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전통 철을 찾아서
어려서 유난히 그리기와 만들기를 좋아했던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쇠죽을 끓이기 위해 지핀 아궁이 불에 망치를 달구어 두드리고 놀기를 수십 번 반복해도 지겨운 줄을 몰랐다. 그리고 집 가까이 대장간을 기웃거리며 이것저것 만져보고 무언가를 만들어 보는 일이 무척이나도 재미있었다고 했다. 그 소년이 바로 고대제철도검장 이은철 선생이다. 소년은 자라서 그림 그리는 일을 업으로 삼았지만 타고난 운명을 우연처럼 마주하고 지금까지 고대 제철 만들기와 그 철을 이용한 도검 만들기를 하고 있다.
“80년대 <계간 미술> 잡지에서 전통 제철과 도검 제작기술이 단절됐다는 기사를 우연히 봤어요. 마음이 움직였어요.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무작정 대장간을 차려놓고 백방으로 뛰어다녔습니다. 전국에 유명하다는 철공소, 대장간 등 안 다니는 데가 없었죠, 그렇지만 어디서도 제철이나 도검에 관한 자료를 찾을 수 없었어요. 이럴 수 있을까? 그 당시 굉장히 절망적인 생각이 들었죠.” 이은철 선생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더 강력하게 자신이 해야 하는 일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문헌을 찾았고 발굴된 유물이며 박물관 등을 찾아다녔다고. 이은철 선생이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진 것은 ‘제철’이었다. 전통 도검을 만들려면 전통적으로 생산되는 철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어디서도 전통방식으로 철을 만드는 곳이 없었던 것이다. 굴지의 제철소가 있는데 철이 없다니 의아할 수 있겠지만 현재 생산되는 철은 대량생산을 하기 위해 들여온 서구식 용광로. 때문에 전통 도검을 만들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선생의 생각이었다. 물론 물리적, 수학적 철의 함량은 부족할 게 없었다. 하지만 전통 도검을 ‘재연’ 하는 것이 아니라 ‘복원’을 목표로 했기에 이은철 선생은 전통방식 그대로의 철이 필요했던 것. 하는 수없이 스스로 철을 생산하기로 마음을 먹고 또 한번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선생은 쉼 없이 몸을 혹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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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제철도검장 이은철 선생의 작업실. 그는 작업에 필요한 자료들을 발로 뛰며 수집했고 그것들은 선생의 작업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누구와도 아닌 혼자서 고대도검의 전 과정을 해내는 그, 작업도구 하나도 직접 선생의 손에서 만들어진다. 그 또한 우리의 전통이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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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기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우리나라에서 도검 전승이 완전히 끊겼습니다. 사실 그 이전에 궁궐이 쇠락하고 총이라는 무기가 들어오면서 검을 더 이상 만들 필요가 없었던 거죠. 또 일본이 무기와 철로를 만들기 위해 서구식 용광로 시스템을 갖춘 제철소를 세웠으니, 혹독한 노동 뒤에 나오는 전통 철이 사장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전통적으로 철을 생산하는 데에는 엄청난 노동력과 돈이 들어가는데 비용대비 생산량이 떨어졌던 거지요. 한마디로 효율성에서도 이용성에서도 전통 제련법이 계승되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겁니다.” 이은철 선생이 그런저런 이유로 사라졌던 전통 제련방식에 의한 철 생산을 완전히 복원한 때가 2004년이다. 생계를 포기함은 물론이요, 어려운 생계 때문에 자식 낳기도 포기하고 오로지 전통 철 생산에 매달린 지 꼭 20년 만이었다. 전국의 철광석을 구해 1000도씨가 넘는 숯불가마와 수백, 수천번 사투를 벌이며 드디어 철을 얻은 것.
