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의 일이었다. 오레곤주립대학에서 귀국하기 며칠 전, 그 동안 음으로 양으로 편의를 제공해 주었던 그 대학 컴퓨터센터의 소장에 대한 고마움의 뜻으로 저녁 식사에 소장 내외분올 초대하였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필자의 귀국 선물에 대한 물음으로 연결되었는데,아직 어떤 선물이 좋을지 결정을 못했노라고 했더니, 중학교 재학중인아들이 있음을 알고 있는 터라 그분의 제안은 이러하였다.
“요즈음 값도 싸졌고 또 인기도 높으니「애플」로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제안에 필자는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었다. 애플(Apple; 사과)? 그 흔한 사과를, 그것도 오레곤주의 껍질이 두껍고 별 맛도 없는 것을 아들에 대한 귀국 선물로 사가라고 하다니……?
눈치 빠른 그분은 내 표정을 읽고서는 그 당시 미국 시장을 주름잡기 시작한 퍼스널 컴퓨터인「애플」의 성능과 이를 위하여 개발된 각종 소프트웨어에 대한 소개를 하기 시작하였다. 비로소 '아차 ! 벌써 이 나라는 컴퓨터가 선물의 대상이 될 정도로 변하고 있는데…’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이미 1980년대초에 미국에서는 컴퓨터의 보급과 이용이 보편화되기 시작 하였다는 증거이다. 물론 이 시기에 일본도 국민학교나 중학교 졸업생의 졸업 선물로 개인용 컴퓨터를 사기 위하여 토쿄의 아키하바라에 학생과 학부형이 손을 잡고 몰려들고 있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1980년대 중반을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비록 1980년대초의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여건은 아닐지라도 분명히 변했다. 다만 변했다는 사실, 즉, 컴퓨터의 보급과 이용의 보편화가 생각보다 빠르게 이루어 지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인구가 생각보다 많을 뿐이다.
이제 우리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간에 컴퓨터와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 밖에 없도록 사회가 변했다. 이것은 그만큼 컴퓨터의 대량 보급과 이용의 보편화가 가능해졌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과연 그렇게 판단하여도 되는지 살펴 보자.
컴퓨터의 대중화가 이루어지려면 컴퓨터의 가격이 저렴하여야 하고, 그 크기가 소형화되어야 하며, 또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어쩌면 컴퓨터가 이 세상에 등장된 이후에 제조회사나 학자, 그리고 이용자의 공통된 목표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무리 컴퓨터가 가격이 저렴하고 유용 하다고 하더라도 그 크기가 커서 너무 많은 공간을 차지 한다거나 운반. 관리 및 운용에 불편하다면 곤란할 것이고,또 소형화되고 이용이 편리하다고 하더라도 가격이 너무 비싸 부담이 크면 보급의 일반화를 기할 수 없을 것이다.
소형화, 가격의 저렴화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이용 기술을 익혀 활용하기가 쉬워야만 컴퓨터 이용의 보편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실제로 소형화, 가격의 저렴화, 이용의 간편화란 세가지 목표는 상당한 수준까지 달성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소형화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1946년에 등장한 최초의 컴퓨터인 ENIAC은 길이가 10m, 무게가 30톤이나 되는 거대한 기계였다. 18,800개의 진공관과 1,500개의 릴레이를 사용하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것이 1948년에 트랜지스터가 개발되고 1950년대 중반에 이것을 논리회로에 사용함으로써 컴퓨터는 소형화되고 소비 전력은 줄었으며 고장률이 적어 신뢰성이 향상되었다. ENIAC의 순간 소비 전력은 150kW나 되어 이 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하여 스위치를 넣으면 필라델피아 전 시가지의 전기불이 흐려졌다는 이야가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전력 소모량이다.
1960년대에 집적회로(1C)가 등장하고, 1970년대에는 고밀도 집적회로 (LSI)가, 그리고 1980년대에는 초고밀도 집적회로(VLSI)로 발전되어 손톱만한 크기의 기판 위에 100만개의 소자를 집적시키기에 이름으로써 컴퓨터의 규모는 소형화의 길을 걸어왔다.
1979년 미국의 모 경제학자가 이르기를 자동차산업이 컴퓨터산업처럼 소형화 추세로 발전되어 왔다면 아마 지금쯤은 조그만 못 위에 50대의 승용차를 올려 놓을 수 있을 것이며, 휘발유 1ℓ 로 80만km를 주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말은 컴퓨터의 소형화 추세를 가장 적절히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된다. 이제 휴대용이나 탁상용 컴퓨터가 실용화되었으니 소형화란 목표는 거의 달성되었다고 평가해도 좋을 것 같다.
가격의 저렴화는 과연 만족할 만한가? 컴퓨터 한 대의 값이 어느 정도이면 싼 것이고 또 보급의 대중화를 기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정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객관적 기준으로는 흑백 TV 한대 값이 라고들 한다. 만일 이 기준이라면 우리나라도 가격의 저렴화라는 목표에 근접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상업 광고에 “10만원대의 컴퓨터…” 라는 문구를 우리는 보고 있으니까. 물론 이것은 개인용 컴퓨터의 본체만을 말하는 것이지,아무리 값이 싸졌다고 하더라도 수천억원 하는 컴퓨터도 있으므로 10만원 정도의 컴퓨터가 컴퓨터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간혹 전화를 통해 받는 질문 중에 대답하기 곤혹스런 것은 “ 컴퓨터를 사려고 하는데 얼마면 살 수 있읍니까?'라는 물음이다. 전화를 건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필자가 컴퓨터 분야에 오랜 기간 몸담고 있으니까 도움을 받을까 하는 것인데, 막상 전화를 통하여 답변하려니 오히려 내가 물어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목적은? 용도는? 이용자는? 장래 계획은?—— 이러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고는 어떤 종류, 어떤 규모의 컴퓨터를 사는 것이 좋을지 모르고, 그것올 모르니 가격을 모르고…. 그러나 자신있게 대답해 줄 수 있는 것은 '요즈음 컴퓨터 값이 쌉니다.” 라는 것이다.
