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은
인간을
길들인다
최민석의 <능력자>는 빨간 표지가 우선 독자를 유혹한다. 능력자라는 말의 사회적 뉘앙스도 그렇다. 우리는 동일 선상의 동료 중 누군가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을 두고 능력자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아예 우리와 계층이나 계급이 다른 사람을 두고 능력자라고 호명하진 않는다. 적어도 상대가 될 때, 하지만 무언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힘으로 나보다 좀 나은 것 같다 싶을 때 한 수 접듯이 “능력자”로 치켜올린다. 적어도 그를 능력자라 불러주며 나 자신의 얄팍한 자신감만은 챙겼다는 위안과 함께 말이다. 그런데 최민석의 <능력자>는 우리가 말하는 소위 이 “능력자”와는 거리가 좀 멀다. 오히려 능력자라기보다는 무능력자라고 말하는 편이 옳다. 우선 소설의 주요한 인물만 살펴봐도 그렇다. 등단은 했지만 유명작가라고 말할 수 없는 한 남자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의 엄마는 은퇴하겠다는 그의 말에 데뷔한 것도 사람들이 모르는 데 무슨 은퇴냐며 코웃음을 친다. 그는 작가이긴 하지만 작가라고 말하기 애매한 존재이다. 하지만 무명작가라도 작가는 작가이고 성년의 나이라면 적어도 자기 직업으로 생계는 연명해야 한다. 글을 써서 돈을 벌어야 하지만 작가 대접을 받으며 돈까지 벌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서 그는 야설, 그러니까 야한 소설을 쓰면서 “돈”을 번다. 돈을 버는 야설 작가로서의 “그”는 비록 무능해도 등단작가로서 자존심을 내세우는 그와는 또 다르다. 돈을 벌면서 자존감을 높이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작가들뿐이랴. 무릇 밥벌이는 대개 자존심을 존중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고상한 직업이라 해도 마찬가지이다. 돈벌이를 위한 일 그러니까 밥벌이, 직업의 숭고함은 자기 자신의 기분이나 자존심만으로 그 세계를 돌파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그러니까, 직업은 인간을 길들인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돈의 냉혹함은 인간을 길들인다. 매달 내야 하는 할부금, 돌아오는 아이들의 학원비 앞에서 끝까지 자존심만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희비극적
삶을 살아간
한 능력자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절체절명의 위기가 찾아온다.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기 위해 진짜 소설을 써야 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인류학과의 퀸카를 애인으로 둔 이 남자는 유명 평론가이자 유명 사립대 교수인 장래 장인의 기대감을 채워야만 한다. 장래 장인이 될지도 모르는 그분은 빠른 시일 내에 이천만원을 벌어 오라고 요구한다. 사실 그건 요구라기보다 시험이다. 웃지 않는 공주를 웃겨야 한다는 임무를 제시하듯 그가 딸아이의 애인이 될 만한지 시험해 보기 위해 이천만원이라는 목표를 내세운 것이다. 야설을 써서 벌기는 쉽다. 하지만 미래 장인의 요구엔 부끄럽지 않은, 정당한 돈벌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다. 그래서 드디어 우리의 작가, 화자, 주인공은 진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만한 사람을 수소문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사람이 바로 전직 챔피언 공평수이다. 희극적인 이름 공평수는 작가에게 ‘허락된 땅이 한 평도 없는 불운한 남자’로 받아들여진다. 공평수는 한 때 챔피언이었지만 현재엔 뇌에 남은 충격으로 생명에 위협을 받는 남자로 전락해있다. 생명만 위협받는 게 아니다. 그는 특이한 취향과 취미에 열심히 매달리며 자신을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전직 챔피언의 몰락, 하지만 작가 최민석은 이 비극적 사태를 웃음으로 넘나든다. 그는공평수라는 낙오자를 인생의 관대한 유머 속으로 끌어들인다. 매미처럼 나무에 매달리고 자신에게 초능력이 있다고 믿는 남자, 과거의 한 때를 인생의 전성기로 여기며 언제나 진행 중인 듯 낙관에 빠져 사는 남자, 공평수로 말이다.
공평수의 삶을 상흔으로 인한 고통에 빠진 남자로 그려낼 때 <능력자>는 비극적 정서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최민석은 비극의 정서를 한사코 거절한다. 말하자면 공평수는 “도무지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는 뇌 과학을 인용하며 “우뇌에 손상을 입은 사람은 현실감각이 떨어져 무턱대고 희망만 품는, 초 긍정적 인간이 된다”고 말한다. 과학적 설명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어쩌면 초 긍정적 인간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능력자일 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공평수는 그런 점에서 초 긍정의 능력을 가진, 진정한 능력자라고 말할 수 있다.
