리나라 특유의 ‘눈치보기 문화’ 탓이 아닐까 싶다. 혼자 밥이나 술을 먹는 문화가 비교적 일찍 퍼져 있던 서양문화에서는 ‘혼자 먹을 때 꼭 더 잘 먹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덜하다.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하는 인구가 유럽에서는 50퍼센트가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혼밥과 혼술 문화는 좀 더 적극적이다. 사람들은 ‘같이 먹을 때 즐길 수 없는 것들’을 혼자 먹을 때 누리고 싶어 한다. 예컨대 상사와의 식사 자리에서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시키지 못하는 사람들, 그룹 단위로 몰려다닐 때에는 ‘다른 사람이 먹는 대로’ 시키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 ‘혼밥’과 ‘혼술’ 속에서 심리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눈치를 보는 문화, 나이나 직급에 따른 차별이 심한 문화에서는 ‘내가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말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하지만 혼자 먹을 땐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으니, 마음껏 혼자 먹고 싶은 것, 주변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 ‘나만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혼자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대
얼마 전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고르다가 이런 문구를 발견했다. ‘프로혼밥러를 위한 알뜰 도시락’이라는 문구였다. ‘프로혼밥러’라니, 흥미로운 표현이었다. 혼자먹기의 달인이 된 사람을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별다른 미식가이거나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혼자 밥을 제대로 먹기 위해 이것저것 부지런히 차려먹을 여유가 없다. 나도 혼자 먹을 때는 그야말로 ‘대충’ 끼니를 채울 때가 많다. 이제는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도시락이나 혼자 삼겹살을 구워먹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신개념 식당들까지 생겼으니, ‘혼밥’은 더 이상 특이한 문화적 현상이 아니라 1인 가구 시대의 자연스런 문화현상이 되었다.
1인 가구가 급증한 요즘 혼밥은 어느 정도 대중화가 되었지만, ‘혼술’ 은 여성들에게는 아직 어려운 도전이다. 혼자 먹는 술이 집에서는 가능하지만, 밖에서는 어렵다는 분들도 많다. 혼자 술 먹는 여성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아직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여성들이 얼마나 안전하고 자유롭게 혼자서도 술을 마실 수 있는지가 그 나라의 문화적 성숙함을 보여주는 척도가 될 수도 있다. 유럽여행 중에 가장 부러웠던 장면 중 하나는 남자든 여자든, 나이든 사람이든 젊은 사람이든 ‘혼자 있는 것’이 전혀 안쓰럽지 않고 무척 자연스럽다는 것이었다. 걸어다니면서 샌드위치를 먹어도, 거리나 공원의 벤치나 박물관의 계단 앞에 앉아서 도시락을 먹어도, 모두가 전혀 안쓰러워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욱 자유롭고 당당해 보였다. 누가 무엇을 하든 ‘서로 쳐다보거나, 신경쓰지 않는 문화’야말로 혼밥과 혼술 문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문화적 토대가 되지 않을까.
혼자 행복하게 즐기는 노하우 개발
‘혼자 먹는 사람들’도 편안하게 먹을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는 시선’이 사라지는 것이 혼밥과 혼술의 문화적 토대라면, ‘고독을 얼마나 즐길 수 있는가’야말로 혼밥과 혼술의 심리적 토대가 될 수 있다. 요리도 할 줄 알고, 혼자 있는 것도 괜찮지만, ‘혼자 밥먹는 것은 도저히 못하겠다’는 분들에게 아직도 어려운 것은 고독을 견디는 마음의 면역력이다. 나는 유럽여행 중에 혼자, 그것도 두 시간, 세 시간에 걸쳐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분들을 많이 보았다. 메뉴는 특별할 것이 없었지만, 그들이 혼자 밥을 먹으며 그 시간 자체를 즐기는 모습에 감탄했다. 그들에게 혼자 먹는 것은 타인의 시선을 견디는 고역이 아니라 ‘나혼자 있을 때 비로소 진정으로 나 자신이 되는 시간’처럼 보였다. 혼자 있다고 해서 전혀 청승맞거나 외로워 보이지 않고, 중간에 점원이 와서 잠깐씩 말을 걸 때마다 밝게 웃으며 농담을 하기도 하고, 신문을 보거나 책을 읽기도 했지만 주로 밥을 먹는 시간 그 자체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나는 아직 그 경지에는 오르지 못했다. 일단 식당에 혼자 앉아 2시간, 3시간을 버틴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고역이다. 한국인의 평균 식사 시간이 15분이라고 하는데, 나도 그 평균치와 비슷한 속도로 점심을 먹는 것 같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있고 나에게는 없는 것을 생각해보니, 바로 그 ‘마음의 여유’였다. 몇 시간이고 혼자 밥을 먹고 앉아 있어도 괜찮다는 그 마음이 나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혼자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는 데는 익숙하지만, 왠지 혼자 밥을 먹는 데 그렇게 오랜 시간을 쓸 수는 없을 것 같은 조바심. 바로 그 불안한 마음이 ‘혼밥’과 ‘혼술’을 진정으로 즐기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좀 더 당당한 삶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어떤 상황에서든 유연하고 자연스럽게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저마다 ‘혼밥’과 ‘혼술’을 ‘어쩔 수 없이’가 아니라 ‘아주 즐겁고 행복하게 즐길 수 있는 노하우’를 개발해야 하지 않을까.
자신에 대한 배려가 당당한 혼자 만들어
더 자연스럽게, 더 당당하게 혼자 있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자기를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혼자 있을 때도 예쁜 그릇에 밥을 담아 먹고, 싱크대 앞에 대충 서서 먹지 않고 반드시 식탁이나 밥상을 사용하고, 반사적으로 텔레비전을 켜기보다는 음악을 틀어놓고 촛불도 켜놓는 마음의 여유가 도움이 된다. 타인을 대접하기 위해 잘 차려먹는 것이 아니라, 오늘 수고한 나 자신을 위해 밥상을 차려보자.
그럴 땐 ‘이것만 있으면 나는 한 그릇 뚝딱이다’ 싶은 소울푸드가 있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나는 백석의 시를 읽으며 ‘혼자 밥 먹는 일’이 결코 외롭거나 쓸쓸한 일이 아님을 깨닫는다.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어서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우리들은 맑은 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하구 긴 날을모래알만 헤이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
바람 좋은 한벌판에서 물닭이 소리를 들으며 단이슬먹고 나이 들은 탓이다.
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자라난 탓이다.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이 희여졌다.
착하디 착해서 세괏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백석, <선우사(膳友辭)> 중에서
흰밥과 가재미만 있으면 이 쓸쓸한 저녁이 결코 쓸쓸하지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 이렇게 셋이서 밥을 먹으면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저 좋다는 것. ‘선우사(膳友辭)'라는 제목 자체가 반찬 친구들에게 바치는 이야기란 뜻이니, 이 얼마나 다정하고 친밀한가. 혼자 있을 때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내 곁을 둘러싼 아주 작은 존재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욕심도 사라지고, 눈치도 사라지고, 경쟁도 사라지는 곳. 그곳에서 혼자 먹는 밥과 혼자 마시는 술이야말로 내 방 안의 작지만 빛나는 유토피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