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곧잘 우리에게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의 무미건조함에서 일탈을 경험하게 하고 무한한 해방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여행의 의미는 결코 여기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즐거움과 동시에 무언가를 새롭게 느끼고 배우는 앎의 충만으로 이어진다는데 여행의 또 다른 미덕이 있는 것이다. 그러한 앎의 충만을 만끽하는데 있어 문화유적 답사여행은 무리 없이 권할 만한 여행의 한 방법이다.
우리나라는 아주 좁은 땅덩이를 가진 나라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처럼 같은 지역에서, 같은 혈통끼리, 같은 언어로, 같은 제도와 풍습을 지니면서, 같은 운명공동체로서 그토록 오랜 역사를 엮어 온 민족 국가도 드물다. 그러다 보니 국토 어디를 가도 유 · 무형의 문화유산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전국토가 박물관이다.”라는 유홍준 교수의 유명한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조금만 길을 나서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이같은 사실은, 그러나 우리에게 민족적 자긍심을 심어 주기는커녕 주변의 문화유산 하나 제대로 건사 못하는 점만 아프게 확인시킬 뿐이다.
제대로 된 답사 코스 하나 없고,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 문화 유산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점이 그렇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답사여행의 기본적인 자세는 문화유산에 대한 애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여행이 주는 즐거움과 함께 문화 우산을 대하는 애정이 함께 곁들여진 답사여행은 그 자체만으로도 삶의 재충전에 커다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문화유적 답사여행의 첫 코스는 전북지방의 고창과 부안지역이다. 전북지방의 역사와 문화는 넓은 들판의 풍요를 바탕으로 일어났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농사가 시작된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문화유적이 가장 많은 이유도 거기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고창 선운사로 가는 길에 있는 상갑리의 고인돌 떼무덤, 고창읍내 어느 집 장독대 옆에 있는 잘 생긴 탁자형 고인 돌, 부안 구암리 묵은 동네 돌 담집에 12기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은 그것 자체로도 신기롭고 아름답지만, 여행길 차창 밖으로 논밭 한가운데 나타나는 고인돌의 모습은 이 지역의 역사적 체취를 담뿍 느끼게 해준다. 또한 가을의 정취와 어우러지는 산과 바다와 들판의 조화는 다른 지역에 비할 바가 아니다.
고창 일대
선운사와 모양성, 그리고 동리 신재효와 미당 서정주의 고향으로 잘 알려진 고창은 전라북도의 서남쪽 끝에 있다. 방장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인천강을 이루면서 기름진 들판의 목을 축여주고, 서쪽은 칠산바다로 알려져 있어 어염시초가 풍부한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탓에 고창은 일찍부터 선택받은 땅이었는데, 처음 땅을 일구고 청동기시대를 열었던 사람들의 흔적이 오늘날까지도 생생하게 남아 있기도 하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역사만 간직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고창만큼 다양한 역사를 경험한 곳도 드물 정도로 곳곳에 널려 있는 문화유산들은 역사의 아픔과 오랜 시간을 증언하고 있다. 거기다가 미당과 동리는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과 소리꾼으로서 예향으로서의 고창을 대변하고 있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선운사: 동백꽃 이상으로 아름다운 절인 선운사는 미당 서정주의 시로도 잘 알려진 곳으로 백제 위덕왕 24년에 검단선사에 의해 창건된 유서깊은 절이다. 이 절은 창건설화에 따르면, 본래 연못이었던 자리를 메워 세운 절이라고 한다. 인도에서 떠내려온 돌배 속에서 나온 삼존불상과 탱화, 나한상, 옥돌 부처, 금옷 입은 사람, 부처님을 모시라는 편지를 본 검단선사가 이 절을 창건할 당시에 신라의 진흥왕은 시주로 재물을 내리는 한편, 장정 100명을 보내 공사를 돕고 뒷산의 소나무로 숯을 구워 경비에 보태게 했다고 전해지는데, 재미있는 것은 동불암 마애불 왼쪽 산길 위에 있는 자연석굴에 관한 전설이다. 이 자연석굴은 검단선사가 연못을 메우던 때 쫒겨난 이무기가 다급하게 서해로 도망가 느라고 뚫어놓은 것이라 하여 용문굴이라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이밖에도 이 절의 자랑은 보물 제290호인 대응보전을 비롯하여 영산전, 명무전, 만세루, 산신각, 천왕문 대방 등의 건축 물들 특히 대웅전은 66평이나 되는 조선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선운사를 말하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동백꽃이다. 눈물 처럼 후두둑 지는 3천여 그루의 나무들 대부분이 수령 500년씩인 이 동백은 아쉽게도 10월이라 그 진수를 볼 수 없지만 동백꽃 못지않게 아름다운 선운사 단풍숲은 가을여행의 정취를 한껏 느끼게 해줄 것이다.
