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와 위암의 관계
위암에 대한 의학적 기록은 19세기 초 프랑스 해부학자 장 크루베이에르에 의해서 처음 기술되었지만 이를 의심할 만한 역사적 기록은 고대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가 ‘암(karkinos or karkinoma, 후에 라틴어 cancer로 쓰이게 됨)’이라는 용어를 처음 기술할 때 대상이 된 환자가 흑색변과 토혈을 호소하는 등 위암을 앓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이후 중세 시대에는 종교의 영향으로 인체를 해부할 수 없게 되어 이에 대한 기록은 찾아 보기 어렵다.
하지만 19세기에 이르러 한 사람의 부검 기록에서 위암을 의심할 만한 대목을 다시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세계사에 이름을 떨쳤던 나폴레옹이다.
나폴레옹은 위털루 전쟁에서 패한 후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생을 마감했다. 기록에 따르면 나폴레옹은 사망하기 몇 개월 전부터 계속되는 구토, 흑색변으로 고생을 하였고 사망하기 며칠 전 주치의에게 본인을 해부하여 자신의 상태를 아들에게 알려줄 것을 희망했는데 그의 아버지를 비롯해 친척들이 비슷한 증상으로 사망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의 사망 후 유언대로 부검이 시행되었고 나폴레옹의 위는 돌처럼 딱딱한 덩어리 상태였다는 기록이 있다. 현대 의학으로 보면 유전성 위암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유전성 위암의 존재와 원인 유전자가 1994년 뉴질랜드 원주민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처음 규명된 후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에서도 그 존재가 확인되었지만 유전성 위암은 전체 위암의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위암의 가장 큰 원인은 생활습관
위암 발생의 대부분은 유전과는 상관없이 환경적 요인, 그 가운데서도 영양장애와 관련성이 깊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 미국 반데르빌트 대학에 재직 중인 Correa 교수는 1970년대 콜롬비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역학 연구를 통해 위암은 표재성 위염, 위축성 위염, 장화생성 위염 등 단계적 변화를 거쳐 발생된다는 사실과 위암 환자에서 소금 섭취량과 질산염의 섭취가 많다는 것을 알아냈다.
연구의 발단은 안데스 산맥을 기준으로 해안에 사는 주민과 산간지방 주민 사이에서 보인 위암 유병률의 단순한 차이 때문이었지만 그 결과는 대단한 것이어서 현재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비료, 동물 분뇨, 오염된 강, 썩은 식물 뿌리 등 위생적이지 못한 음식에서 만들어지는 질산염은 박테리아에 의해 아질산염으로 변화되고 탄 음식과 삭힌 생선 등에 많은 ‘아민’과 결합하면 ‘나이트로사민’이라는 발암성 물질로 바뀐다.
이 물질은 담배에서도 발견되는 1종 발암물질로 위세포 핵산의 일부와 치환되어 돌연변이를 일으키게 된다. 위암은 우리나라 암 발생률 1위이고 동아시아 국가와 일부 남미 국가에서 발생률이 높지만 미국이나 북유럽 등 서구에는 드물게 발생된다. 1920년대에는 미국에서도 위암 사망률이 1위로 높았으나 이러한 현상은 1940년대 이후 달라지게 되는데 이는 냉장고의 보급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주장되고 있다. 냉장고를 사용하면서 음식 위생이 깨끗해지고 음식이 상하거나 부패하면서 생기는 질산염 생성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발암인자인 헬리코박터균
Correa 교수가 위암의 암화과정을 규명하는데 많은 업적을 냈지만 위염이 발생하게 되는 원인을 밝혀낸 사람은 따로 있다. Warren과 Marshall 박사는 1983년 위염 발생의 원인이기도 한 헬리코박터균을 최초로 발견했다. 이들의 발견은 우연한 것이었지만 Correa 교수가 풀지 못했던 위염의 발생 원인과 위암과의 연결고리를 찾음으로써 2005년에는 노벨 생리·의학상까지 거머쥐었다. 헬리코박터균은 위암 발병과의 연관성이 뚜렷하여 1994년 WHO로부터 발암인자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 성인의 헬리코박터균 감염률은 65% 정도인데 이는 위암 발생률이 높은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헬리코박터균은 다른 박테리아와는 달리 강한 위에서 살 수 있기 때문에 한번 몸 안에 들어오면 잘 죽지 않는다. 주로 유년기에 감염되며 대부분의 경우 큰 문제가 되지 않는 표재성 위염을 일으키지만 헬리코박터균의 종류와 헬리코박터균을 자연 치유하려는 우리 몸의 면역 반응에 의해서 일부는 활동성 위염, 위축성 위염, 장화생성 위염으로 진행된다. 균을 치료하는 면역 반응이 염증과 같은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헬리코박터균은 위의 상피세포를 침범하지 않고 염증을 유발하기 때문에 헬리코박터균에 대한 면역력이 강할수록 균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염증이 심하게 일어나는 상황이 되어 만성 위염을 일으키게 된다.
