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토에 대한 신라인들의 염원
경주시내의 문화유적 답사에 이어 찾아갈 곳은 경주 남산 일대와 토함산의 불국사, 석굴암, 감포 앞바다 등이다. 도시 전체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문화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춘 경주를 지난 호에서 살펴보았다면, 이번 호에서 살펴볼 경주의 또 다른 면모는 신라인들의 삶 자체의 흔적이 자연스럽게 아로새겨진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예년에 비해 몹시 추웠던 겨울을 보내면서 봄날의 첫 답사지로 남도의 봄 소식을 접하기에 안성맞춤인 경주를 둘러보는 것은 계절에 맞는 적절한 선택일 것이다.
첫번째로 찾아갈 경주 남산은 신라의 상징 그 자체로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산 전체가 신라 인들의 삶의 호흡을 그대로 간 직하고 있는 곳이다. 경주의 산 치고 신라시대의 유적이 없고 전설이 없는 산이 있을까 싶지 만, 그 으뜸의 자리에는 항상 남산이 있다고 봐야 할 정도로 남산에는 신라인들이 천년을 두고 보듬은 불국토에 대한 염원이 그대로 살아 숨쉬고 있다. 남산 자체가 그대로 신라의 절이며 신앙인 셈이다. 유적뿐만 아니라 자연 경관도 뛰어난 남산은 변화무쌍한 계곡이 있고 기암괴석들이 만물상을 이루고 있어 각별하게 불교 유적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경주의 동쪽을 둘러싸고 있는 토함산은 경주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옛부터 신라 오악의 하나로 숭앙받았던 곳. 특히 동해에서 경주시내를 잇는 가장 짧은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던 곳이다. 죽어서라도 용이 되어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넋이 담긴 대왕암이 토함산 너머 동해에 있으며, 동악 곧 토함산의 산신이 되었다는 석탈해의 탄생과 죽음에 얽힌 이야기가 이 산자락에 묻어 있다. 또한 경주 최고의 문화유적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는 불국사와 석굴암이 있는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감포 앞바다는 경주와는 조금 거리를 둔 동해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곳이다. 경주를 답사하는 사람들은 곧잘 감포 앞바다를 답사 코스에서 빠뜨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봄내음 물씬 풍기는 동해바다에 답사로 피곤했던 몸을 잠시 맡겨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경주 남산
경주 남산은 아주 재미있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산이다. 아주 오래 전 서라벌이라 불리던 경주는 맑은 시내가 흐르는 푸른 벌판이었다. 맑은 시냇가에서 빨래하던 한 처녀가 이 평화로운 땅을 찾은 두 신을 보았다. 강한 근육이 울퉁불퉁 한 남신과 부드럽고 고운 얼굴의 여신이었다. 너무 놀란 처녀는 “저기 산 같은 사람 봐라.”라고 해야 할 것을 “산 봐라.” 하고 소리를 질러버렸다. 비명에 놀란 두 신이 발길을 멈추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다시는 발을 옮길 수가 없었다. 처녀의 외침으로 두 신이 산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여신은 남산 서 쪽에 아담하게 솟아오른 망산이 되었고, 남신은 억센 바위의 장 엄한 남산이 되었다.
금오봉과 고위봉의 두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40여개의 계곡과 산줄기들로 이루어진 남산은 남북 8km, 동서 4km로, 남북으로 길게 뻗어내린 타원형이면서 약간 남쪽으로 치우쳐 정상을 이룬 직삼각형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그 모습 곳곳에 유적과 전설을 가득 채우고 있어 더욱 신비로운 남산은 문화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남산 그 자체가 문화재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싶을 정도로 경주에서는 손꼽히는 유적지이다.
서남산: 남산은 크게 서남산과 남산 종주로, 동남산으로 나 뉜다. 그 중 서남산은 경주시내 오릉에서 언양으로 가는 국도 쪽에 있는 남산을 말한다. 이곳에는 포석계곡과 선방계곡 · 삼룽계곡 일대가 자연 경관이 뛰어나고 사적이 많아 유명한 곳이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포석계곡 입구의 포석정이라 할 수 있다.
신라시대 가장 아름다운 이궁지였던 포석정은 사적 제1호로 지정되어 있는 곳으로 현재는 작은 공원처럼 꾸며져 있어 신라 때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찾아볼 수는 없다. 그러나 아직 유상 곡수연을 즐기던 전복 모양의 돌홈이 남아 있어 당시의 풍류를 전해주고 있다. 유상 곡수연이란 수로를 굴곡지게 하여 흐르는 물 위에 술잔을 띄우고, 그 술잔이 자기 앞에 올 때 시를 한 수 읊는 놀이로, 그런 목적으로 만든 도랑을 곡수거라 한다. 이 놀이의 유래는 천년 전 중국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만 중국에도 남아 있는 유적이 거의 없어, 이곳 포석정의 곡수거는 매우 귀중한 연구 자료가 되고 있기도 하다.