철을 생산하는 법을 복원했지만 대량생산이 문제였다. ‘대량생산’이라는 문제는 그가 수십 년 동안 하고 있는 최고의 연구이고 과제이다. 기술적 문제, 학술적 문제, 비용적 문제 그리고 사회적 관심이 모아졌을 때 전통철의 대량생산은 가능하다고 그는 말한다. 그런 관심이 모아져 지난해 전통 용광로인 장방형의 대형 상형로를 구축해 숭례문 복원에 쓰일 쇠못 등의 철물을 생산하는데 성공하긴 했지만 지속하기에는 비용적인 면을 포함해 많은 문제점들이 있다고. 학계 관계자들은 지금까지 소규모로 진행해왔던 생산방식이 아닌 대형 상형로 제철작업이라는 면에서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한다. 실제로 이은철 선생도 대형 철 생산 프로젝트를 전통 제철의 ‘기술사적대사건’으로 의미를 부여하며 오늘도 전통방식에 의한 대량 철 생산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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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꽃피우는 전통 검
이은철 선생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고대 한반도의 철기제작 기술체계를 복원해 직접 철을 생산하고 그 철로 칼을 만들고 연마하고 담금질하고 조각하는, 검의 전 과정을 혼자서 수행하는 ‘고대제철도검장’이다. 사사받을 스승 한명 없이 오로지 혼자서 일궈낸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일을 해낸 주인공이다. ‘칼의 나라’라고 하는 일본에는 도검 명장만 300여 명이 넘는다. 명장이 되기 위한 자격시험도 있는데 이 시험에 붙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까다롭고 어렵다. 그만큼 칼 문화가 잘 발달하여 왔다는 뜻. 무엇보다 칼을 고대 무기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감상하는 문화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일본 검문화의 특징. 그런 점에서 이은철 선생은 많은 부분이 아쉽다고 했다. 우리 민족에게는 전통 검에 대한 정신문화가 없다는 것, 그래서 지켜야 할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점이 가장 아쉽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백제시대 뛰어난 철기문화를 이루었고 일본으로 철기문화를 전파시켰다. 일본 검의 뿌리도 결국에는 백제인 것. 일본의 전통 검 장인들이 ‘칠지도’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자신들 칼의 근원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최근 이은철 선생도 칠지도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철저하게 분업화된 일본과 달리 전 과정을 혼자서 해야 하는 그는 어려운 작업이라고 했다. 현재 연마 중인데 하루 10시간 이상을 앉아 연마하고 있다. “칠지도를 복원하는 것은 제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 의미 있는 일입니다. 전통 검의 기술을 좀 더 체계적으로 하고 검에 대한 정신문화적 가치를 끌어올 수 있는 기회가 될 겁니다.” 선생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이은철 선생은 금속학적절대치와 공예적절대치가 조화미를 이룬 검이 좋은 검은 분명하지만 공예미 이전에 금속학적절대치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철 자체가 좋지 못하면 색상이나 무늬 등이 아름답게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이은철 선생이 일 년에 만들어내는 칼은 1~2점에 지나지 않는다. 우선은 철을 대량생산할 수도 없을뿐더러 두드려 담금질하고 연마하는데 필요한 인력이 없기 때문. 전 과정이 손으로 이루어지는 탓에 기술력을 갖춘 인력이 부족하고 설사 있더라도 고된 작업에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는 사람들이 대부분. 전 과정을 모두 해야 하는 선생으로서는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 절대적인 작업시간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오랜 시간 철저한 고증을 통해 만들어진 그의 검은 고대무덤에서 발견되는 칼, 철기류 등의 유물과 똑같은 성분을 나타낸다. 전통방식 그대로의 철, 그리고 도검 제작이라는 기술체계를 복원했기 때문이며 그래서 고대제철도검장이라는 타이틀이 붙는 이유다.선생은 아직까지 단 한 점의 검도 판매하지 않았다. 그는 잘 만들어진 칼을 파는 사람이 아닌 전통제련방식에 의한 전통 검을 복원해 그 맥을 잇고 싶다고 했다.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았던 그의 마음이 좋은 강철로 잘 만들어져 부러지지 않는 전통 검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선생은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혼자 고민하는 선생의 작업이 무척이나 외로워 보였지만, 염원대로 곧 우리의 전통 철로 만든 전통 검을 전 세대가 함께 공감하며 감상할 수 있게 되리란 기대를 해본다. ![](/upload/logo_r[670][582].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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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제철도검장 이은철
국내에서 유일하게 전통 방식에 의해 철을 생산하고 그 철을 이용해 전통 도검을 만들고 있다. 1984년에 고대제철에 입문하여 2002년부터 전통제철 복원 실험, 2004년 전통제철에 의한 고대제철도검 복원에 성공해 학계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현재 그는 칠지도 마지막 연마작업 중이다. 2006년 ‘경기으뜸이’가 되었고 국내에서 유일한 고대제철도검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