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 지나면서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더니 미시령이 가까워지면서 제법 굵은 눈송이들이 떨어져 내렸다. 미시령 넘기 전 용대리 가득한 황태덕장에는 입에 흰 눈을 가득 문 황태들이 한겨울 칼바람 속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그나마 미시령터널이 뚫린 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터널이 아니었다면 겨울날 속초로의 여정은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을 거쳐 다시 7번 국도를 따라 한참 북상해야 하는 번거로운 길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미시령터널을 지나 속초로 들어서면서 눈발은 거짓말처럼 잦아들었고 날씨는 이른 봄처럼 따뜻해졌다. 높은 기온 덕택인지 도시는 청초호와 영랑호에서 피어오른 안개로 희부옇다. 뒤로는 설악산을 두고 있고 앞으로는 검푸른 물이 일렁이는 동해를 마주하고 있는 도시 속초. 사람들은 수평선 너머로 훌쩍 떠오르는 붉은 햇덩이를 마주하기 위해 혹은 설악산 등반을 위해 이른 새벽부터 이 도시에 찾아든다. 시끌벅적한 포구와 정취를 느끼고 날 것의 회 한 점과 시린 술 한 잔을 삼키기 위해 이 도시로 먼 여행을 오는 이들도 많다.
뒤로는 설악산을 두고 있고 앞으로는 검푸른 물이 일렁이는 동해를 마주하고 있는 도시 속초. 그 도시
아바이마을에서 실향민들은 오늘도 가족을 그리워하며 삶을 꾸리고 있다.
함남 출신 실향민들이 모여 만든 마을
이래저래 속초를 찾는 이들 여행객이 한 번쯤 들르고 기웃이는 곳이 청호동이다. 전국 어디에나 있을 법한 흔한 지명이기에 속초 청호동 하면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이 많을 테지만, ‘아바이마을’이라고 하면 ‘아, 거기’ 하며 무릎을 치며 너도나도 아는 체를 할 것이다. 아바이마을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한국전쟁 당시 남하한 피난민들이 모여들면서 만들어진 마을이다. 1951년 1·4 후퇴 당시 함경도에서 남쪽으로 피난을 왔던 민간인들은 휴전이 되자 속초로 모여들었다. 한걸음이라도 고향과 가까운 곳에 살다가 통일이 되면 한시 바삐 북에 있는 고향으로 올라가기 위해서였다. “출신 마을별로 움막집을 짓고 살았지비.모래땅을 파내고 나무판자를 이어붙여 벽과 지붕을 만들었는데 그게 움막집이지 뭐 별 게 있었슴메. 돌메이(돌멩이) 깔고 도라무깡(드럼통) 짤라개지구 만들었습지비. 그래개지구 산에 가 낭구하고 검부르(검불) 긁어다 불 때고 쌀 빌어다 먹고 살지 않았슴메.” 청호동 노인회장 김진국 씨의 설명이다. 아바이마을 앞 동해바다의 수평선을 보는 노인의 눈빛이 파르르 떨린다.
처음 아바이마을에 정착한 주민들은 사람 허리 정도의 깊이로 땅을 파고 창문과 출입구만 땅 위로 내놓은 집을 지었다고 했다. 그나마 집다운 집을 짓기 시작한 때는 1970년대 중반. 마을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도 이즈음이다. 당시 이곳에는 유독 함경도 출신 피난민들이 많았는데, 골목마다 나이 든 사람을 부르는 “아바이, 아바이”하는 소리로 가득했다고 한다. 마을이 아바이마을로 불리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도 아바이마을 거주 실향민들은 함경남도 출신이 90% 가량 이른다.
