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좀 잘 구사한다고 자기의 기능을 우선 팔려고 하는 쟁이, 외국어를 좀 잘하고 남보다 부지런히 많은 외국 잡지와 카탈로그 등을 읽고 체하는 카탈로그 엔지니어(catalogue engineer), 證書를 내세우는 라이센스 엔지니어(licence engineer), 허송 세월을 보낸 기간을 임상경험으로 내세우는 관록형 엔지니어, 자신의 주제 파악은 못하고 들은 풍월로 한 몫을 하려는 스피치 엔지니어(speech engineer), 長 자리를 지상목표로 하는 출세주의 엔지니어들의 중론이 공론을 짓누르고 있고, 또 거리에서 파는 환쟁이의 기교와 인간의 혼이 담긴 한 폭의 예술 작품을 구별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어떠한 가치 기준으로 누가 누구를 어떻게 시스템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전문가가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인사제도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잠시 과거에 필자가 겪었던 일을 소개하기로 한다. 정보과학 및 시스템과학을 전공한 후 컴퓨터 프로그래머로서 일을 한 지 3년이 지났을 때 ‘컴퓨터라면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5년이 경과된 후에는 이 세상 무엇 이든지를 컴퓨터로 한다면 제일인자가 될 것 같았었다. 자신만만하여 시스템 분석가로서 현장에 뛰어들었다. 컴퓨터 시스템을 제일선에서 사용할 현업요원들로부터 일을 끌어내어 하나의 서브시스템을 개발하게 되었다. 현업 요원들에게 컴퓨터 나라 말로 접근을 하니까 다들 도망가듯 만나려 들지도 않는다. 희계 요원들에게는 회계 나라 말로, 마케팅 요원들에게는 마케팅 나라말로, 생산관리 요원들에게는 생산관리 나라말로, 인사관리 요원들에게는 인사관리 나라말로, 유통관리 요원들에게는 유통관리 나라 말로, 품질관리 요원들에게는 품질관리 나라말로 접근해야 되는데 필자가 알고 있었던 것은 컴퓨터 나라 말뿐이었다. “내가 무엇을 배워왔고 무엇을 알고 있단 말이야? 참으로 아는게 없구나 ! ” 실망 또 실망…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한없는 실의에서 방황하기를 3년, 만신창이가 된 난파선을 끌고 채찍질 하기를 또 4년, 컴퓨터 시스템과의 생활이 통산 12년 되던 해였다. 수평선 저 너머로 육지가 있다는 징후를 감지하듯이 필자가 공부를 하고 다가가야 할 방향감각을 잡았다. “내가 가야 할 목표는 道를 터득하는 것, 그것은 시스템 마인드(SYSTEMS MIND)의 터득이다.”라는 서광이었다. 또 다른 환경인 한국적 풍토, 우리의 시스템 환경에 뛰어든 지 10여년간 쌍용의 MIS 개발에 나의 영혼을 바쳐 보았다. 그러나 머리가 숙여질 뿐이다. 미완성의 작품이 끝내 아쉬울 따름이다. 남들이 무엇이라고 하든 그것에 개의할 필요는 잆다. 오직 불후의 MIS를 남기고자 할 뿐이다.
컴퓨터 시설 도입에서
컴퓨팅 파워 도입 전략을 택하라.
회사에서 시스템 분석가를 자체 양성하는데에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다. 초급 수준의 시스템 전문가 한 사람을 키우는데 8년여가 소요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하여 8년이 지나면 과장급쯤 올라가는 것이 지금의 기업계의 실정이다. 계급이 올라가야 보수가 올라가는 관료주의 인사관리제도가 뿌리를 내린 회사에서는 전문가가 배양되지 않는다. 일반 분야로 진출한 동기생은 과장이 되어 목에 힘을 주고 있는데 시스템 분석가라고 평사원으로 있으려 하겠는가? 그렇다고 전문가에게 과장 자리를 주면 어떻게 되겠는가? 관리자가 되어 버린다. 전문기술은 早老化 현상을 일으킨다. 그대로 놓아 두면 어떻게 되겠는가? 어디를 가나 한 몫을 단단히 할 수 있는 시스템 분석가는 현업부서의 과장이든 타사의 전산실장이든 관리자로 빠져 나간다. 50~60대 층의 시스템 분석가가 철학이 있는 시스템을 설계하고 개발하는 미국과 일본 등의 사정과 비교하여 볼 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두뇌와 기술이 고도로 축적되어 있어야 지구상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세계 환경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 士農I商 서열, 관존민비 관념,「장(長)=출세=돈」등식의 가치관,「사장은 주인, 종업원은 머슴」이란 잠재의식 등이 도사리고 있는 한 전문가층은 형성되기 힘들다. 제너럴 맨 (general man)만 득실거리고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는 뿌리도 못 내린다.
