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나이
서른
그리고
한국 문학을 부지런히 따라 읽는 독자라면 그리고 만약, 최근 한국 문학에 관심이 있다면 김애란은 주목할 만한 이름임이 분명하다. 김애란은 2000년대 초반 스무 살 무렵의 나이로 문단의 눈길을 끄는데 성공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김애란은 문단의 아이유였다. 김애란은 <나는 편의점에 간다>에서 편의점의 감성을 2000년대식 라이프 스타일로 조형해냈고 <달려라 아비>에서 아버지의 어깨에 놓인 짐을 덜어주었다. 아버지를 향해, 조금쯤 집을 벗어나 나태해도 좋다고 토닥이는 딸의 등장에 기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을까?
2011년 첫 장편이자 베스트셀러가 된 <두근두근 내 인생> 이후 <비행운>은 그 동안 김애란이 썼던 단편들을 모아 놓은 소설집이다. <달려라 아비>를 기억하는 독자에게는 상큼 발랄했던 20대 신예작가가 어떻게 30대에 접어들었는지 목격할 절호의 기회가 되어 줄 것이다. 한편으로, 그녀의 소설적 공간과 세계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 지 보여줄 수 있는 판단 지점이 될 수도 있는 결과물들이기도 하다.
<비행운>에는 2008년도 작품부터 2011년에 발표한 작품들까지 모두 8편의 소설들이 실려 있다. 표제작인 <비행운>은 국제공항 화장실을 청소하는 한 초로의 여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약간 어색한 이 제목은 행운의 반대말이 아니라 비행을 할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는 말 그대로 비행의 운이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 꼼꼼히 짐을 챙겨 국제공항에 도착했다고 해도 비행운이 없다면 결코 떠날 수 없다. 화장실 청소를 하는 그녀에게도 삶이란 그런 비행운과도 같다. 때마침 추석이라 국제공항은 연휴를 틈타 해외로 나가려는 사람으로 북적인다. 이 북적이는 인파 속에 그녀는 묵묵히 화장실을 청소하며 아들을 생각한다. 아들에게 가져다 줄 선물, 아들과 만나 나눌 이야기를 거듭 상상하는 걸 보니 떨어져 사는게 분명한 듯싶다. 그런데, 결국 밝혀지는 사실은 그녀의 소중한 아들이 지금 수감 중이라는 점이다. 민족의 대명절이라지만 그녀 곁에 가족은 없다.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하는 연휴 근무를, 그녀는 자청한다. 명절날 혼자 우두커니 집을 지키느니 일하는 게 더 낫기 때문이다.
사회를
보는
서른의 눈
김애란의 소설 속에는 이런 어긋남의 순간들이 늘 있다. 가령, 소설집 가운데서 가장 마음을 울리는 <서른>이라는 단편만 봐도 그렇다. 서른 즈음의 한 인물은 우연히 대학 시절 흠모하던 선배를 만나게 된다. 그는 “살아보니 사람이 제일 큰 재산인 것 같더라”라고 말하며 그녀의 곁을 파고든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는 다단계에 종사하고 있었고 결국 사람이 재산이긴 하지만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한 의미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탓이라고 할 것도 없이 그녀 역시 다단계에 빠져든다. 김애란이 말하는 서른의 세계라는 것이 이렇다. 스무 살이라는 터널을 지나면 밝은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고 여겼지만 서른은 스무 살 무렵보다 더 암담하고 혹독하다. 그들은 자신이 산 오백만원어치의 양파즙을 물 대신 먹어가며 나머지 삼백만원으로 산 비누와 칫솔, 양말 등을 써가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친구와 가족을 끌어들여 올라가는 더 높은 자리란 실상 아무것도 없는 빈 것이기 마련이다.
“저는 지난 10년간 여섯 번의 이사를 하고, 열 몇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두어 명의 남자를 만났어요. 다만 그랬을 뿐인데. 정말 그게 다인데. 이렇게 청춘이 가버린 것 같아 당황하고 있어요. 그동안 나는 뭐가 변했을까. 그저 좀 씀씀이가 커지고, 사람을 믿지 못하고, 물건 보는 눈만 높아진, 시시한 어른이 돼버린 건 아닌가 불안하기도 하고요. 이십대에는 내가 뭘 하든 그게 다 과정인 것 같았는데, 이제는 모든 게 결과일 따름인 듯해 초조하네요. 언니는 나보다 다섯 살이나 많으니까 제가 겪은 모든 일을 거쳐 갔겠죠? 어떤 건 극복도 했을까요? 때로는 추억이 되는 것도 있을까요? 세상에 아무것도 아닌 것은 없는데. 다른 친구들은 무언가 됐거나 되고 있는 중인 것 같은데. 저 혼자만 이도 저도 아닌 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불안해져요. 아니, 어쩌면 이미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 더 나쁜 것이 되어 있는지도 모르고요. (서른 p.293~294)” 과연, 이들 서른살에게 미래는 어떤 모습일 수 있을까?