또 자동차산업과의 비교인데, 자동차 가격이 컴퓨터 가격과 같은 비율로 하락했다면 지금쯤은 세계에서 가장 좋다고 하는 롤스로이스라는 승용차를 단돈 2, 300원이면 살 수 있다고 하니 컴퓨터의 가격이 얼마나 저렴화되고 있는지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렇듯 소형화, 가격의 저렴화라는 면에서 판정해 보면 당장이라도 가정마다, 가게마다 컴퓨터가 보급되어 컴퓨터 시대, 흔히 이야기하는 정보화시대가 이룩될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세번째 목표인 이용의 간편화이다.
컴퓨터 교육이 강조되고 있는 요즈음, 컴퓨터 교육의 목적 중의 하나가 컴퓨터에 대한 공포로부터의 해방이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아직까지도 컴퓨터는 특정인을 위한 것이며, 또 컴퓨터의 이용 기술을 습득하기란 매우 어렵고 설사 이용 기술을 익혔다고 하더라도 여간 조심해서 다루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는 기우가 개재되어 있음을 간접적으로 중명하는 것이라고 생각 된다.
물론 초기의 컴퓨터는 조심해서 다루어야 했으며, 적정한 환경하에서 운용되어야 했다. 기계실은 철저히 출입이 통제되었고, 오퍼레이터만 기계 조작이 허용되었다. 이용 기술을 익히려면 두뇌가 명석하여야 하고,수학과 영어 실력이 특출하여야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보급의 대량화가 이뤄지려면 누구나 쉽게 배우고 익혀 활용할 수 있도록 되어야 할 것이고, 또 컴퓨터란 이용이 궁극의 목표일진대, 이용이 불편하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선 조작의 간편화를 들 수 있다. 컴퓨터를 이용하기 위한 조작이 VTR이나 스테리오 시스템처럼 쉬워야 한다는 것이다. VTR이나 스테리오 시스템의 경우는 누구라도 사용 설명서 또는 판매상의 간단한 조작 방법의 설명으로 쉽게 조작 방법을 익혀 영화나 음악을 즐길 수 있지 않은가?
컴퓨터의 조작도 그런 수준으로 이끌자는 것이다. 실제로 요즈음 컴퓨터의 조작은 특별한 기술을 요하거나 장기간의 훈련을 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는 조작만을 전문으로 하는 컴퓨터 오퍼레이터(operator)라는 전산 직종이 의미가 없어졌다. 컴퓨터 이용자 자신이 곧 오퍼레이터이다.
그러나 아무리 조작이 간편하다고 하더라도 컴퓨터는 다른 기기처럼 단능 기계가 아니고 다양한 기능을 발휘하면서 여러 목적으로 활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특성을 인정하여야 함은 물론이다.
어떻든 컴퓨터의 조작의 간편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제는 조작 기술 자체가 문제가 되어 대중화의 장애 요소로 제기될 시기는 지났다. 문제는 내가 원하는 정보를 조작 기술의 습득만으로 얻을 수 있느냐에 있다.
이에 관한 한 선뜻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1970년대초라고 기억되는데,「컴퓨터에게 물어 봅시다」란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컴퓨터의 신속하고 정확한 처리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컴퓨터의 우수성을 알리고, 컴퓨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는 노릇이다. 만일 컴퓨터에게 물어 보면 무엇이든 다 대답해 줄 수 있다고 맹신하는 인구가 늘어난다면 —— 이제 그렇게 믿을 사람은 없어졌지만—— 이는 컴퓨터 시대를 맞이하기란 요원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우리는「물어 봅시다」에 항상 옳은 대답을 해줄 수 있는 컴퓨터를 원하고 있고 또 그렇게 되도록 모두가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컴퓨터를 이용하는 사람은 불특정 다수인이기 때문에 욕구가 다양한 반면, 컴퓨터의 이용 기술을 개발하고보급하는 인구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하루 이틀에 이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는 없다.
따라서 이용의 간편화라는 목표는 어떤 수학 문제를 풀듯이 일정한 공식을 이용하여 정답을 얻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계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고, 또 이것이 이루어져 컴퓨터의 효용 가치를 긍정적으로 인정할 수 있을 때 정보화사회가 구축될 것이다.
다행히도 이 분야의 연구 개발이 활발히 진행되어 소형화, 저렴화와 아울러 이용의 간편화라는 세가지 목표는 하루가 다르게 근접하고 있으므로 설혹 컴퓨터시대의 도래에 부정적인 관념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긍정적인 자세로 새 시대를 맞을 준비를 해 두는 것이 현명한 처세일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모두들 컴퓨터 교육을 받는다고 하니 나도 컴퓨터 교육이나 받아볼까? ” '컴퓨터 이용 기술은 익히기가 쉽지 않다는데,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
“배운다면 어디서 배워야 할까? ”
“무엇을 배워야 할까? ”
'어떻게 배울까? 이미 나이로 보아 늦은 것은 아닌가? ”
이와 같은 온갖 생각을 다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 이전에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컴퓨터와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면, 나는 어떤 관계를 맺고 정보화사회에 대처해야 할 것이냐는 문제이다. 그것이 결정된다면 해답을 얻을 수 있으며, 이제 용단을 내려야 한다. 불구경만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