일상의 영역에서 보자면 공평수는 미치광이이거나 낙오자이다. 하지만 인생의 레이스에 승자만 있을 수는 없다. 영원한 챔피언도 없고, 유일한 승자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승리를 위해 노력하라고 말하지만 막상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패자들을 위한 말은 준비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개 우리는 실패를 경험한다. 실패를 준비할 필요도 있는 셈이다. 승리는 나의 것, 패배는 없어, 사람들은 그렇게 실패라는 말을 사전에서 지우며 애써 아닌 척한다. 그런 점에서 공평수는 실패를 경험했지만 그 실패를 낙오가 아닌 삶의 전환점으로 여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누구에게나 한번쯤 실패는 있기 마련이라는 점에서 공평수의 선택은 미치광이의 미친 짓이라고 볼 수 없다. 진정한 능력자는 바로 공평수이다. 그래서 “그”는 공평수를 만나, 공평수의 이야기를 듣고, 공평수의 삶을 목격하고 난 후 자기 자신의 삶을 그때야 비로소 삶을 받아들이게 된다. 공평수는 시합 종료 1분을 남기고 다운을 당하고, 열 번의 카운트가 지나간 이후에도 영원히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지만 결국 쓰지 않기로 한다. 공평수는 이미 자신의 삶 자체로 스스로를 입증했으니 그것을 간증하는 글자는 소용이 없다. 최민석의 <능력자>는 박민규의 초기 소설과 닮아 있다. 박민규의 소설처럼 승자독식의 모순적 세상을 유머러스하게 건드리고 페이소스로 다그친다. 울다 웃으며 공평수의 엉뚱한 짓을 따라 읽다 보면 그 가운데서 어떤 경건함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 삶은 이런 것 아닐까, 채플린의 말처럼,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인, 그런 것 말이다. 희비극적 삶을 살아간 한 능력자, 공평수의 삶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이유이다.
<능력자>. 최민석. 민음사
컬처트렌드
구성. 김혜련
이달의
신작
musical
심야식당
지친 당신, 영혼도 쉬어가는 곳
만화계의 스테디셀러 <심야식당>이 오는 12월 창작뮤지컬로 탄생한다. 배우 송영창, 박지일 등이 출연하는 ‘심야식당’은 말 그대로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심야에만 문을 여는 허름한 식당과 그곳을 찾는 손님들의 이야기이다. 손님이 원하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특별한 마스터가 있어 손님들은 각각 저마다의 사연이 담긴 소소한 음식들을 맛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음식을 통해 따뜻하게 위로받는 곳이 바로 ‘심야식당’이다. 특히 이번 공연은 오감을 자극하는 ‘맛’이 있는 무대로 꾸며진다. 손님의 추억이 담긴 주문음식에 위로레시피를 담아 마스터 역을 맡은 배우가 무대 위에서 직접 요리를 만들 예정이다. 문어소시지, 고양이밥 등 만화 속 그림으로만 보았던 메뉴들이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며 관객들의 시각, 청각뿐 아니라 후각까지 자극시킨다. 또한 캐릭터에 절묘하게 부합하는 연기파 배우들과 감칠맛 나는 연기로 극의 활력소가 되는 감초배우들의 연기도 주목할 만하다.
요즘 화두로 떠오르는 ‘힐링’ 레시피가 담긴 따뜻한 작품으로 연말 가족, 친구, 동료 모두와 함께할 수 있는 공연이다.
출연 : 송영창, 박지일, 서현철, 김늘메 외
2012년 12월 11일 ~ 2013년 02월 17일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 1544-1555
classic
호두까기 인형
크리스마스 최고의 선물!
매년 겨울 찾아오던 <호두까기 인형>이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온다. 1986년 초연되어 올해로 27년째를 맞이한 유니버설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은 신비하고 환상적인 무대와 수준 높은 춤이 어우러져 관객들로 하여금 살아 움직이는 동화책을 보는듯한 환상에 빠져들게 한다.
주인공 클라라는 꿈속에서 호두까기 인형 왕자님과 궁전에서 세계 각국의 춤을 추며 하룻밤을 보내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는다. 또한 2막에 등장하는 ‘마더진저와 봉봉과자 춤’에서 마더진저의 커다란 치마 속에서 10명의 어린이가 등장하는 장면은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귀여움으로 재미를 선사한다. 올해 공연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12월 31일 마지막 제야공연이다.
밤 10시에 시작하여 관객과 무용수들이 함께 카운트다운을 외치며 올해의 마지막 밤과 새해의 첫 순간을 함께하는 특별한 이벤트로 송년의 축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특별한 겨울 이벤트를 기대하고 있는 가족과 연인들에게 겨울의 스테디셀러 공연, <호두까기 인형>을 추천한다. 아름답고도 특별한 감동이 추억으로 자리하게 될 것이다.