<큐티클>에서 그 세계는 좀 더 공고해진다. 말하자면, 이제 빈부의 격차는 가지런한 이와 깨끗한 손가락 끝에서 확인된다. 백색 전화기나 TV 개수로 부를 헤아렸던 과거와 달리 이젠 몸의 단속으로 부가 확인되는 셈이다. 큐티클 정리가 빈부의 기점이 되는 이런 사회가 곧 서른이 된 그들을 기약 없는 피라미드의 세계로 내보낸다. 처음에는 좀 죄책감이 들었다. 생필품을 절약하지 않으면 돈 모으기가 힘든데. 씀씀이가 커 눈만 높아진 게 아닌가 싶어서였다. 하지만 변기에 앉아 화장지를 끊을 때마다, 부드러운 두부 조직이 식도를 건드릴 때마다 전에 없던 설렘과 만족이 찾아왔다. 그리고 만약 그런 ‘기분’도 구매할 수 있는 거라면 그걸 ‘계속하고’ 싶다고 생각했다.(큐티클 p.212)” 김애란이 보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렇다. 김애란의 발랄했던 첫번째 소설집과 달리 <비행운>은 조금은 무겁고, 약간은 어둡다. 서른 즈음이 된 작가가 느낀 현실의 명암이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세상의 힘이 견딜 수 없이 버거울 때 우리는 그것을 삶의 아이러니라고 부른다. 삶의 아이러니란 삶의 잔혹함을 인정한 어른이 내리는 최후의 변론 같은 것이기도 하다. 김애란은 한국 문학의 중심을 떠받치고 있는 중력과 같은 작가이다. 세상에 좀 더 많이 알려지고, 좀 더 많은 독자들이 그들의 문장을 읽는다면, 아마도 정치 구호나 선정적 문장에 오염된 정서가 조금은 정화될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한국 문학은 부지런히 진화 중이다.
*<비행운>·김애란 : 문학과 지성사
컬처트렌드
구성. 이자연
이달의
신작
play
거기
강릉 아래, 부채 끝처럼 생겼다 하여 이름마저 ‘부채끝’인 작은 마을. 저녁 해수욕장 근처의 한 카페에 마을 노총각들이 모여들어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던 중, 서울에서 이사 온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카페에 들어오고, 삶의 한 부분을 잘라온 듯 각각의 생생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술 한잔을 걸치며 구수한 사투리로 나누는 그들의 이야기는 관객을 몰입시킨다. 웃기다가 무섭고, 슬프다가 가슴이 따뜻해지는 연극 <거기>는 극단 차이무와 이다엔터테인먼트의 합작프로젝트인 ‘이것이 차이다’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 <늘근도둑이야기>, <통일익스프레스> 등 사회성을 담은 세련된 블랙코미디로 관객에게 사랑받아 온 극단 차이무의 작품 중 가장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작품이라 평가받고 있다.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최고의 흥행을 거두었던 코너 맥퍼슨(Conor Mcpherson)의 원작인 를 2002년 극단 차이무가 번안, 한국식으로 재탄생시켰고, 국내 공연 당시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2012년 <거기>는 더 깊어진 이상우의 연출력과 김승욱, 이대연, 강신일, 민복기 등 스크린과 무대를 넘나드는 유명 배우들의 원숙한 연기력으로 자극적인 것에 익숙해져 버린 우리에게 잔잔함의 백미를 선사한다.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 / ~11월 25일
exhibition
2012 스티브 맥커리 사진전
‘빛과 어둠사이’
‘천운의 예술가’라 불리는 스티브 맥커리. 그는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될 만한 분쟁지역에서 죽음과 수없이 마주쳤다. 머리에 총구가 겨눠지는 건 다반사, 빗발치는 총알을 피해 8km가 넘는 거리를 질주하거나 폭행을 당해 바닷물에 빠지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그럼에도 살아남았고 여행을 멈추지 않았으며 자신이 겪었던 모든 상황을 카메라에 담았다. 스티브 맥커리는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모래바람 속에서도, 폭격으로 온통 새카맣게 변한 전쟁터에서도 쉼 없이 셔터를 눌러대며 기록 속에서 예술을 만들어 낸 사진계의 거장이다. ‘빛과 어둠사이’는 테크닉이나 인위적 장식을 쓰지 않고 빛과 어둠만으로 예술성과 휴머니티를 절묘하게 표현해내는 스티브 맥커리의 작품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다. 지난 2010년, 한국에서의 첫 전시인 ‘진실의 순간’ 전을 통해 ‘아프간소녀’ 등 보도사진 중심의 전시를 선보였던 스티브 맥커리는 이번 ‘빛과 어둠사이’ 전에서 예술가로서의 진면모를 보여준다. 완벽에 가까운 색상과 구성, 흐름과 균형의 시각적 예술성뿐만 아니라 가슴으로 전해지는 희망과 휴머니티 등 정신적 교감까지, 한번도 노출되지 않았던 스티브 맥커리의 사진 100점을 만날 수 있다.
