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철이 다가오면서 젓갈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이즈음, 멸치와 미역으로 유명한 대변항으로 가보자.
부산광역시에 속해 있는 대변항은 전형적인 갯마을로서 기장 미역의 주생산지이다. 어자원 감소로 지금은 예전만큼 풍성한 어획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미역과 멸치 하면 대변항을 꼽을 정도로 그 명성을 이어왔다.
포구의 활기가 묻어나는 대변항
기장 미역의 주생산지
대변항에는 50여곳의 횟집들이 늘어서 있고, 출어를 기다리며 선창에 닻을 내린 멸치잡이 배들이 물살에 출렁거린다. 본격적인 김장철을 앞두고 멸치젓을 쌓아두고 손님들을 기다리는 상인들의표 정은 초겨울 햇살만큼이나 환하다. 횟집마다 마련된 수조통에는 갖가지 고기들이 노닐고 연신 들락 거리는 자동차들의 행렬은 이곳의 활기찬 경기를 말해준다.
포구에서는 일년 내내 멸치 배들이 머무르고 멸치를 말리거나 다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멸치는 말리거나 젓을 담가 먹는 것이 일반적이나 회나 생것을 지져서 먹기도 한다. 살이 연하고 지방이 풍부한 멸치는 그물에서 털어내는 즉시 소금에 저려 젓을 담거나 쪄내서 말린다. 멸치는 상하기 쉬우므로 이렇게 재빨리 손질하지 않으면 안된다.
멸치는 풍부한 칼슘을 함유하고 있는 영양의 보고이다. 적당히 간이 된 마른 멸치 한 마리를 입안에 넣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없다. 뼈째 먹는 몇 안되는 생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멸치는 우리 나라 전 해역에서 고루 잡히는 어종으로 가을에는 남쪽바다로 이동하여 겨울을 보 내고 봄에 다시 연안으로 돌아온다. 남해안에는 주로 추자도를 중심으로 쪄말리는 세멸(가는 멸치)이나 중멸이 주를 이루고 기장 연안과 동해 · 강릉까지는 시기가 다르지만 주로 대멸, 즉 왕멸치가 많이 난다. 왕멸치는 대부분 액젓으로 이용된다. 산란기는 봄 · 가을 두 차례로 이때가 가장 맛있을 때다.
멸치잡이 배들은 새벽 5시경 출어하여 오전 9 시가 되면 배 가득 멸치를 싣고 돌아오는데,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난 뒤 구성진 노동요와 함께 이른 바 '멸치털이'가 시작된다. 멸치 터는 것을 '멸치 후린다'라고 하며 이 작업은 6~7명이 한 조가 되어 하는 힘든 노동이다.
그 옛날, 필자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도시락 반찬으로 가장 흔하게 접했던 것이 멸치였다. 문헌에는 멸치가 멸아(兒)라고 나와 있는데, 이것은 그 당시 멸치가 너무 흔하다 보니 그런 이름이 붙었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그러나 지금은 제대로 된 멸치 한 포에 적게는 5~6만원, 많게는 10만원을 호가할 정도로 귀한 수산물 대접을 받고 있다.
싱싱한 멸치횟집 즐비
여기서 멸치젓 담그는 방법에 대해 잠깐 살펴보자. 멸치를 소금에 절여 삭힌 것을 멸치젓이라 하는데, 생멸치 10되에 소금 6되 비율로 담근다. 항아리에 멸 치와 소금을 한 켜씩 번갈아 담고 맨 위에는 멸치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소금을 하얗게 얹는다. 이때 항아리 위에 큰 돌덩이를 올려 놓기도 하는데, 이는 공기의 접촉을 막기 위해서이다. 멸 치젓은 숙성기간과 담그는 방법에 따라 액젓과 육젓으로 나눈다. 액젓은 주로 일년 이상 숙성시키고 소금의 양도 육젓보다 조금 적게 넣는다. 일년 이상 잘 숙성하면 선홍색을 띤다. 액젓은 김치를 담글 때 다려서 넣어도 좋고, 해산물을 데쳐 먹거나 무쳐 먹을 때에도 많이 이용된다.
멸치회도 그 맛이 일품인데, 싱싱한 멸치를 깨끗이 다듬어 배, 미나리 등을 넣고 갖은 양념을 해서 먹는다. 생멸치로 만든 회가 얼마나 연하고 부드러운지 이곳 사람들은 멸치가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라고 말한다. 현재 대변포구에는 멸치회를 전문으로 하는 횟집만 20여곳에 이른다.
한편, 대변항을 둘러보고 울산 방면으로 올라가다가 만나게 되는 일광역에는 역무원 2명이 근무하는데, 주말이나 휴일을 빼놓고는 한산하기 이를 데 없다. 휑뎅그렁한 역사와 철로가 고즈넉하게 누워 있는 모습은 간이역 특유의 고적감을 느끼게 한다.
대변항 주변에는 이외에도 볼거리가 많다. 기장 습에서 버스로 20분 거리에 있는 국내 3대 관음성지의 하나인 용궁사(기장읍 시랑리 소재)와 국립수산진흥원내에 있는 수산과학관, 그리고 기장읍 연화리에 자리한 서암포구, 부산의 명소 달맞이고 개까지 색다른 정취를 자아내는 곳들이다.
검푸른 바닷물이 발 아래에서 넘실거려 '수상 법당'이라고도 불리는 용궁사는 고려 우왕 2년 (1367년) 나옹화상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용궁사 일대는 일출을 보기에도 좋은 곳이라서 아침 일찍 찾으면 좋다.
대변항에서 13km쯤 떨어져 있는 달맞이고개는 또다른 명소,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면 이곳에서 달맞이 행사가 펼쳐진다. 모래사장 한가운데 달집을 만들어 놓고 보름달이 떠오르면 달집을 태우면서 재물을 바다 용에게 바치는 순서로 이어지는데, 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이는 달맞이고개에서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쥐불놀이를 펼쳐 장관을 연 출한다. 특히 달맞이길 카페촌의 휘황한 불빛과 고개 위에 즐비하게 자리한 음식점들은 저마다 독특한 치장을 한 채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가는 길
대변항이나 용궁사 방면으로 가려면 기장읍내에서 택시를 타거나 20분 간격으로 있는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부산진역에서 좌석버스를 타고 해 운대역 앞에서 내려 대변행 시내버스로 갈아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