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한 해의 시작을 알리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연을 띄우는 전통이 있었던 것은 하늘에 가까이 가고픈 인간의 본성 같은 것이었으리라. 우리 민족이 대를 이어 복을 기원하던 마음이 담긴 것이 연의 의미라고 리기태 전통연 명장은 설명한다. “인간의 모든 게 땅에서 이뤄지잖아요. 오직 연날리기만 하늘에서 할 수 있는 것이었죠. 특히 정월 대보름에는 연을 띄워 한 해의 소망을 연에 실어 날렸습니다. 연을 띄우는 것 자체가 놀이인 동시에 액을 멀리 보내고, 하늘로부터 복을 맞이한다는 ‘송액영복(送厄迎福)’의 정신이 담겨 있는 거죠.” 연이 한국 역사에 첫 등장한 것은 <삼국사기>로 신라의 김유신이 반란군을 평정하기 위해 연을 만들어 전략적으로 이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후 고려시대의 문인인 이규보는 한시에서 놀이로서의 연날리기를 묘사하기도 했다. 연날리기는 조선후기에 이르러 음력 12월부터 정월 보름까지 연을 날리며 액막이를 하고, 소망을 기원하는 세시풍습으로 자리 잡는데 보통 새해에는 복을 기원하는 기복연을, 정월 대보름에는 액땜을 하는 액막이 연을 날렸다. 사람들은 정월 보름이 지나 연을 날려 액막이를 하고 한해 농사 준비를 시작한 것. 그래서 보름 이후에 연을 날리면 ‘고리백정’이라 욕하고 천시했다고 한다.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한 조선시대의 연날리기는 하늘에 풍년을 기원하며 한 해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 행사였던 것이다.
한편 한국의 전통연은 크게 방구멍연과 기타 연으로 나뉘는데 직사각형의 모양에 원형의 구멍이 뚫린 형태의 연을 방구멍연으로, 현재 일반적으로 알려진 방패연, 길게 꼬리가 있는 가오리연을 비롯해 방구멍이 없는 연은 기타 연으로 구분할 수 있다. 연실과 얼레도 중요한 요소인데 연실은 주로 명주실, 무명실을 많이 사용한다. 얼레는 연실을 감았다 풀었다 하면서 연을 조정하는 역할로 기둥 수에 따라 2모, 4모, 6모, 8모 얼레 등으로 나뉜다.
큰 바람을 놓아주어 하늘의 길을 가다
연을 통해 스승에게 ‘자연을 거스르지 마라’는 가치를 배웠다는 리기태 명장. 스승 가산 이용안의 가르침은 방구멍연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실제로 연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은 세계에서 우리 전통연이 유일하다. 방구멍연의 방구멍은 맞바람의 저항을 줄이고, 뒷면의 진공상태를 메워주기 때문에 연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뿐 아니라 강한 바람을 받아도 연이 상하지 않고 하늘을 유유히 날 수 있다. 또한 연의 상단부에 들어가는 댓살인 머릿살의 양끝은 실을 맨 후 이마처럼 살짝 튀어나오도록 뒤로 젖혀 만드는데 이것은 강한 바람을 받아도 상하좌우로 흘려보내기 위한 것이다. 더불어 연의 하단부에 매는 실, 꽁숫줄은 바람이 아래로 흘러내려 가게 함으로써 연이 뒤집히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게 한다. 그리고 연의 맨 아랫부분에는 댓살을 붙이지 않는 것은 하체를 가볍게 해 기동력을 높이기 위함이다. 만약 살을 붙이면 공기의 강한 저항을 받아 연이 뜨지 않는다. 이처럼 바람의 흐름을 생각하고, 바람에 거스르지 않음으로써 새처럼 하늘 높이 오를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우리의 전통연이다. 이러한 연은 우리에게 놀이로서의 즐거움과 함께 도도한 자연의 흐름에 맞서지 않는 삶의 순리를 알려준다.