서남산에는 포석정 말고도 박 혁거세가 태어난 나정, 진한시대 육촌의 시조를 모셔 놓은 양산재, 남간사터 당간지주, 창림 사터, 창림사터 삼충석탑 둥이 걸어서 돌아보기 좋은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남산 종주길: 포석정에서 조금 더 가면 나타나는 삼릉계곡이 출발점인 남산 종주길은 그 주변으로 40여개의 골짜기와 100여곳의 절터, 60여구의 석불, 40여기의 탑이 산재해 있어 하루 혹은 반나절에 둘러본다는 것은 생각해볼 수 없을 정도이다. 경주 신라문화원이 최근 제작한 남산 순례길이 약 70개 정도인데, 남산을 처음 오르는 사람은 어느 길을 택해야 할지 마음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하루 코스로 가장 좋은 삼릉골一용장골一칠불암 코스를 비롯, 어느 골짜기로 들어서도 변화있는 풍경과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불교 나라의 이상을 실현하려 했던 신라인의 마음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다.
코스별로 남산에 산재한 불상과 바위에 새겨진 불상, 유적을 열거해 보면 남산이 얼마나 불교의 성지다운 모습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우선 삼릉골에서 금오산 정상에 이르는 코스에서는 배리 삼존석불입상, 삼 릉 목 없는 석불좌상, 삼릉골 마애관음보살상, 삼릉골 마애선 각육존불상, 삼릉골 선각여래좌 상, 삼릉골 석불좌상, 상선암 마애석가여래대불좌상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금오산 정상에서 약수골, 용장사에 이르는 코스에는 약수골 마애여래대불입상, 용장사터 삼층석탑, 용장사터 마애여래좌상, 용장사터 석불좌상 등이 남산 자락의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편안한 자세로 자리잡고 있다. 신선암에서 내려 오는 코스도 빼놓을 수 없는 곳. 신선암 마애보살상, 칠불암 마애석불, 남산동 삼층쌍탑, 서출지 등이 복스러운 얼굴 모양으로 구름 위에 사뿐히 얹어놓은 듯한 느낌을 전해주는 모습으로 앉아 있다.
동남산: 경주 시가지와 마주 보는 남산의 북쪽, 곧 임업시험장 대밭 뒤쪽의 미륵골과 여기에서 북쪽으로 약 400m 떨어진 탑골, 더 북쪽에 있는 부처골이 있는 일대를 전부 아우르는 동남산은 남산에서 가장 잘 생기고, 가장 다채롭고, 남아 있는 것 중에서 가장 나이 많은 부처가 있어서 남산을 힘들여 오르지 않고도 자비로운 부처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남산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절인 미륵골 보리사에 있는 석불 좌상을 비롯, 보리사 남쪽 산허리에 있는 마애석불입상, 부처 바위, 삼층석탑 등이 인적이 드문 한적한 분위기 속에 산재해 있어 한나절을 걸어다니면서 돌아봐도 전혀 피곤하지 않다. 특히 남산에 있는 불상 중에서 가장 오래된 감실불상이 있는 부처골에서는 봄기운처럼 따스한 표정과 온화한 자비심을 느낄 수 있는 아줌마 부처를 만날 수 있기도 하다.
토함산 일대
토함산과 인연이 깊은 탈해왕의 이름과 비슷해서 붙여졌다는 견해와 토함산의 경관에서 비롯된 이름이라는 견해가 아직까지 전해지고 있는 토함산은 동해의 습기와 바람의 변화무쌍한 조화로 지척을 분간 못 할 안개가 눈앞을 가리기도 하고, 어느 사이에 안개가 걷혀 잇달은 봉우리와 소나무숲이 한 폭의 동양화를 이루는 모양을 보여주기도 하는 산이다. 동해의 잔잔한 수평선 위로 해가 가득 떠오르고 붉은 태양이 토함산을 넘어갈 때 진정한 토함산의 이름이 주는 진의를 깨달을 수 있다는 이 산은 주변 풍광과 더불어 불국사와 석굴암을 보유한 산으로도 더 유명하다.
