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설레임과 함께 긴장감을 동반한다. 뭍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섬은 쉽사리 사람들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는다. 느닷없이 폭풍우가 몰아쳐 뱃길을 며칠째 묶어놓기 일쑤이다. 그래서 섬을 찾을 때는 미리 날씨를 알아봐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섬을 찾는 사람들의 기본 상식이다.
기묘년 토끼의 해가 밝았다. 강추 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즈음, 자연의 보배인 섬을 찾아 떠나보자.
전남 여천군 삼산면 거문도리에 위치한 거문도는 여수에서 남쪽으로 80km 떨어져 있고, 여수와 제주도의 중간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인구는 900여명으로 주로 해산물을 채취하거나 민박과 고기를 팔아 생계를 꾸려간다.
여수항에서 쾌속선으로 1시간 30분이면 거문항에 닿는다. 거문도는 고도·동도·서도·삼부도·백도군도를 포함한 섬을 말한다.
거문도 주변은 수심이 깊어 대형 선박을 댈 수 있는 조건이 좋다. 그 옛날 대한해협의 문호로서 한·일 양국의 해상 통로였으며, 러시아 동양함대의 길목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러다 보니 빈번이 열강의 침입을 받아왔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거문도사건이다. 영국이 러시아의 조선 진출을 견제하기 위하여 1885년(고종 22년) 음력 3월 1일부터 1887년 2월 5일까지 거문도를 불법 점령한 사건이다. 군함 6척과 수송선 2척으로 구성된 영국 해군선단이 거문도를 점령하고 기지와 항구를 구축하면서 2년간 머물렀다. 우리 나라의 주권을 무시하는 도발 행위로 기록되어 있지만 당시 거문도 주민들과는 아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거문도의 원래 이름은 거마도. 그밖에 합비돈(해밀턴항) 등으로 불려 왔다. 왜도라 불린 것은 왜구들이 자주 침입해 왔기 때문이고, 거문도를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해밀턴항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거마도가 거문도로 바뀐 진짜 이유는 바닷길의 요충지인 이곳에 드나들던 중국인들이 주민들과 필담으로 의사 소통을 하면서 현지 주민들의 해박한 문장 실력에 경탄, 거마도를 거문도(글을 잘 아는 사람이 사는 섬)라 부른 데서 기인한다.
거문도로 가는 뱃길은 융단을 펼쳐 놓은듯 아름답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백미를 보는 듯하다.
남해의 어업 전진기지로서 전국의 어선들이 몰려들고 있는데, 1905년 국내 최초의 거문도 등대가 건립된 것도 이 때문이다. 서도 수월산(해발 196m)에 자리잡은 이 등대는 프랑스에서 제작된 프리즘 렌즈에 의해 적색과 백색의 섬광이 매 15초마다 점등된다.
거문도 등대까지 오르는 길은 산책로로 안성맞춤이다. 길을 따라 늘어선 동백나무숲은 하늘을 가릴 만큼 울창하고 경사도 완만해 아이들과 올라도 무리가 없다. 약 20분간 산을 오르면 등대가 보이는데 탁 트인 바다를 배경으로 아담한 관사가 나타난다.
절벽 위 관백정에서 내려다보이는 남해 바다가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등대 초입까지 고도 거문항에서 부정기적인 유람선이 운항되는데, 거문리에서 등대까지의 거리는 3. 5km로 걸어서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거문도의 본섬인 동도·서도·고도 등 세개의 섬은 바다 가운데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거문도에서 동쪽으로 28km 떨어져 있는 백도는 무인군도, 상백도와 하백도로 나누어져 있고, 바람과 파도가 빚어낸 갖가지 바위와 벼랑이 절로 탄성을 자아낸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남해의 소금강으로 부르고 있다. 백도 주변은 풍란, 쇠뜨기, 땅채송화 등 아열대식물과 흑비둘기, 가마우지 등 뭍에서 볼 수 없는 동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거문도와 백도에서 특히 볼 만한 풍경으로 鹿門努潮가 있다. 서도 북쪽 벼랑을 녹문이라 하는데, 바람이 불면 물기둥이 솟아 오색 물보라를 날리는 것이다. 옛부터 운치를 따지는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고 녹문노조라 불렀다고 한다.
또 거문도 사람들은 紅國漁火라는 말을 쓰는데, 그 뜻은 고기잡이가 한창일 때의 거문도 풍경을 말한다. 수백 척의 고깃배들이 밤바다를 환히 밝히고 조업하는 광경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거문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백도 관광이다. 상백도와 하백도를 포함해 60여개의 무인군도로 이루어진 백도는 명승지 7호로 지정되어 있다. 자연 보호를 위해 섬에 오르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나 백도일주 유람선을 이용해 3시간 가량 백도의 절경을 볼 수 있다. 백도의 기암절벽들은 그 생김새가 특이해 바위마다 고유한 이름이 붙어 있다. 서방바위·각시바위·매바위·병풍바위 등 이름만큼이나 절묘한 모양새를 뽐낸다.
거문도와 백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삼부도와 대삼부도는 낚시터로도 인기가 좋다. 숙박 및 편의시설이 전혀 갖추어지지 않은 무인도지만 섬에 올라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거문도에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1호로 지정된 거문도 뱃노래가 있다. 삼산면 거문도 어민들이 황금 어장에서 고기를 잡으며 부르던 옛노래로 4백여년 전부터 구전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매년 음력 4월 15일이면 풍어제를 통해 옛 모습이 재현되는데 배의 밧줄을 꼬며 합창하는 술비소리의 가락이 구성지다. 북·꽹가리·장구의 반주로 불리는 이 노래는 고유의 가락과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가는 길
여수항→거문도(거문도→여수항) 08:00, 14:30(08:00, 15:30), 1시간 30분 소요. 요금은 일등 23,350원, 우등 24,350원.
배편 문의는 거문도 여객선터미널(0662)666-8215.
거문도에는 차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주민들의 주된 교통수단도 오토바이와 자전거. 섬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섬 일주 유람선을 이용하거나 도보로 둘러보아야 한다. 거문항에서 백도행과 거문도 등대행 유람선이 20명
이상이면 수시로 출항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