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주제를 '새로운 통신과 사업’으로 하고 보니 먼저 범위부터 정하려고 한다. 시기는 1990년대부터 21세기 초반에 걸쳐 예측되고 있는 통신에 관해 기술과 서비스 및 사업환경을 전망해 보려고 한다. 대상으로 하는 통신은 보고 듣는 정보와 靜的 및 動的 정보가 통합된 멀티미디어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19세기가 개별적 통신의 발명기였다면, 20세기는 그것들의 발전성장기였으며, 21세기는 통합된 통신으로 차원 높은 혁명을 기대하고 있다. 통신 혁명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기술은 20세기 후반에 개발된 몇 가지 새로운 통신기술과 컴퓨터기술이다. 이런 혁명에 의해서 현재의 통신이 어떤 모습으로 변모할 것인가를 여러 관점에서 전망해 보려고 한다. 우리의 통신 주무관청인 체신부가 정보통신부로 개칭된 것도 21세기에 전개될 개혁에의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통신의 터줏대감인 우편의 변모 가능성에 대한 관심도 필요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통신에 관한 새로운 인식에 필요한 내용들을 광범위하게 담아보려고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현재의 대표적 통신 모습인 전화와 컴퓨터통신 및 방송이 통합 되는 통신을 새로운 통신으로 정의하려고 한다. 현재 존재하고 있는 통신을 통합하는데 새로울 것이 있느냐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기존의 설비 기반을 수정 내지 개량해서 통합이 달성될 수 있다면 새롭다고 할 수 없겠지만, 근본적으로 새로운 설비와 새로운 경쟁 환경에서 새로운 서비스가 탄생되는 것이므로 새롭다는 말이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통합이 되면 사업자도 통합돼 줄어들 것이 아니냐는 관점도 있지만, 그것은 독점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경쟁의 본질은 사업의 다원화가 기본이며, 새로운 시장의 개척으로 오히려 세분화가 촉진될 것이다. 기술의 경쟁, 서비스 경쟁, 사업자간 경쟁 등이 한데 어우러져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것이다. 유선의 대표 자리를 재빨리 차지한 광통신이 무선통신과 벌이게 될 경쟁은 과거의 개념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연출될 것이다. 컴퓨터가 통신에 깊숙이 파고들어 네트워크와 터미널을 지능화 하는 경우에 통신의 개념 자체에도 수정이 필요할지 모른다. 혁명을 이끌어갈 요소기술들을 먼저 살펴보고, 그것이 미칠 혁명의 모습을 일반 상식 선에서 가급적 이해하기 쉽게 해설해 보려고 한다.
역사의 재인식
통신의 원조인 우편은 본래 서신, 즉, 靜的인 보는 정보의 지리적 이동이 목적이었는데, 이동수단으로 사람이나 동물 또는 기계에 의한 운송 수단을 이용하였다. 즉, 정보의 이동과 물자의 운송이란 통합된 산업으로 출발했다. 19세기 중엽에 전기통신이란 새로운 정보의 운반 수단이 발견됨으로써 통신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전기적 수단에 의해 전송로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게 되었다. 이 전신이 탄생됐을 때 우편이 전신과 통합하는 길을 모색했더라면 인위적인 운송수단과 결별할 수 있었을 것을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우편의 고유성을 전신이 구현하기에 너무 빈약했고, 전보 자체도 우편의 운송수단을 이용해야 했다.
19세기 말엽에 발명된 전화는 통신의 신천지를 개척했다. 즉, 정보 전달에 있어 운송수단을 전적으로 배제한 순수 통신의 영역을 개척한 것이다. 정보를 발신자에서 수신자까지 직접 전달하는 엔드 엔드(end-to-end) 통신을 처음으로 달성한 것이다. 둘째는 음성 대화라는 듣는 動的 정보를 다루게 된 점이다. 엔드-엔드 통신을 성취하기 위해 통신자(송신자와 수신자)가 존재하는 장소까지 전송로를 건설해야 하는 加入者을 창조하였다. 이 가입자선을 건설하는데 한 세기가 소모됐지만, 아직도 세계에는 불비된 곳이 더 많이 남아 있다. 근래에 운송 분야에서 택배(door-to-door)라는 직접배달 서비스가 생겨났는데, 그런 관점에서 통신은 우편을 포함해 2세기 정도 앞섰던 것이다.