고창읍성: 전국에서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는 자연석 성곽인 고창읍성은 모양성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단종 1년에 세워졌다고도 하고 숙종 때 완성되었다고도 하지만 분명 하지는 않은 이 성은 다만 성벽에 새겨진 글자 가운데 계유년에 쌓았다는 글자와 「동국여지 승람」의 발간 연대로 미루어 본 결과 계유년 1453년에 세워지지 않았을까 하는 추정을 할 뿐이다.
사적 제145호로 지정된 이 성은 여자들이 쌓았다는 전설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그것을 재현하기라도 하듯 매년 음력 9월 9일에는 성밟기 행사가 치러지고 있다.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리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 돌면 저승길이 훤히 트여 극락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밝기는 윤달, 그 중에서도 윤삼월에 해야 효험이 있다고 전해지며, 특히 초엿새, 열엿새, 스무 엿새 등 여섯수가 든 날은 저승 문이 열리는 날이라 하여 더욱 많은 여자들이 다른 먼 지방에서까지 모여들었다고 한다. 특히 이성의 성둑에 올라서서 고창의 넓은 평야를 내다보는 맛이 권할 만하다.
신재효 고택: 신재효가 1850년에 지어 제자를 길러내고 춘 향가 · 심청가 · 수궁가 · 흥부가 · 가루지기타령 등 판소리 여섯마 당의 가사를 정리하고 이론을 세웠던 이 집은 그 자신이 「동리가」에서 “시내 위에 정자 짓고/정자 곁에 포도시렁/포도 곁에 연못이라…”고 묘사했듯이 상당한 풍류와 멋을 찾아 지었을 집이라고 전해진다.
하지만 예전 연못은 메워져 고창경찰서가 들어서 있고, 다른 여러 채의 건물도 모두 사라 지고 없다. 다만 사랑채만이 중요 민속자료 제39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을 뿐이다.
중인 출신인 그가 지은 노래 중에서 재미있는 사연을 가진 작품은 「도리화가」라는 작품이다. 자신의 제자이자 애인인 진채선이 고종 4년에 경회루에서 열린 경복궁 완공 축하잔치에 갔다가, 흥선대원군의 인정을 받아 운현 궁 기생이 되어 돌아오지 못하자 애닯고 그리운 정을 엮어 보낸 노래이다.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정주 IC에서 22번 국도를 타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정주 IC에서 22번 국도를 따라 흥덕에 이르면 23번 국도와 갈라지는데, 여기서 22번 국도로 계속 가면 선운사 일대의 유적지로, 23번으로 갈아타면 고창읍내의 유적지로 가게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에는 고창으로 직접 가는 것보다 정주로 가서 시외버스로 이동하는 것이 편리하다.
숙박 및 별미: 선운사 입구에 조성된 새 관광단지에 동백호텔 (0677—62—1560)이 있다. 민박이나 고창읍내의 여관을 이용해도 된다. 고창의 별미는 풍천장어. 선운사 입구 삼거리의 신덕 식당(0677—62—1533)과 연기식당(0677—62—1537)이 유명하다.