전통 역시 마찬가지일 게다. 도태된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의 삶과 문화와 어우러져 우리의 일상 곁에 있을 때 전통은 비로소 생명을 가지게 된다. 리기태 명장이 10년 넘게 연날리기 대회를 개최하고, 대회에 참가하는 모든 이들에게 연과 얼레를 무료로 배포해 온 것도 전통연이 시대의 흐름과 함께 하길 바라서다. 또, 리기태 명장이 기존의 연 만들기 기법을 변형해 자신의 호인 ‘초양’(抄洋: 회초리 초, 바다 양. 대나무로 대양을 다스리라는 의미다)을 붙인 ‘초양법’으로 연을 만들고 이를 각종 연 만들기 체험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전수한 것은 옛것을 고수하는 전통이 아니라 지금 살아 숨 쉬는 우리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하늘을 벗 삼아 시대를 잇다
10년 동안 연날리기 대회를 개최하며 연 대중화에 앞장 서 온 리기태 명장은 전통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화려한 창작연 제작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국제대회와 같은 행사를 치를 때 전통연이 하늘로 올라가면 땅에선 점으로 밖에 안 보여요. 최근 창작연들의 형태가 커지고, 색이 화려해 지는 것은 놀이로서의 하늘을 나는 연을 감상하는 거죠.” 대부분의 연은 혼자 연놀이를 할 수 있는 정도의 크기지만 현대에 이르러 연은 보다 화려해지고 모양도 다양해졌다. 전통연이 혼자 놀이로서의 기능이 컸다면 창작연은 눈이 즐거워지는 연이다.
리기태 선생의 원칙은 분명했다. ‘전통’이란 말 안에 갇혀 소수 몇 명의 장인만이 제작하거나 놀이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이들이 보고, 즐기고 직접 만든 연을 하늘에 띄울 때 비로소 연의 전통이 계승된다는 것이다. 연놀이의 방식도 현대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정월 보름에 액막이를 위해 띄워 보내거나 연싸움을 위해 줄에 사기를 맨 것들이 자연을 훼손하고, 사람을 다치게 하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대신 놀이를 끝낸 연은 집안에 두어 한 해 동안 액을 막고, 복을 기원하는 것으로 사용할 것을 당부한다. 실제로 댓살로 쓰이는 대나무는 예부터 잡귀의 접근을 막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전통문화의 서열을 매길 순 없지만 만약 서열을 정한다면 연은 가장 낮은 곳에 자리해 있을 것이다. 그것은 결코 질적인 고저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들풀처럼 가장 낮은 곳에서 일어나지만 쉽고, 재밌는 방식으로 모든 이들의 가슴에 꿈과 희망을 주는 가장 대중적인 우리의 전통인 까닭이다. 연을 만드는 방식, 문양의 의미, 전통연의 역사를 살펴보며 연을 공부하는 것은 어쩌면 연을 이해하는 가장 먼 길인지 모른다. 누구나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새로운 전통을 창조해 계승하는 것이라 말하면서도 정작 전통의 틀 안에 가두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전문가만 만들어, 전문가만이 띄우는 연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연’을 통해 우리가 배우고, 익히고, 계승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늘의 광대함을, 바람의 자유로움을, 가슴에 소망을 담고 기원하는 깊은 마음으로 느끼고, 익혀 한국인의 정서를 이어가는 것일 것이다.
Mini Interview
리기태 전통연 명장
“전통연 박물관, 한국에만 없죠”
연을 만드는 사람, 연을 인생의 동반자로 삼은 사람이란 의미로 ‘연인(人)’이라 불리고 싶다는 리기태 명장에게 연은 그가 6세 때부터 환갑이 넘은 지금까지 가슴에 품어온 낭만이며, 가장 오래된 즐거움이자 그가 이루고 싶은 인생의 꿈이다. 연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점점 잊혀져가는 연을 알리고자 서울특별시장 대상 서울시민 연날리기 대회를 총 11회를 개최하고, 의성국제연날리기대회 등의 각종 대회 및 체험 교실 등으로 연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리기태 명장. 연을 날리며 신선이 가는 길을 찾고 싶었다던 그는 일반 대중들에게 연과의 인연을 맺어주는 ‘연, 인(人)’이 된 것이다. 우리의 전통연이 21세기에, 훨씬 그 이후로도 훨훨 날아다니길 꿈꾸는 리기태 명장은 연 박물관을 여는 게 현재 목표다. 세계 각 나라마다 연 박물관이 있는데 한국에만 없다는 것. 전통연을 전시하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연을 통해 우리의 문화를 알려 고루하고 재미없는 전통이 아니라 하늘을 보며 호연지기를 기르고, 구름을 희롱하며 바람의 결을 느낄 수 있는 놀이로서의 연을 세상에 전파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