이렇게 발생한 활동성 위염, 위축성 위염, 장화생성 위염의 일부는 위암으로 발전되기도 한다. 문제는 가족끼리 병원성이 강한 헬리코박터균을 공유할 가능성이 높고, 면역력 또한 유전성이 높다는 점이다. 실제로 위암 가족력이 있는 환자의 위암 발생률이 그렇지 않은 경우 보다 3배 높고, 이 환자가 장화생성 위염이있는 경우 위암 발생률은 8배 높다고 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유전이 아니라 가족 간 균과 면역력을 공유하게 되어 나타나는 결과라 할 수 있다.
정기검진으로 조기 발견 및 치료 가능
우리나라에서는 40세가 넘게 되면 2년에 한 번씩 내시경 검사를 하도록 공단 검진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 미리 발견하고 치료하여 국민 건강에 이바지하고 손실되는 재정을 줄이자는 뜻이다. 이 프로그램은 실효를 거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시경 검사가 보편적이지 않았을 시절에는 위암을 진단 받은 환자 중 많은 수가 진행성 위암이라 수술 후에도 재발의 걱정이 많았지만 요즘은 드물다. 주기적인 내시경 검사를 통해 조기 위암이나 위암 전 단계를 분별하여 내시경 점막 절제술을 받거나 수술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과 조기 위암을 4년간 관찰한 결과를 보면 그 중 50%만이 진행성 위암으로 진행된 것으로 나타난다.
주기적인 내시경 검사를 통해 이전 검사에서 징후를 놓치더라도 다음 번 검사에서 그리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기 진단을 받고 치료 과정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립암센터에서 18,414명의 검진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2년 마다 내시경 검사를 충실히 시행한 사람에서는 위암 진단의 대부분이 조기 위암이었는데 반해 2년 스케줄을 충실히 따르지 않았던 환자들은 위암 진단 중 29%가 진행성 위암이었다. 앞서 언급한 Correa 교수의 표재성 위염에서 위암으로의 단계적 진행은 이론상으로 위험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그만큼 조심하고 대비할 수 있는 것이다.
위암 예방을 위해서는 40세 이후 2년에 한 번씩 내시경 검진하는 것을 권장하며 음식 섭취에 신경을 써야 한다. 신선한 과일과 비타민C가 풍부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좋고 짠 음식을 피하여야 한다.
한편 헬리코박터균이 발암인자로 알려져 있기는 하나 헬리코박터균 항생제가 위암을 예방한다는 근거는 부족한 상황이다. 항생제 사용에 대해서도 내성이 생길 위험성과 약제 부작용 등을 고려하여 무조건적인 시행은 바람직하지 않다. 단, 위암 가족력이 있거나 장화생성 위염, 위축성 위염, 소화불량 등의 증세가 있는 경우 대한소화기학회에서는 제균치료를 권장하고 있다.
감소 추세인 위암
우리나라의 위암 발생률은 높은 편이나 앞으로 감소될 것으로 추정된다. 내시경 검사의 보편화로 인해 조기 위암의 진단이 증가한 것이 그 원인이겠지만 실제 진행성 위암 발생도 줄고 있다. 공식 발표되는 위암 사망률의 감소 또한 검진에 따른 조기 위암 진단이 상대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으로도 해석된다. 10년 전에 비해 헬리코박터균 감염률도 50대 이상은 10% 포인트 정도 줄었고 40대 이하 젊은 연령군에서는 더 현격하게 줄었다. 아마 20~30년 후면 우리나라에서 위암을 보기 힘들지 모른다.
헬리코박터균은 어떻게 감염되나요?
헬리코박터균의 감염은 크게 세 가지 경로로 구분되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 동물과 사람, 오염된 식수를 통해서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중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염되는 경우가 가장 흔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문화적 특성상 음식을 나눠먹고 한 가지 식기를 공유하는 것과 같은 행동을 통해 헬리코박터균이 전염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유산균 음료가 헬리코박터균 제거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유산균으로 헬리코박터균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제균 치료 시 유산균 음료를 함께 마시면 제균률을 조금 높여주는 데 도움이 된다고는 알려져 있습니다. 헬리코박터균은 감염 시 증상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따라서 식기나 음식은 공유하지 말고 따로 덜어서 먹도록 하며, 위암 가족력이 있거나 만성 위염 등의 질병을 앓고 있다면 헬리코박터균 검사를 해보시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