필자가 쌍용의 MIS사업에 착수해서 가장 역점을 둔 부문이 시스템 분석가 등 전문가가 양성될 수 있는 인사관리제도의 도입이었다. 경영정보실 요원들의 직제를「주니어 프로그래머(junior programmer),「프로그래머」, 「주니어 시스템 애널리스트(junior systems analyst)j,「시니어 시스템 애널리스트(senior systems analyst)j,「컴퓨터 스페셜리스트(computer-specialist)」, 「슈퍼바이서리 스페셜리스트(supervisory specialist)」등의 전문직급으로 하였다. 그리고 관리상 필요한 부서(과 또는 부)의 장은 전문가 중에서 관리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보하되 직책수당은 아주 적게 하여 명목상으로만 책정하였다. 본인의 적성, 능력 그리고 실적 등의 자격요건이 갖추어진 요원은 일반직의 부장급에 해당되는「슈퍼바이서리 스페셜리스트」가 될 수 있게 하였다. 이 제도를 도입하는데 8개월이 걸렸다. 수십년 전, 아니 수백년 전부터 내려오는 기존의 제도 • 관습 • 관념을 깨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10여년 전부터 훈련을 시켜 육성해온 요원들이 대부분 필자와 같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아 이 제도는 일단 성공을 거두었다고 하겠다.
시스템 분석가가 일반 회사에서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지원 부문의 전문가보다 주종 부문인 영업이나 생산직 요원이 월급쟁이의 꽃이란 중역이 될 수 있는 확률이 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스템 분석가는 자신의 전문 분야를 찾아 시스템 전문회사로 모여든다. 필자가 책임자로 있던 쌍용경영정보실이 (주)쌍용컴퓨터란 전문회사로 독립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우리나라 기업에서도 미국이나 일본에서와 같이 MIS 개발에 필요한 전문인력은 외부에서 계약 베이스로 공급을 받아 시스템을 개발하고 자사의 요원들은 비전문적인 시스템 운영에 투여, MIS 사용에만 역점을 두기 시작했다.「컴퓨터 시설 도입」에서 「컴퓨팅 파워 도입」으로 진일보한 것이다.
의식구조는 시스템
구성요소의 핵이 된다.
그 동안 MIS 사업을 위한 작업반의 구성을 논해 왔다. 지금부터 MIS가 심어질 밭을 갈러 나가자. 우선 토질의 성분을 검토하여야 되겠다. 토질이 산성화되었으면 알칼리성으로 변환하기 위한 객토작업을 해야 하지 않겠는 가?
나무는 흙 위에서 살지만 MIS는 회사나 기관의 조직 구성원들의 의식구조 위에서 사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잘되고 있는 제도를 그대로 도입하였으나 오히려 부작용만 가져다 주는 경우가 허다한 것을 우리는 많이 보아 왔다.
시스템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그것은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환경 풍토가 다른데도 겉모양만을 도입하는 데서 오는 부작용인 것이다. 문 화와 역사 그리고 환경이 다르면 그 사회의 인간의 의식구조도 다르게 마련 이다. 제도는 사람의 행동을, 행동은 습관을, 습관은 사고방식을, 사고방식 은 의식구조를 바꾸어 놓는다. 의식구조는 시스템 구성 요소의 핵이 된다. MIS는 물건이 아니라 손에 잡히지 않는 시스템類인 것이다. 시스템은 그 구 성 요소들이 상호 상관성을 가지며 항상 최적의 균형 상태에서 목표를 향해 생동하는 일종의 界이다. MIS의 땅인 조직 구성원들의 의식구조를 다스려 옥토로 가꾸는 일은 인간의 심리를 갈고 닦는 작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업과정이 MIS사업 과정 중에서 어려운 난공불락인 것이다.
MIS는 수평적 의식구조 위에서 뿌리 내린다.
서구사회에서 잘되고 있는 컴퓨터 시스템을 한국에 그대로 도입했는데도 서구에서와 같이 잘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까닭은 컴퓨터 시스템이 「시스템 의식구조」위에서만 육성될 수 있는 것인데, 그 바탕은 무시한 채 겉에 보이는 물체만 들여오기 때문이다.