정보는 보는 정보와 듣는 정보로 크게 분류 될 수 있다. 보는 정보는 문자와 그림인데, 주로 정지 상태에 있으므로 문서에 담아 운반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음성 대화는 듣는 정보로서 쌍방향으로 주고 받아야 하는 動的 정보 이므로 색다른 통신수단이 필요했던 것이다. 전화의 통신 모형을 흉내 낸 보는 통신이 텔렉스(Telex)이며, 쌍방향의 엔드 엔드 통신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러나 텔렉스도 문서통신의 특성인 단방향 정적 문서 통신이 주력이었으므로, 전보의 영역을 완전 탈피하지는 못하였다. 텔렉스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컴퓨터통신은 또 하나의 신천지를 개척했다. 네트워크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인터넷은 특정 통신망의 고유명사지만, 網間網이란 뜻이 시사하듯이 자체적으로는 가입자선을 보유하지 않으면서 엔드 엔드 통신을 구현한 것이다. 컴퓨터통신의 사용자 접속망은 LAN(Local Area Network, 근거리통신망) 이었는데, LAN은 구내통신망으로 사설통신망이다. 즉,사설통신망을 기반으로 하여 공중통신 서비스를 시작했던 것이므로 네트워크와 사업의 판도를 바꿔 놓는 계기를 마련했다. 시내전화망을 이용하게 함으로써 공중 서비스가 절정에 달했다. 인터넷 서비스 중에 전자우편(electronic mail, E메일) 이란 통신이 최근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전자사서함(electronic mail box)은 우편사서함에서 운송수단을 전송수단으로 바꿔 놓은 모형이다. 즉, 19세기에 전신이 못했던 우편과의 통합을 컴퓨터통신이 상당 부분 해낸 것이다. 우편의 고유성을 전부 구현하지는 못하더라도 문서 전달 부분은 전자통신으로 구현될 수 없겠는지가 관심거리이다. 우편이 운수산업과 경쟁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보사회는 어떤 관점에서 통신과 운수의 경쟁이다. 우편이 운수 영역에서 힘겨운 경쟁에 전념하느니보다 통신 영역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은 없겠는가를 생각해본다. 전자적인 문서 전달과 전자상거래 EC(Electronic Commerce)에는 통신의 인증이 중요한데, 전통적인 통신의 인증기관인 우체국이 담당할 방법은 없는지 관심이 든다. 아울러 우체국의 일부인이 찍힌 전자엽서의 구상도 곁들일 수 있을 것이다. 우체국은 전국적인 컴퓨터망을 보유하고 있다.
우편과 전자통신 및 컴퓨터가 융합된 모양의 통신이 생겨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용어의 외형만으로 속단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많다. E 메일을 비롯하여 인터넷이 취급하는 정보는 보는 정보뿐만 아니라 듣는 정보도 포함되며, 정적 정보와 동적 정보, 그리고 방송까지도 다루고 있다는 관점에서 새로운 통신이란 개념을 정리하려고 한다. 그 개념에는 새로운 우편도 포함되기를 기대한다.
멀티미디어망 모형
멀티미디어(multimedia)란 말은 광의로는 2개 이상의 미디어(매체)가 복합되어 있는 정보 또는 매체라는 뜻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책과 같이 문자와 그림이 복합되어 있으면 멀티미디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협의의 멀티미디어는 오디오와 비디오가 복합된 정보에 초점을 두고 있으므로, TV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데 TV는 보는 정보와 듣는 정보를 복합하고 있으면서, 둘 다 동적 정보를 다루고 있는 통신정보의 최고급 상품이다. 동적 정보는 시시 각각으로 변화하는 정보를 말하며, 따라서 實時間(real time) 정보라고 한다. 그런데 멀티미디어를 TV와 같이 실시간의 보고 듣는 정보로 국한하면 할 일이 너무 축소되므로 동적인 부분을 완화시켜 보고 듣는 정보의 복합으로 정의한다. 그러므로 듣는 정보는 특성상 실시간 정보를 다루되, 보는 정보는 정적 정보도 포함된다. 선생이 칠판에 글자와 그림을 그리면서 말로 학생을 가르치는 형태나, 전화에 보는 정적 정보가 복합된 미디어도 포함되는 것으로 한다.