불국사: 우리 나라의 문화유적 중에서 불국사만큼 잘 알려져 있는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유명한 불국사는 유명함만큼 이나 우여곡절을 겪은 절이다. 전해지는 기록에 의하면, 총 2 천여칸에 이르는 60여동의 크고 작은 건물들로 이루어졌다는 기록으로 보아 불국사의 규모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인 이 절은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여러 차례 중수되었으며, 임진왜란 때는 크게 불타 석축만 남게 되었다. 창건 후 650여년간 사람들에게 참된 부처님, 참된 아름 다움의 세계로 기억되던 불국사는 그 뒤로 여러 차례 다시 세 워지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이미 전쟁으로 국력이 기운 뒤였고 숭유억불정책으로 불교도 퇴락의 길을 걷고 있던 까닭에 신라의 정신을 되살릴 길이 없게 되어 버렸다. 그 뒤 자 하문 · 범종각 · 대웅전 · 극락전 등만 간신히 남아 있다가 1969년 발굴조사 뒤, 없어졌던 무설 전 · 관음전 · 비로전 · 경루 · 회랑 등이 1973년의 대대적인 보수공사로 복원되었다.
이곳의 자랑거리로는 다보탑과 석가탑이 으뜸이다. 흙을 주무르듯 돌을 잘 구슬리고 다듬어낸 것이 다보탑의 솜씨라면, 석가탑의 솜씨는 커다란 통돌의 크기를 줄이면서 깔끔하게 상승하는 느낌을 전해주는 탑이다.
석굴암: 석굴암은 통일신라의 문화와 과학의 힘, 종교적 열정의 결정체이며 국보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문화재이다.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 정상에서는 동쪽으로 푸른 바다가 하늘 끝과 맞닿아 있고, 서쪽으로는 끝없이 이어진 봉우리들이 하늘과 만나는 절경를 볼 수 있다. 김대성에 의해 불국사와 함께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곳은,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 곧 석굴암을 창건 하고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는 불국사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석굴암은 창건된 이후 고려나 조선시대에는 어떠한 모습으로 있었는지 알 길이 없으나, 큰 변화 없이 당시의 모습을 유지 해 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실의 네모난 공간과 원형의 주실로 나뉘어 있는 이곳의 주실에는 본존불과 더불어 보살과 제자상이 있고 전실에는 인왕상과 사천왕상 등이 부조돼 있어 석굴사원이긴 하지만 사찰건축이 갖는 격식을 상징적으로 다 갖추어 하나의 불국토를 이룬 것을 알수 있다.
감포 앞바다 대왕암 · 이견대 · 감은사터
대왕암 · 이견대 · 감은사터 등 당시 신라인들의 불교에 대한 높은 관심과 호국 의지가 엿보이는 문화유적이 위치한 감포 앞바다는 경주 보문단지에서 4번 국도를 타고 추령고개를 넘어 동해바다로 나서면 만날 수 있다.
토함산으로 갈라선 경주시내와 동해 쪽 경주 외곽을 연결하는 것이 추령고개. 이 고개를 넘는 국도가 4번 국도인데, 차 창 밖으로 구불구불한 산길과 너른 들, 계곡이 펼쳐지고 있어 드라이브 코스로 적격인 곳이다.
국도를 타고 넘어오면서 고조된 기분을 잠시 정리할 수 있는 곳이 대왕암이다. 세계 유일의 수중릉이라는 사실은 아직까지 구체적 근거가 없어 조금 섭섭 한 감이 있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문무왕의 호국 의지를 느 끼게 해주는 데는 손색이 없다.
이견대는 대왕암을 의미있게 눈여겨 볼 수 있는 곳. 또한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이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보배 만파식적을 얻었다는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감포 앞바다에서의 시간을 잠시 접어두고 돌아볼 곳으로는 감은사터를 들 수 있다. 문무왕과 신문왕 2대에 걸 쳐 완공시킨 감은사는 절의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부왕의 명복을 비는 신문왕의 효심의 발로에서 창건된 절이다. 또한 이 절터에 자리잡고 있다가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진 감은사터 삼층 석탑은 기운차고 견실하며, 장중하면서도 질박함을 잃지 않는 절묘한 모양으로 잘 알려져 있다.
찾아가는 길: 경주는 경부고속도로 경주인터체인지에서 빠져나오면 된다. 포항에서 시작 되는 31번 국도는 감포 앞바다를 경유하는 방법. 구룡포를 거 쳐 감포 · 울산으로 내려가는 해안도로인 이 국도를 이용해서 감포 앞바다를 먼저 살펴보고 감포 밑 영안 주유소에서 우회전, 4번 국도로 진입해서 경주로 가는 방법을 택해도 된다.
숙박 및 맛집: 전화번호에 소개된 숙박시설외에 불국사 온천 호텔(0561-745-6661~3), 불국사 온천장(0561-746 -6638)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맛집으로는 상에 오르는 반찬 의가짓수도 많고 불고기 맛도 일품인 노서동의 원풍(0561-745-7771), 동해식 당(0561-749-1116)이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