서구인들은 변증법적 사고에 의한 수평적 상호작용을 그 기반으로 하는 시스템적 의식구조를 갖고 있다. 이를테면「테제」에 대한「안티테제」, 그 결과 로서의「진테제J를 항상 염두에 두고 행위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언제나 풍성한 갈등을 전제로 하게 되고 그 갈등은 규범과 구조에 의하여 적극적인 가치 부여를 받고 있는 것이다. 즉, 갈등은 좋은 것이며, 따라서 갈등 해결 과정의 산물인 협상, 타협 등도 긍정적으로 높이 평가된다고 볼 수 있 다. 상대를 인정할 줄 안다. 상대가 있어야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또 실천한다. 서로가 선의의 경쟁을 하다가 상대가 옳다고 생각되면 그것을 인정하고, 승복하고, 협조한다. 그리고 상대보다 더 좋은 것을 실증적으로 보이려는 노력을 통해 설욕하려고 한다. 이에 반하여 한국인들은 忠孝思想을 전제로 한 가족주의적 권위의식과 온정적 상하관계로 작용을 이루는 수직적 의 식구조를 갖고 있다. 그 바닥에는 和의 이념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갈등이 없는 상태를 전제로 하고 따라서 조직 형성의 규범과 구조가 갈등을 지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에 대하여 부정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갈등의 산물인 반대 제안, 협상, 타협 등은 마치 전체의 조화, 단결력, 지조의 순수성 등의 가치에 대한 위배 행위와 같이 취급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상대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위만 바라보는 해바라기성 출세주의자들이 기승을 부릴 수도 있다. 비록 투표를 통해 승자와 패자가 결정 난 후에도 패자가 승자에게 승복하는데 인색하고 승자가 패자 를 포용하는데도 인색하다. 혹백논리가 평행선을 긋는다. 체면과 아집, 편집과 고집을 대대로 물려 주려 든다. 연좌제가 바로 그것이다. 상호간의 연관성을 배제한다. 새로이 길을 내고 포장을 한 후, 며칠 후엔 다시 전선을 매설하고 포장을 땜질한다. 또 얼마 후엔 상수도관을 매설하기 위해 그 길을 파헤친다. 이같은 일은 서울 거리에서 혼히 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도로 건설 기능, 상수도 기능, 배전 기능을 맡은 부서간의 수평적 상관관계가 존재하였다면 그리 되겠는가? 누군가 그것을 가리켜 「자원재배분정책」이라고 까지 비꼬는 것을 보았다.
시스템적 의식구조가 아닌 수직적 의식구조가 MIS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 보자. A상사의 거래처 code를 영업부에서는「X10」으로 해서 사용하고, 회계부에서는 「coll」로 하여 사용한다. 그래서 영업부와 회계부가 각각 별도로 거래처 데이터 베이스를 가져야 된다. 또한 거래처 데이터 베이스를 관리하는 프로그램도 각각 별도로 가져야 한다. 컴퓨터 시설도 수배로 커져야 한다.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데이터 베이스간의 정보가 연결될 수 없어 MIS가 실현될 수 없다는 일이다.
시스템적 의식 개혁에 촛점을 맞춘 교육을 하라.
아랫사람은 웃사람을 존경과 믿음으로 따르고, 웃사람은 아랫사람을 사랑과 은혜로써 다스리는 전통적 동양사상에 수평적 인간관계 위에서 상대를 인정하고 선의의 경쟁을 통해 타협하고 협력하는 합리주의적 사상을 접합하는 의식개혁 작업을 해야 한다.
컴퓨터 시스템을 도입하는 회사나 기관들이 대부분 현업의 임직원들에게 컴퓨터에 관한 교육을 하는데, 그 내용은 컴퓨터 장치의 기초 개념과 프로그램 언어 등으로 컴퓨터 기술에 편중된 것들이다. 이들에게는 컴퓨터 시스템을 다루는 측면(computer systems provider oriented)보다, 이용하는 측면(computer systems user oriented)에 교육 목표를 두어야 한다. 이들에게 시스템적 의식 혁명에 촛점을 맞춘 정신교육과 컴퓨터시스템 이용 방법에 중점을 둔 교육훈련을 실시하라. 그 과목을 예시하면「시스템 철학 개념」, 「정보 시스템 개론」,「컴퓨터 시스템 이념과 목표」, T시스템 개발 과정과 임직원의 역할」,「컴퓨터 시스템 개발의 실패 사례와 성공 사례」 「컴퓨터 시스템의 이용 효과」등이 되겠다.
모든 임직원들에게 주기적으로 반복적인 교육훈련을 가해야 한다. 신입사원은 이 과정을 이수해야만 현업에 배치될 수 있게 한다. 교육훈련은 반복되는 데서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나 현업요원들에게 중앙처리장치(CPU), 비트(bit), 코볼(COBOL), 바이트(Byte) 아퍼랜드(Operand) 등과 같은 어려운 전문용어를 써가며 컴퓨터 자체에 관한 교육을 하면, 이들은 “컴퓨터는 어렵다”라는 관념을 갖고 오히려 컴퓨터 시스템을 멀리 하려 든다. 이들에게 는 각자의 전문 지식과 기술에 컴퓨터 시스템을 어떻게 적용하면 되는가, 즉, 응용방법을 중심으로 교육을 실시하되 가급적 컴퓨터 전문용어는 사용치 말라. 이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짚어 가며 또 그 해답도 주는 식의 강의법을 사용하라. 필자가 쌍용의 MIS를 개발할 때 가장 역점을 둔 부문의 하나가 이 교육훈련 과정이었다. 전임 • 직원들이 의무적으로 이 교육을 받았으며, 연 3만6천여 시간에 달했었다. 교육과 훈련을 통한 의식개조의 개혁작업을 꾸준히 실시하라. 그것은 엠파이어빌딩의 기초공사와 같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