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가본 유비쿼터스 시대
바야흐로 유버쿼터스 세상이다. 휴대폰으로 은행거래를 하고, 자동차의 단말기로 모르는 길을 척척 찾아가며, 실외에서도 노트북으로 간편하게 인터넷에 접속하는 유비쿼터스 세상이 활짝 열리고 있다. 유비쿼터스 발전 속도는 혁명으로 불릴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향후의 유비쿼터스 세상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지금으로부터 5년 후인 2010년의 유비쿼터스 세상을 가상 시나리오로 미리 들어가보자.
이메일, 휴대폰 벨소리, 알람시계에 현빈 목소리 사용
2010년 6월 20일 오전 7시 30분 서울 금호동의 어느 아파트 안방. 대학을 갓 졸업한 대기업 신입사원 홍순화(26세, 여) 씨는 "일어나세요. 회사 지각하겠어요!"라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잠을 깼다. 휴대폰으로 맞춰 놓은 알람시계가 요란하게 내는 소리였다.
안경, 옷, 헤드셋으로 구성된 웨어러블 PC는 휴대폰이나 개인휴대단말기(PDA)와 달리 다른 작업을 하면서도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안경의 안쪽에는 손톱 크기의 투시형 스크린이 달려 있어 PC의 모니터 역할을 하고 안경 너머의 광경과 함께 인터넷 검색 내용과 각종 정보 처리 결과가 눈 앞에 펼쳐지는 방식이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수백만원대여서 가격 부담이 만만치
마자 할부로 모 전자회사의 웨어러블 PC를 구입했다.
금호역 지하철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그녀는 손목을 입에 가져가 나지막하게 "이메일" 하고 속삭였다. 그러자 웨어러블 PC는 홍 씨의 말을 알아듣고 미남 탤런트 현빈의 목소리로 이메일을 하나씩 읽기 시작했다. 홍 씨는 고교 시절에 MBC TV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현빈이 출연해 멋진 연기를 펼치는 것을 보고 나서 현빈의 팬이 됐다. 이후 그녀가 사용하는 웨어러블 PC 안내 음성, 휴대폰 벨소리, 알람시계 등에는 모두 현빈 목소리를 사용하고 있다.
전동차에 탑승해 이메일을 듣던 홍 씨는 "긴급공지입니다. 회사 창립 10주년 기념 이벤트를 공모중이니 내일 출근하기 전까지 빠짐없이 알려주세요"라는 안내를 듣고는 잠시 당황했지만 출근까지 여유가 조금 있다는 사실을 알고 머리를 쥐어짜내기 시작했다.
기획 아이디어가 퍼뜩 떠오른 그녀는 팀장에게 이를 음성으로 보고하려다 주위의 만원 승객을 의식하고는 손목 패드 위에 보고서를 써 내려간 다음에 전송 버튼을 눌렀다.
"휴우~, 출근 전에 웨어러블 PC로 이메일 검색을 하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군."
홍 씨는 이번에는 "오늘 일정" 하고 속삭이고 나서 특수 안경의 테를 가볍게 터치했다. 그러자 그녀의 안경 스크린에는 점심 때 거래처 박 과장과의 식사를 겸한 미팅과 저녁 때 강남에서 대학 동창들과 영화 관람 등의 일정이 일목요연하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는 상대는 기억 도우미가 해결
홍 씨가 회사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 "순화씨, 전화왔어요" 하는 현빈의 목소리가 울려 왔고, "바꿔줘!" 하고 응답하자 안경 스크린에는 현빈을 빼닮은 근육질의 잘 생긴 남자 친구 영상이 나타났다. 남자 친구는 대기업을 그만두고 서울 신림동의 고시원에서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그녀는 남자 친구의 유학이 확정되면 회사를 그만두고 함께 해외로 떠날 생각이다.
안경 스크린을 통해 남자 친구의 핼쓱해진 모습을 보니 안쓰럽다. 그녀는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하고 통화를 중단했다.
박 과장과의 점심을 마치고 다시 회사 사무실에 들어서자 홍 씨 또래의 여성이 "안녕하세요?" 하면서 반갑게 악수를 청한다. 순간 그녀는 이 여성이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아 당황스럽다. 화장실에 가는 척하고 복도로 나온 그녀는 현빈의 기억 도우미(Memory aid) 기능을 활용해 "내 또래의 20대 후반 여성이고 키가 160cm 가량 되는데 누구지?" 하고 물었다.
기억 도우미란 웨어러블 PC의 사용자가 보고 들은 것을 기억나도록 도와주는 기능이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을 때에도 요긴하지만 이렇게 기억나지 않는 상대의 정보를 알아낼 때에도 편리하다.
홍 씨는 웨어러블 PC의 도움으로 이 여성이 대학 동창의 친구이며 온라인 사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당시 대화 내용과 프로필을 추가로 확인했다. 현빈의 기억 도우미 덕분에 여성의 이름을 알아낸 그녀는 자리로 되돌아가 반갑게 이름을 부르며 아는 체를 했다.
정보기술(IT) 기기 전시회에서 모델들이 차세대 웨어러블 PC를 선보이고 있다.
퇴근하고 사무실을 나서자 근처 백화점에 들러 바캉스용 수영복을 골랐다. 다양한 디자인의 수영복들 가운데 홍 씨가 마음에 드는 상품을 골라 손목 패드를 갖다 대자, 상품의 전자태그(RFID)가 자동으로 인식돼 계산이 됐다.
쇼핑을 마치고 아파트의 자기 방에 돌아온 홍 씨는 한가한 시간을 죽이기 위해 휴게실의 소파에 앉아 안경을 선글라스 겸용 스크린으로 바꿔 쓰고 영화 DVD를 열었다. 선글라스 겸용 스크린은 투명 스크린과 달리 자신이 보는 내용이 바깥에 보이지 않아 무엇을 보건 간섭받을 일이 없고 시야도 더 넓어서 편리하다. 홍 씨가 영화를 보는 도중에 아버지는 그녀 방에 들왔다가 영화 감상을 하는 것을 보고 조용히 문을 닫았다. 고령에도 정보기술(IT)에 대한 관심이 많은 아버지는 그녀의 웨어러블 PC 제품이 성능이 어떤지 문의할 생각이다.
영화 감상을 끝내고 잠자리에서 홍 씨는 불과 5년 전 대학 시절에는 상상으로만 가능하던 일들이 현실 세계에서 펼쳐지는 유비쿼터스 세상에 살고 있음을 실감하며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