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영이에게
안녕, 소영아. 잘 지내니? 우리 초등학생 때 자주 편지를 주고받았었지.
어린 마음에 네가 전학 가고 얼마나 슬펐는지 몰라.
그로부터 어느덧 20여 년이 흘렀네.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너는 서울까투리*였던 거 같아.
나는 내성적인 시골 어린이였고. 덕분에 우리가 너나들이*한 사이가 되었지. 시간 참 빠르다.
얼마 전에 네가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어. 정말 축하해. 갈맷빛*이 완연한 계절에 태어났구나!초등학생 때 옴살*이었던 친구가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어.
이름은 지었니? 책을 읽다가 알게 되었는데, 우리말 이름도 정말 예쁜 거 같아!
‘이든’은 착한, 어진이라는 뜻이고, ‘소예’는 소담스럽고 예쁘다, ‘윤슬’은 햇빛이나 달빛에 비쳐
반짝이는 잔물결을 뜻한데. 정말 아름답지? 그리고 ‘다솜’은 사랑을 뜻하고, ‘아라’는 바다,
‘가온’은 세상의 중심이란 뜻이래. 아기의 이름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몸은 좀 어떠니? 요즘 토끼잠*을 자서 힘들지? 아기들이 자주 깬다고 들었어.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힘들겠다.
그러고 보면 우리 엄마도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나를 키웠을 텐데 왜 아이를 낳아야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는지 몰라.
툭하면 엄마에게 찜부럭*을 부리곤 했지. 성인이 되어서도 그렇고. 이젠 ‘엄마’라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 한구석이 찡해지는 나이가 되었나 봐. 아무쪼록 건강을 위해서 짧은 시간이라도 꽃잠*을 자길 바라.
아기가 너를 닮아 사랑옵겠다.* 송아리*처럼 보기만 해도 예쁘고 신기할 거 같아.
눈부처*만 보아도 그저 건강하게만 자랐으면 하는 마음이 들겠다. 내가 조카를 볼 때 그랬거든.
조카가 동요를 따라 부르며 단춤*을 추는 동영상을 보면 너무 행복해.
조카바보라는 말이 딱 나를 가리키는 것 같아. 참, 내 안부가 늦었네. 나는 잘 지내고 있어.
예전에도 책을 많이 좋아했는데 그러다 보니 글을 쓰는 일을 하며 살아.
단출내기*라 자유 시간이 많지만, 일할 때면 붓방아*질을 많이 해서 세상엔 쉬운 일은 없다는 것을
늘 깨닫곤 해. 깨깨* 마른 내가 안타까운지 엄마는 얼굴에 노랑꽃*이 피었다며
걱정하시더라고. 하지만 내가 건밤*을 지새우는 이유는 따로 있어.
요즘 호감이 가는 사람이 생겼거든. 그 사람만 보면 마음이
들렁들렁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너에게 꼭 소개시켜주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앞으로 뜨막하지* 않게 연락 자주 할게.
곧 만나자. 몸조리 잘하길! 다시 한 번 엄마 된 거 축하해.
2017년 6월, 초여름 문턱에서윤미가
서울까투리
- 수줍음이 없고 숫기가 많은 사람을 일컫는 말
- 그는 서울까투리 모양으로 수줍은 기색이 없는 사람이었어.
너나들이
- 서로 너니 나니 부르며 허물없이 말을 건넴, 또는 그런 사이
- 그 친구랑은 너나들이로 지내는 사이야.
갈맷빛
- 짙은 초록빛
- 갈맷빛을 참 좋아합니다.
옴살
- 매우 친밀하고 가까운 사이
- 그와 나는 의기투합하여 금방 너나들이하는 옴살이 되었다.
토끼잠
- 깊이 들지 못하고 자주 깨는 잠
- 문 여는 소리에 토끼잠에서 깬 아이가 눈을 비비며 나왔다.
찜부럭
- 몸이나 마음이 괴로울 때 걸핏하면 짜증을 내는 것
- 아이는 잠투정으로 찜부럭을 부렸다.
꽃잠
- 깊이 든 잠
- 어젯밤 꽃잠을 잤다.
사랑옵다
- 생김새나 행동이 사랑을 느낄 정도로 귀엽다.
- 저 아기는 정말 사랑옵다.
송아리
- 꽃이나 열매 따위가 잘게 모여 달려 있는 덩어리
- 포도 송아리, 꽃 송아리, 눈 송아리
눈부처
- 눈동자에 비치어 나타난 사람의 형상
- 너의 눈부처에 나의 모습이 보인다.
단춤
- 기분 좋게 추는 춤
- 나는 행복해서 단춤을 췄다.
단출내기
- 식구가 없어 홀가분한 사람
- 일인 가족이 늘어나고 있는 지금 결혼을 안 한 단출내기들이 많다.
붓방아
- 글을 쓸 때 미처 생각이 잘 나지 않아 붓을 대었다 떼었다 하며 붓을 놀리는 짓
- 어제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붓방아를 찧었어.
깨깨
- 몹시 야위어 마른 모양
- 며칠을 굶었는지 깨깨 마른 몸으로 나타난 그를 보니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랑꽃
- 영양 부족이나 과로, 병 따위로 인하여 얼굴이 노랗게 된 상태
- 영양실조에 걸려 얼굴에 노랑꽃이 피었다.
건밤
- 잠을 자지 않고 뜬눈으로 새우는 밤
- 그를 생각하면서 건밤을 새웠습니다.
들렁들렁하다
- 설레거나 흥분하여 가슴이 몹시 두근거리다.
- 소풍 갈 일을 생각하니 잠이 안 올 만큼 가슴이 들렁들렁하였다.
뜨막하다
- 사람들의 왕래나 소식 따위가 자주 있지 않다.
- 그 사람 요즘 뜨막한 게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이 돼.
오늘 하루, 한 번만이라도 사라져가는 우리말을 사용해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말 속에는 말이 만들어진 당시의 유쾌함과 즐거움, 따뜻한 정서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 포근한 정서를 담아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면 특별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우리말을 천천히 낭독하면서 언어의 온기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