2012년 12월 21일 ~ 2012년 12월 31일
유니버설아트센터 ☏ 070-7124-1737
exhibition
바티칸 박물관전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 만나다
Photo ⓒMusei Vaticani. All rights reserved ⓒ2012,GENIUS MMC
바티칸 박물관은(MUSEI VATICANI) 로마의 바티칸시국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미술관으로 한 해 방문객이 약 500만 명이 넘는 세계 최고의 박물관이다. 이번 전시회는 바티칸 박물관의 회화, 장식미술, 조각 등 르네상스 초기에서부터 전성기까지의 다양한 르네상스 시대 미술품이 전시된다. 바티칸 박물관의 대규모 기획전시는 이번이 처음으로, 한국 최초이다. 특히 르네상스의 3대 천재 미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광야의 성 히에로니무스’, 라파엘로의 ‘사랑’,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전시되며 시스티나 경당의 ‘천지창조’를 영상으로 재현한다. 이 외에도 바티칸 박물관의 대표작품인 ‘라오콘 군상’, 벨베데레의 ‘토르소’, 멜로초 다포를리의 ‘악기를 연주하는 천사’ 등 국내에 한번도 소개되지 않았던 대작들이 전시된다. 3대 천재 미술가의 작품을 비롯 우리 대중들과 교감할 수 있게 소개되어 르네상스 시대 예술의 아름다움을 직접 감상하고 바티칸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2012년 12월 8일 ~ 2013년 03월 31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 1544-8755
exhibition
2012 서울사진축제(축전)✽
시민 참여형 축제 열려
매년 서울 도심을 사진으로 물들였던 서울사진축제가 올해도 어김없이 개최된다. ‘천 개의 마을, 천 개의 기억’이라는 주제의 이번 축제는 ‘마을공동체와 사진 아카이브’를 테마로 서울시민과 전국의 네티즌들이 수집하고 촬영한 사진들로 이뤄지는 시민 참여형 축제이다. 서울 시민이 고이 간직해 온 앨범 속 사진들을 수집하고 선별하여 한 개인의 생애와 가족사, 마을사와 지역사로 나누어 전시되며 사진 속에서 개인의 역사뿐 아니라 서울의 역사도 함께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시민의 기록이 개인의 일상이라는 소중한 자료라면, 서울이라는 지역성을 파고들어 연구하며 열정적으로 서울을 기록해 온 작가들의 사진은 사진의 강력한 힘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변화되어 가는 공간으로서의 서울은 추억과 감동을, 반성과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사진 전시 외에도 사진학 연구자와 예술비평가의 강연으로 구성된 사진인문학 강좌, 작가의 경험과 작업 과정을 공유하는 작가·프로젝트 리포트, 대학생 사진 동아리 연합전 등 시민을 위한 다양한 부대 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다.
2012년 12월 30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서울시청사, 서울역사박물관 / www.seoulphotofestival.com
festival
제10회 보성차밭 빛 축제(축전)✽
빛으로 전하는 희망이야기
12월 14일 보성차밭 일원에 새해 희망을 기원하는 대형트리가 불을 밝힌다. 올해는 보성차밭 빛 축제가 10주년이 되는 해로 ‘빛으로 전하는 희망이야기’라는 주제로 연말과 새해를 맞아 차의 고장 보성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차별화된 경관과 프로그램으로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를 선사할 예정이다. 개막식 당일 오후 5시 30분 점등식을 시작으로 2013년 1월 27일까지 45일간의 겨울밤을 화려한 빛의 향연으로 수놓는다. 2000년 기네스북에 등록된 높이 120m, 폭 130m의 대형 밀레니엄 트리와 테마거리, 은하수 터널, 봇재다원에서 다향각 전망대까지의 경관조명, 빛의 거리, 포토존, 다짐의 계단 등 보성차밭을 불빛으로 이미지화하여 겨울밤 화려한 은하수 속에 있는 듯한 느낌과 환상을 선물한다. 특히 올해는 LED 조명을 이용하여 눈꽃이 내리는 듯한 분위기가 일품으로 꼽힌다. 소망카드에 새해 소원을 적어 은하수 터널에 달아보는 체험행사와 매주 관광객들과 함께하는 공연 등 다양한 볼거리도 펼쳐진다. 가족과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새해 소원과 다짐을 나눠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2012년 12월 14일 ~ 2013년 01월 27일
전남 보성군 봇재다원, 다향각 전망대 일원 / ☏ 061-850-5211~4
✽ 축전 : 축제의 순화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