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에세이 나만의 피서
어느새 2005년도 절반이 지나 후반전으로 치닫고 있다. 100년 만의 무더위가 봄께부터 그 뜨거움을 맛보게 하는 걸 보니, 올 여름에도 용광로 같은 더위가 내 군 생활 3년을 또 한 번 뜨겁게 담금질할 것 같다. 올 6월이면 이제 해병대 장교로 임관한지 만 2년 이다. 2003년 임관한 이후 내가 맞은 여름은 평생 동안 잊지 못하고 꺼내들 카드가 될 것 같다. 사관후보생 시절에는 작열하는 포항 도고해안의 태양 아래 전투수영을 배웠고, 작년에는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서 여름을 보냈으니 말이다.
작년 여름 선배 장교와 전출을 앞두고 휴가를 맞춰 육지에서가 아닌 2일간 백령도 여행을 했다. 좁은 섬이지만 바쁜 업무로 주마간산 식으로 지나치긴 했지만 1년 동안 백령도에서 있으면서 남겨둔 사진이나 추억담이 전무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선 전투식량 확보를 위해 한 시간 동안 호미를 사들고 해안을 돌아다니며 큼지막한 모시조개며 골뱅이, 소라(소라게) 등을 큰 양동이 한 통 넘게 채집할 수 있었다. 그러다 해병 부대에서 군인 가족과 민간인들을 위해 여름마다 무료로 운영하는 IBS(고무보트) 를 타고 해상에서 상쾌한 바닷바람을 쐬고 돌아와 석양이 퍼지는 해안에서 해수욕까지 했다. 야자수보다는 수천 년을 풍파로 깎여 절경을 이루는 기암괴석(촛대바위·손가락바위 등)이, 에메랄드 빛 바다보다는 땅만 파면 한줌 가득 나오는 어패류가 더 낫지 않겠는가? 이처럼 미려한 경관은 물론 그 곳 사람들의 인심만큼이나 후한 바다의 은혜가 넘치는 것이 백령도의 매력인 것이다.
바다가 지겨워지면 단단한 지질로 이루어진 해안을 차로 달려 백령도의 명동이라 불리는 진촌 시장통에 나가 이북 음식을 입안 가득 침샘이 넘쳐 흐르도록 즐긴다. 부대 회식 때만 즐기는 홍어나 우럭·광어 등 자연산 회뿐 아니라 육지에서는 절대 먹어볼 수 없는 짠지떡(김치속이 들어있는 만두류), 함경도 아바이 손으로 직접 빚은 터질듯이 속이 꽉찬 만두, 미식가들이 육지에서도 그 맛을 못 잊어 매년 여름마다 백령도를 찾게 만든다는 메밀냉면과 칼국수, 그리고 백령도 돼지로 만든 수육이 바로 그것이다. 군인들의 주머니 사정뿐 아니라 비싼 배 삯을 내고 입도한 관광객들을 배려해서인지 가격 또한 4,000원을 넘어가는 것이 없었다. 그러고 보면 백령도 인심처럼 후한 곳도 없으리라.
여느 해군 장교들과 다르게 그런 곳에서 1년여의 군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커다란 행운이었던 것 같다. 그것도 지루하지 않을 만큼 백령도의 사계를 모두 경험해볼 수 있었으니 그 또한 큰 복이었던 것 같다. 누구나가 힘든 신임 소위 생활을 백령도에서 시작하며 고생도 많이 했지만 백령도 사람의 피처럼 뜨겁고 끈끈한 동기애며, 사람 사이의 정을 그 해 여름 짧은 여행을 통해 아주 뚜렷하게 새겨 항상 생각이 날 것 같다. 정말이지, 지난 여름만큼 특별한 휴가가 있었다는 것이 자랑스러울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