부안 일대
들판과 산, 바다를 고루 갖춘 부안에는 각 자연 조건 마다에 깃들여 살던 사람들의 유형 · 무형의 자취 또한 다양하게 전해진다. 평야지대인 부안읍 부근과 내변산 쪽으로는 이 땅 농경문화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인 동제복합문화의 현장, 그리고 석간 당산과 돌장승들이 여러 기 남아 있기도 하다.
그밖에도 변산반도에는 천연 기념물로 지정된 후박나무 · 꽝꽝나무 · 호랑가시나무 군락들이 곳곳에 있고, 격포해수욕장 · 채석강 · 적벽강 등 아름다운 명소들이 가득하다. 이 모든 것들을 안으로 밖으로 엮으면서 굽이굽이 해안을 따라 닦인 변산반도의 해안 일주도로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부안의 자랑이다.
내소사: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에 혜구두타가 소래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절로, 창건 당시에는 대소래사와 소소래사가 있었는데 지금의 내소사는 예전의 소소래사라고 알려져 있다.
천왕문 좌우의 얕은 돌담, 대웅보전의 꽃살문이 아름다운 내소사는 오래된 절의 분위기를 잘 살리면서도 구석구석 정성 들인 손길이 배어 있고, 그러면서도 근래에 유행하는 ‘크고 번쩍거리는’ 풍에도 물들지 않은 사랑스러운 절이다. 특히 이 절의 자랑은 일주문을 들어선 후 천왕문에 이르기까지 600m 가량 이어지는 전나무 숲길이다. 잘 자라 터널을 이루고 있는 전나무 아래로는 드문드문 산죽이 깔려 있어 더욱 청아한 느낌을 주는데, 침엽수 특유의 맑은 향을 맡으며 이 길을 걷는 동안은 웬만큼 속이 시끄러운 사람이라도 마음이 누구러질 정도이다. 일주문에서 경내에 이르는 거리는 마음의 먼지를 털고 부처의 세계로 가는 마음을 가다듬는데 필요한 만큼이라고들 하는데, 이 길이야말로 그 말을 실감하게 한다. 천왕문 바로 앞에는 무르익어 가는 가을 단풍을 만 끽할 수 있는 단풍길이 이어진다.
채석강 • 적벽강: 채석강은 변산반도 서쪽 끝 격포항과 그 오른쪽 닭이봉 일대 1.5km의 충암절벽과 바다를 총칭하는 이름이다. 바닷물의 침식을 받은 수성 암충 절벽이 마치 만권의 책을 쌓아 놓은 듯하며 곳곳에 해식 동굴이 있다.
이곳의 경치가 당나라 이태백이 배 타고 술 마시다가 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채석강과 비슷하다고 해서 채석강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은 전라북도 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된 격포진이 있던 곳이다.
채석강과 연이은 격포해수욕장을 지나 후박나무 군락이 있는 연안을 거쳐 수성당이 있는 용두산을 돌아 대마골 · 여우골을 감도는 2km 가량의 해안선은 적벽강이라 불린다. 이 역시 중국의 적벽강만큼이나 경치가 좋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천연 기념물 제29호로 지정되어 있다. 특히 이곳은 붉은 색을 바위 절벽에 되비치는 석양 무렵의 경 치가 장관이다.
찾아가는 길: 부안으로 가는 길은 김제 · 정읍 · 고창에서 들어가는 길 등 여러 갈래가 있으나 호남고속도로 태인 IC에서 30번 국도를 타는 것이 가장 빠르고 찾기가 쉽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에는 먼저 전주로 온 다음 부안행 시외버스를 타는 것이 편리하고 호남선 열차를 이용할 경우에는 김제에서 내려 시외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숙박 및 별미: 부안읍내는 숙식할 곳이 많다. 변산, 격포해수욕장 부근도 여름철을 제외하면 숙박할 곳이 많이 있다. 부안의 별미는 백합죽이 꼽힌다. 특히 계화도에서 잡은 백합으로 만든 향긋하고 감칠맛 나는 백합죽의 맛은 일품이다. 계화회관(0683—84—3075)이 유명한데, 부안읍내 여러 곳에서 쉽게 맛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