그런데 통신에서 멀티미디어를 전송하려면 매우 복잡한 문제가 생긴다. 보는 정보와 듣는 정보의 특성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으므로 복합해 전송한다는 문제가 쉽지 않다. 또한 정적 정보와 동적 정보도 전송상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다. TV 기술을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TV는 대중을 상대로 하는 단방향 통신인 방송이다. 쌍방향과 엔드 엔드 통신을 원형으로 하는 일반 통신에 방송을 적용하려면 기술도 문제지만, 우선 가격에서 불가능하다. 우리는 종종 기술과 상품 및 사업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상품은 기술을 기초로 하지만, 대량으로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시장 개척을 못하면 사업은 존재할 수 없다. 기술 개발과 상품화 및 시장 개척은 서로 밀접한 관련은 있지만 별개의 분야이다.
멀티미디어에 관하여 이 글에서 다루려고 하는 통신망의 모형을 그림1로 그려 보았다. 먼저 현재의 시내전화망을 그림(다)에 표시했는데, 이것이 멀티미디어 망으로 개혁되면 그림 (나)와 같이 변모할 것이다. FTTC(Fiber To-The-Curb)라는 배선방식은 전화사업자가 추진하려는 멀티미디어망의 모형이다. FTTC라는 용어는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으므로 독자의 기억을 위해 그대로 사용할 것이다. 현재 전화국 교환기에서 2,400페어의 구리선 페어케이블(전화선)이 각 가입자 전화기까지 한 페어씩 따로따로 배선되어 있는데, 바로 이 가입자선이 음성급 전화 서비스에 한정시키고 있으므로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가로막고 있다. 페어(pair)란 두 가닥의 절연된 전선을 꼬아서 한 쌍을 이루게 한 것으로, 현재의 전화선을 말한다. 물론 현재의 전화선에다 팩스와 PC도 연결해 사용하고 있지만, 모뎀이란 장치가 필요하고 또한 본격적인 멀티미디어 서비스에는 역부족이다.
FTTC망은 회선교환기(장래의)에서 커브 (curb)까지 기존의 페어케이블(2,400페어) 대신에 광케이블(1 또는 2가닥)을 신설한다는 배선 방법을 말한다. '커브'란 도로 옆의 공공용지를 말하며, 현재의 배선용 전주가 서있는 장소인데, 단독주택 지역에서 배선하는 경우에 적용되는 용어이다. 그림에서는 아파트나 대형 건물과 같이 사설 구내전화 배선망이 존재하는 사유지 내에 설치하는 경우를 표시하였다. 그러므로 현재의 아파트내의 배선반 자리에 사업자의 광케이블이 종단되어 현재의 구내전화선에 연결된다. 멀티미디어망은 TV와 같은 광대역 정보를 전송해야 하므로 광케이블을 신설하는 것은 이해되지만, 기존의 구리선 구내전화선으로 어떻게 TV와 같은 멀티미디어를 전송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 xDSL 이란 기술이라는 점만 언급하고 구체적인 설명은 후에 개별적으로 할 것이다. xDSL 기술을 적용하면 수백미터 이내에서는 멀티미디어 정보도 거뜬히 전송할 수 있다. 그림은 전화기와 팩스 및 PC를 따로 그렸지만, 실제는 하나의 전화선에 세 종류의 장치 혹은 그 이상도 함께 연결되어 서비스를 받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광단국 장치부터 가입자까지 전화선이 현재와 같이 따로따로 배선된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주목할 점은 광단국이 사설인 구내배선망(대형건물인 경우에는 구내전화교환망)에 연결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광단국에서 회선교환기까지 가는 하나 또는 두 가닥의 광케이블이 종전의 2,400페어 구리 선 페어케이블 이상의 기능을 대신한다는 점에 더하여, 가입자선이란 성격이 국간중계선이란 성격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종전에는 가입자마다 독점적으로 사용하던 가입자선이었는데, 앞으로는 모든 가입자들이 공용하는 중계선으로 바뀐다는 것은 사업적 관점에서 혁명의 요소로 작용될 수 있다. 또한 전화사업자라는 점을 나타내기 위해 회선교환기라고 표시했지만, 실제는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위해 패킷교환 방식인 ATM교환기가 설치될 것이며, 전화국이라는 특정 사업자가 아닌 다원 사업자의 중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FTTH(Fiber-To-The-Home)라는 용어도 소개하겠는데, 이것은 FTTC에서 구내전화선을 모두 광케이블로 대체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 방식은 아직 기술적으로 어렵고 고가이므로 가까운 시일 내에 보편화되지는 않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초고속통신 서비스를 위해 계획되고 있다.
