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기계의 최초 대결의 승자, 디퍼블루
왜 사람들은 처음도 아닌 ‘인간에 대한 인공지능의 도전’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을까? 그 이유는 바로 대결의 종목이 바둑이라는 것에 있다. 디퍼블루가 도전한 체스의 경우 ‘말을 움직여 상대의 왕을 잡으면 승리하는 경기이다. 이 경기 방식을 적용하면 64개의 칸 위에 6종류의 말을 움직이는 것으로 총 10의 120제곱만큼의 경우의 수를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이 경우의 수만 다 계산한다면 충분히 승리를 할 수 있다. 당시 디퍼블루는 매초 2억 개의 수를 분석했고 20수 앞을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었다. 이는 인간의 계산 속도보다 7,000만배 이상 빠른 속도였기에 디퍼블루의 승리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퀴즈 대회에서 우승한 ‘왓슨’의 경우는 어떠했을까? 왓슨은 IBM에서 만든 자연어(기계어가 아닌 사람이 하는 말) 처리 컴퓨터였다. 자연어 처리 기술에 기반해 사람의 질문을 인식한 뒤 동사·목적어·핵심 단어로 분류한 후 DB검색 3초 내에 정답을 유추하는 기술을 지녔다. 자연어 처리 기술이 뛰어나고 DB의 내용이 풍부하다면 퀴즈쇼에서 인간을 상대로 우승을 하는 것 또한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특히 ‘왓슨’의 경우, 핵심 단어를 골라 검색하고 그에 대한 확률 값을 계산할 뿐이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문제에 대한 정답을 제시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의 승리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바둑은 다르다. 바둑의 경우 돌을 놓는 착점이 361개이고 첫 수를 주고 받는 경우의 수만 12만 9,960가지로 361개의 점을 모두 채워가는 경우의 수를 계산하면 10의 170제곱 가지나 된다. 슈퍼 컴퓨터를 이용해 이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한다 해도 수십억 년이 걸릴만한 양이다. 여기에 죽은 돌을 들어낸 자리에 다시 둘 수 있는 규칙들까지 고려한다면 경우의 수는 더욱더 커지게 된다. 그래서 창의성과 직관을 필요로 하는 바둑만큼은 프로그램을 작성하기가 어려운 분야, 혹은 불가능한 분야로 여겨져 왔다.
스스로 학습하고 경험을 쌓는 창의적 인공지능, 알파고
알파고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학습을 통해 경험을 쌓는’ 훈련을 받아왔다. 바둑 기보 3,000만개를 입력해 규칙을 가르친 뒤, 매번 대국을 진행할 때마다 각각의 수에 대한 결과들을 모두 저장한다. 또 알파고는 176개의 그래픽 처리장치로 형세를 인식하고 공격적인 바둑을 둘 것인지, 수비적인 바둑을 둘 것인지도 결정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학습 결과로 알파고는 대국이 진행될수록 강해지게 된다. 후반으로 갈수록 계산해야 할 경우의 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알파고의 경기 방식은 초반 10수 정도 내에서 벌어질 모든 경우의 수만 계산하고 10수 이후에는 무작위로 돌을 놓아 바둑판을 다 채우는 시뮬레이션 결과만 보게 된다. 이 시뮬레이션으로 10만 가지의 결과를 살펴 볼 수 있게 되고, 이 10만 가지 결과 중 이긴 경우의 수를 통해 이길 확률을 계산하고 이 확률 값에 기반하여 다음 수를 결정한다. 알파고와 이세돌과의 대결은 알파고의 이러한 훈련 결과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고, 이는 바로 인공지능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자 곧 인간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바로 이것이 ‘알파고의 도전에 왜 전세계 귀추가 주목되었는가?’ 에 대한 답이 된다.
알파고를 통해 인공지능의 향상된 능력을 확인한 사람들은 ‘창의력’에 대해 논하기 시작했다. 창의력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 즉 아무리 기술이 발전된다 하더라도 인공지능이 넘어설 수 없는 인간만의 분야로 해석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아마도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설 것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이 나타내는 반사 반응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 분야의 지식을 새로운 분야에 응용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방법론, 또는 새로운 분야들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정보가 많을수록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오히려 많은 분야의 내용들을 무한히 입력할 수 있는 기계가 사람보다 뛰어난 창의력을 발휘하게 되는 상황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조합들 중에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 판단하고 인간의 감정을 함께 녹여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발전해나가는 인공지능을 두려워할 필요도, 외면할 필요도 없다. 이미 인공지능의 기술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산업들이 생겨나는 이 시대에는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여 인간 생활의 편의와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인공지능을 대하는 현명한 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