잔뜩 기대를 하고 아바이마을을 찾았다가는 그 모습에 실망을 할 수도 있겠다. 우리가 기대하는 옛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마을 풍경은 여느 관광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2000년 송승헌과 송혜교가 출연한 드라마 ‘가을동화’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관광객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이들이 탔던 무동력배인 갯배는 아바이마을의 명물이 됐다. 지금 갯배가 있는 곳은 부월리로 불리던 곳인데 본디 중앙동 쪽과 이어진 땅이었다. 왜정 때 물길을 뚫어 청초호와 외항을 연결했는데 그때부터 물길 건너는 교통수단으로 정착된 것이 갯배다. 갯배에서 내려 마을로 들어서면 마을은 온통 순대 간판으로 어지럽다. 아바이마을은 아바이순대로 유명하다. 아바이순대는 함경도의 향토 음식으로 돼지 대창 속에 돼지고기, 찹쌀, 우거지, 숙주 등으로 속을 채워 찐 순대다. 함경도에서 강원도 속초까지 내려온 피난민들은 당시 돼지 대창을 구할 수 없어 이곳에서 흔한 오징어를 이용해 만들기 시작한 것에서 비롯됐다. 속초식 아바이순대는 그래서 ‘오징어순대’라고도 불린다. 아바이순대 어느 집을 가도 그 맛이 비슷하다. 공장에서 순대를 만들어 일괄 공급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바이마을에서 먹는 뜨끈한 순대국 한 그릇과 계란옷을 입히고 프라이팬에 구운 오징어순대에는 뭔가 색다른 맛이 있다. 정확하게 묘사는 못하겠지만 어딘지 모르게 몸이 따스해지는 것 같다. 순대국으로 몸을 데운 후 마을 구경에 나선다. 마을은 작다. 휘휘 돌아보는데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여행객들이 찾는 아바이마을은 신포마을이다. 함경남도 북청군 신포읍 출신 실향민들이 많이 거주해 이름 붙었다. 수로 공사 등으로 옛 신포마을의 가옥형태와 골목길은 거의 사라진데다 집들마다 순대국 간판을 달고 있어 옛 모습을 찾기는 힘들다. 하지만 좁은 골목길의 형태는 그럭저럭 남아있다.겨울이지만 골목길을 걷다 보면 온기가 도는 것 같다. 집안 귀퉁이에는 시든 화분이 놓여있고 그 위로 겨울 햇빛이 어룽대며 내려앉는다. 그리고 이 골목길을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집배원이 지난다. 아바이마을 바로 앞은 동해바다다. 마을 골목을 나와 몇 걸음만 가면 푸른 바다가 꿈인듯 몽롱하게 펼쳐진다.
세월의 흐름에
마을은 변했어도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는
실향민의
애절한 마음
고향 음식맛은
그대로다.
고향 가보는 게 가장 큰 소원이지
같은 실향민으로 오랫동안 살아온 아바이마을 사람들.
서로서로 의지하는 가족같은 존재다.
아바이마을은 가자미식해로도 유명하다. 식혜가 아니라 식해다. ‘해’는 젓갈의 일종. 일반 젓갈과 달리 생선과 곡류를 섞어 담가 삭힌 음식을 일컫는다. 주로 동해와 남해안 주민들이 가자미, 도루묵, 명태, 멸치 등을 이용해 담가 먹던 반찬이며 술안주다. 가자미식해는 함경도 해안지방에서 주로 해 먹어 온 젓갈인데 가자미를 토막내 메좁쌀밥과 무, 고춧가루 등을 섞어 만든다.
아바이마을의 김송순 할머니는 정통 가자미식해를 담근다. 그 역시 북청군 출신이다. 1·4 후퇴 때 내려왔다. “스무살 때 내려왔지. 울진 죽변까지 피난갔다가 여기로 왔어. 생선장사 하면서 아들 셋과 딸 하나를 키웠어.” 김 할머니는 북청에서 친정 어머니로부터 배운 방식대로 집에서 조금씩 담가 먹곤 했는데, 이 맛을 본 이북 출신들이 “이게 진짜”라며 얻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입소문이 퍼져 몇 년 전부터는 아예 가자미식해 판매를 시작했다. 김 할머니는 대뜸 방안으로 오라고 손짓이다. 방에는 실향민 ‘아마이(할머니)’들이 몇 분 모여 계신다. 외지인이 드니 한탄이 쏟아진다. “이 보오. 잘 드솝세(잘 들으시오). 우리 모두 북쪽에 어머니, 큰형, 누나, 여동생을 두고 온 사람들이요. 나이도 많이 들어서 이제는 얼마 못살 거지요. 그래도 고향 땅 한 번은 보고 눈을 감고 싶소. 가족들하고 손 잡고 하룻밤만 같은 이불 덮고 잔다면 더 이상 무슨 소용이 있겠소.” 홍원 출신 실향민 이산옥 씨가 말했다. “그러티, 그러티. 내 소원이 거 뭐인가 하모 거저 단수일 내루 고향 한번 가보는 거이지. 그게 가장 큰 소원이지비.” 그러고는 모두 한동안 말이 없다. 서로의 손만 꼭 쥐고 있다. 모두들 각자 두고 온 가족과 고향을 생각하는 눈치다. 괜히 미안해져 슬그머니 방을 빠져나온다.