예술의 전당 V갤러리 / ~10월 21일
classic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대구 공연
세계 5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자 60년 역사를 가진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10월 23일 대구 관객을 만난다. 지난해 창립 60주년을 맞은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50개 이상의 나라에서 감명 깊은 공연을 선보여 찬사를 받았으며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의 환상적인 조화와 예술성 높은 연주로 수많은 관객을 감동시켰다.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제6번 비창 74번’과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35번’, ‘글린카의 루스란과 루드밀라 서곡’ 등을 준비한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깊어가는 가을밤의 정취를 높이기에 제격이다. 기술적 완성도와 예술성을 갖춘 연주로 정평이 나있는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겸 예술감독은 구 소련 공훈예술가인 유리 시모노프다. ‘차이코프스키를 탁월하게 해석해 호화스러운 낭만적 기풍을 고양하면서도 설득력을 잃지 않는 훌륭한 지휘자’라는 평을 받고 있는 그의 해석에 팬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 1969년 볼쇼이 오페라단의 ‘아이다’ 지휘자로 데뷔 후, 곧바로 수석 지휘자로 임명된 유리 시모노프는 오페라단 역사상 가장 젊은 수석 지휘자이자, 최장 기간 재직한 역사적 인물이다. 대구 공연에서는 영남대 교수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이정 씨와 협연도 기대된다.
영남대학교 천마아트센터 그랜드홀 / 10월 23일
festival 1
제11회
진주남강유등축제
해마다 가을이면 충절의 고장 진주는 온통 환한 빛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아름다운 남강과 진주성을 배경으로 빛의 축제(축전)*인 <진주남강유등축제>가 열리기 때문. 2002년을 시작으로 올해 11회째를 맞는 진주남강유등축제는 ‘물, 불, 빛 그리고 우리의 소망’이란 주제로 천년 역사의 애환을 담고 도도히 흐르는 남강 일대를 더없이 화사한 빛으로 장식한다. 1592년 10월, 충무공 김시민 장군이 3,800여 명의 병력으로 진주성을 침공한 2만 왜군을 크게 무찔렀던 ‘진주대첩’ 당시, 성 밖에서 대기 중이던 지원군과의 군사신호로 풍등을 하늘에 올리며, 횃불과 함께 등불을 띄워 남강을 건너려는 왜군을 저지하는 군사전술이 진주남강유등축제의 유래다. 초혼점등식, 소망등 달기, 유등 띄우기, 세계풍물등 및 한국등 전시와 같은 본 행사를 비롯해 창작등 만들기, 유등 만들기, 시민참여등 만들기, 유람선 체험, 굴렁쇠, 죽마, 투호놀이 등 전통놀이 체험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들이 축제를 찾는 이들을 맞이한다. 너무 빨리 지나가버리는 가을이 아쉽다면, 진주남강유등축제에서 소중한 사람과 함께 유등을 만들고 강에 띄우며 아름다운 추억 하나를 새겨볼 일이다.
10월 1일~10월 14일 / www.yudeung.com
festival 2
제16회
강경발효젓갈축제
‘200년 전통의 젓갈! 강경포구로의 초대’라는 주제로 논산시 강경읍 일원에서 열리는 2012 강경발효젓갈축제(축전)*가 올해로 16회째를 맞았다. 강경은 예로부터 평양, 대구와 더불어 전국 3대 시장의 하나로 1930년대 최대의 성시를 이룬 고장. 특히 강경포구는 일찍이 천혜의 내륙항이자 금강하구의 관문으로 서해에서 들어오는 각종 해산물과 교역물이 활발히 왕래하던 곳이다. 지금은 금강하구 둑 때문에 물길이 막힌 지 오래지만, 강경 사람들의 젓갈 담그는 비법은 그대로 이어져 오늘날에도 전국 제일의 젓갈시장 명성을 지키고 있다. 젓갈의 고장답게 이번 강경발효젓갈축제에는 젓갈김치 담가가기, 젓갈5종경기, 여고동창 젓갈김치 담그기, 젓갈학교, 왕새우 잡기 등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과 만선제 및 강경포구 재현, 슬로푸드 전시관 등 강경젓갈의 풍미와 여유를 함께 즐길 수 있는 5개 분야 74개의 먹거리, 볼거리 풍성한 행사들이 마련돼 있다. 짭조름한 젓갈 냄새와 더불어 강경의 넉넉한 인심을 느낄 수 있는 ‘2012 강경발효젓갈축제’에서 저녁놀에 붉게 물들어가는 강경포구의 풍경을 덤으로 얻어가는 것도 축제를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10월 17일~10월 21일 / www.ggfestival.co.kr
* 축전 : 축제의 순화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