그렇게 되고 보니 그림(나)의 FTTC망이 그림(가)의 HFC망과 유사한 망이 되고 말았다. HFC(Hybrid-Fiber-Coax)라는 멀티미디 어망은 종전의 동축케이블로 구성됐던 케이블 TV 분배망을 대부분 광케이블로 대체하려는 것이다. 다만 구내배선 부분만 전화의 경우와 같이 기존의 동축케이블을 사용한다. 이것은 케이블TV 사업자(외국)가 추진하려는 멀티미디어망의 모형이다. 우리 나라는 이 부분을 유선방송사업자(SO)와 망사업자(NO)가 분담하고 있어 그림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개념은 유사하다. 종전의 동축케이블을 광케이블로 대체함으로써 두 가지 중요한 기능이 추가된다. 본래의 아날로그TV 40채널을 80채널로 증대 시키고 디지털TV를 약 500채널 더 증대시킨다는 계획이 첫째이고, 둘째는 쌍방향 통신 기능을 추가한다는 것이다. HFC망의 광단국 장치에는 케이블모뎀이라는 장치가 설치되어 쌍방향 통신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만 여기서는 언급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FTTC망 및 HFC망과 같이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하는 통신망을 FSN (Full Service Network)이라고 하는데, 이 글에서는 멀티미디어망이란 용어를 쓰기로 한다. HFC망은 케이블TV 사업자가 기존의 케이블TV 시장을 고수하면서, 주문형 비디오(VOD)와 멀티미디어 통신 시장에 진입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FTTC망은 전화사업자가 기존의 전화 시장을 멀티미디어 통신 시장으로 확대하면서, VOD 시장에 진입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새로운 신규 사업자들도 나름대로의 독자 기술을 가지고 경쟁에 뛰어들 것이다. 이와 관련되는 국제표준에 광대역 ISDN이란 통신망이 있고, 요사이 인기를 끌고 있는 협대역 ISDN이 있는데 개별적으로 설명할 것이다. 그렇다면 멀티미디어 서비스는 누가 하는가?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멀티미디어 서버가 HFC망과 FTTC망 어느 망에나 접속돼 서비스를 경쟁시키게 될 것이다. 인터넷을 예로 들면 WWW, E메일, 파일 전송, 뉴스, 방송 등이 있으며, 기타 여러 서비스제공업자들이 추가될 것이다.
무선은 본래 이동성과 광역성 및 설치의 용이성이란 고유의 무기를 활용해 유선에 도전해 왔다. 무선 내에서도 차량용과 휴대용이 치열한 경쟁 국면으로 돌입했는데, 여기에 저궤도위성통신이 도전하고 나섰다. 정지위성통신도 방송용과 통신용이 경쟁을 하며, 유선방송에게도 도전장을 냈다. 한편 디지털TV를 비롯한 디지털방송의 국제표준이 합의됐으므로 지상전파 방송도 신기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유선 가입자망에 도전하고 나선 무선가입자망 WLL (Wireless Local Loop)의 귀추도 관심 거리가 될 것이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상품화하고 시장을 개척하는 사업자들간의 경쟁도 중요하고 흥미진진한 구경 거리가 될 것이다. PC를 기반으로 하는 터미널의 지능화는 네트워크의 서비스 기능을 상당 부분 흡수하게 될 전망이다. 주문형 비디오 서비스가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테이프나 디스크와 같은 패키지산업과 한판 승부를 다퉈야 할 것이다. VOD 보다 전자게임 시장이 먼저 다가올 추세라고 한다. 이와 같이 새롭게 전개될 통신의 요소들과 서비스 및 사업 환경을 가급적 빠짐없이 다뤄보려고 한다. 구경만 할 것이 아니라 우편의 전자통신화도 곰곰이 찾아볼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