아바이마을 앞 고가도로에 올라가면 아바이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다. 이곳에서 보는 마을 풍경이 시큰하고 애잔하다. 마을의 지붕들은 서로 어울리고 마주보며 서로를 껴안으려는 자세로 모여 있다. 떨어지지 않아야 하니까, 그래야 외롭지 않으니까, 슬픔도 덜 수 있고 기쁨도 나눌 수 있으니까. 설악산을 넘어온 눈구름이 한바탕 눈을 쏟아부을 기세다. 잠시 콧등이 매워진다.
최갑수 / 여행하기 좋아하고 여행에서 사진 찍기를 더 좋아하는 풍경과 사람에 관심이 많은 남자다.
속초에서 즐기고 먹고
1박2일!
겨울바다의 멋과 맛, 설악산의 설경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겨울여행의 백미 속초. 2012년 온 가족과 함께 1박2일 속초로 여행을 떠나보자.
바다가 보이는
펜션에서
쉬어가기
<안단테 펜션>
속초해수욕장 백사장이 걸어서 5분 거리에 있고 2층 테라스에서 야외 바비큐를 즐길 수 있다. 신축건물로 깨끗하고 인근에 편의시설이 있어 편리하다.
주소 속초시 청호동 433-58
예약 017-379-6788
비용 평일 8만원, 주말 10만원 (4인 기준)
<섬이 보이는 풍경>
바다를 보며 야외 바비큐를 즐길 수 있고 전 객실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 다녀간 방문객들의 평가가 좋아 재방문이 많다.
주소 속초시 청호동 1335-10
예약 033-637-1237
비용 평일 8만원, 주말 10만원 (4인 기준)
실향민들의
함경도식 대표 음식
순대 삼형제
통심이라 불리우는 명태순대
명태순대는 명태에 배추, 녹두, 두부, 돼지고기로 소를 만들고 명태알로 간을 맞춰 넣어 순대처럼 만든 음식으로 명태 뱃속을 채우고 꽁꽁 얼린 뒤 쪄서 먹는다. 김장철에 미리 만들어 설 명절에 먹는다. 예로부터 관혼상제 상차림에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아바이오징어순대
명태가 귀하고 비싸 통심이를 먹을 기회가 적어진 아바이마을 사람들은 대신 오징어를 이용해 오징어순대를 만들었다. 오징어를 가르지 않고 내장을 꺼내 그 자리에 찹쌀과 고기, 야채로 소를 만들어 채워서 먹는 요리다.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만한 담백한 음식이다.
아바이순대
당면이 아닌 찹쌀, 숙주, 야채를 넣어 정통순대의 참맛을 볼 수 있다. 선지가 들어가 살짝 비릿한 향이 입맛을 자극하는 전통 아바이순대. 아바이마을에서는 냉면과 곁들어 내놓는다.
<다신식당>
50년 전통의 아바이음식 전문점 다신식당 바로 앞으로 펼쳐진 동해바다와 넓은 백사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메뉴 아바이순대, 오징어순대, 명태회냉면, 가자미식해 / 주소 속초시 청호동 838
문의 033-633-3871
‘설악의 향기’
신흥사
템플스테이
설악산에서 가장 대표적인 산행코스가 외설악의 중심이 되는 설악동이다. 이곳 설악동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곳이 신흥사다. 설악산의 입구인양 신흥사 일주문이 서 있다. 일주문 안에는 동양에서 가장 크다는 신흥사 청동 통일대불이 있다. 울산바위로 오르는 길 옆에 두개의 큰 탑이 있다. 이곳에서 신흥사를 내려다보면 권금성과 만경대 등의 기암봉우리가 톱니처럼 솟은 모습이 절경을 이룬다.
주소 속초시 설악동 170
템플스테이 매주 토~일, 참가비 4만원
문의 033-636-7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