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발현한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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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은 가까워서인지 늘 비교가 된다. 그럼 국악기는 어떨까? “음악이 다르니까 소리도 다르겠죠. 우리 악기에서 중요한 건 악기의 소리가 우리의 자연 그 자체라는 데 있습니다.” 이미 현악기 줄이 합섬이나 쇠줄로 바뀌는 이웃나라와 달리 가야금, 거문고의 명주실, 숙성시킨 나무들, 그곳에 스민 바람과 공기가 우리 국악기를 만들고 있다. 길게는 국악기의 재료로 만들어지기까지 10년이 넘는 나무들도 있다. 그냥 홀로 악기가 되기 위해 강산이 변하는 동안 숙성의 인고를 하는 것이다. 현악기뿐 아니라 관악기도 그렇다. 좋은 대나무를 그대로 만들기 때문에 자연의 소리가 난다. “우리 악기의 소리는 자로 잴 수가 없지요. 제가 연주는 못하지만, 악기소리를 듣고 연구하여 소리의 등급을 매길 수 있는 정도가 되었어요. 좋은 재료를 잘 다루어 만든다고 해도 소리를 이루는 수많은 요소들이 있기 때문에 악기가 잘 나오지 않을 수도 있는 겁니다. 그래도 항상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은 10개 중 8~9개 정도는 원하는 소리가 나오는 악기를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경지에 오르기까지 좌절도 겪었다. 맘처럼 악기의 소리가 안 나오거나 의뢰자가 소리에 대해 만족하지 못할 때는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의뢰자가 악기에 대해 불평을 하는 경우는 없다. 고흥곤 장인의 실력과 악기에 담긴 마음을 무한히 신뢰하기 때문이다. “악기는 공예 중에서도 제작의 난이도가 높아요. 모양만 좋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소리가 완성되지 않으면 악기가 아니니까요.”
서양의 바이올린이나 첼로 같은 악기 중 소위 ‘명기’로 불리는 고가의 악기들이 화제가 되곤 하는데 국악기에도 명기가 있을까? “일단 명기가 되기 위해서는 오래도록 관리를 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관리를 못해 악기로써의 기능을 못하면 명기로서의 수명도 끝나버리니까요. 양악기나 국악기 모두 많이 쓰면 빨리 닳게 돼요.” 고흥곤 장인은 훌륭한 국악기는 있지만 양악기처럼 오랜 시간을 잘 보존해서 전해져온 것이 없기 때문에 국악기 중에 별칭이 붙을 정도의 명기가 없는 것처럼 보일 뿐, 분명 좋은 재료로 잘 만들어진 국악기가 있고, 현재 연주용으로 잘 관리되는 악기들은 그만큼 세월이 쌓이면 명기로서 명성을 날리게 될 것이라 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이 없다면 그만큼 좋은 악기로 알려지기도 어렵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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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 한국 전통악기 중 사부(絲部)에 속하는 찰현악기(擦絃樂器)다. 옛날에는 관현합주·관악합주·삼현육각 등의 궁중음악에 널리 쓰였으며, 지금은 시나위·산조·무속음악·민요·춤음악에도 쓰인다. 음역이 넓고 이조(移調)가 쉬운 장점이 있으나, 정확한 음감을 요하는 까다로운 악기이다.
악기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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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위에 널어놓은 나무들, 짐승의 뼛조각, 긴 실 뭉치. 어린 흥곤에게 공방은 호기심 천국이었다. 40년 전 전주. 신기한 것들로 가득 찬 국악기 작업실에서 남은 재료들로 이것저것 만들어보고 귀찮게 굴던 어린 흥곤에게 있어 호기심은 장인이 되기 위한 걸음마 같은 것이었다. 스승인 국악기 제조 분야의 최초 인간문화재 고 김광주 악기장은 어리지만 악기를 좋아하고 진실한 태도에 이끌렸는지 먼저 다가가 당신 밑에서 악기 만드는 일을 해보겠느냐고 물었고 흥곤은 망설일 것이 없었다. 그때 흥곤의 나이 19살 때의 일이다. 당시 국내에서 생산되는 가야금이 연간 50대 정도였으니 국악기 제작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처음 고흥곤 장인은 스승의 조카들과 함께 전수받았지만 장인을 제외한 전수자들은 이내 독립해서 나갔고 홀로 스승을 모시며 악기 만들기에 전념했다. 장인이 군대에 갔을 때 스승은 상경해 악기 만들기를 계속했고 제대 후 다시 스승에게 돌아간 고흥곤 장인은 본격적으로 악기와 소리에 대한 연구에 전념했다. 스승의 가르침은 무엇이었는지 묻자 ‘강직함과 정직’이라고 지체없이 답했다. “스승께서는 남을 속일 줄 몰랐어요. 제대로 된 악기만 만드셨어요. 아무리 급하게 달라고 해도 없으면 안 줬죠. 돈이 된다고 해서 불가능한 일정을 확약하고,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지는데도 시간을 맞춰 넘긴다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라며 의뢰자가 악기를 독촉하면 되레 야단을 맞기도 했는데 아마 그런 성격이 고흥곤 장인과 잘 맞았던 것 같단다. 국악기를 사랑하지만 그중에서도 좀 더 애착이 가는 악기도 있다. 악기의 재료들을 숙성시키는 공간이 하남에 있는데 그중 아주 좋은 재료들이 천개 중 한 개 정도 나온단다. 그런 재료들은 특별히 애착을 갖고 좋은 악기로 만들기 위해 정성을 더욱 쏟는다고. 일반적으로 이런 숙성과정이 없이 일 년 정도 건조만 해서 만드는 악기는 제대로 된 소리를 낼 수 없는데 여기에 큰 내공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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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의 줄을 잡는 고흥곤 악기장의 손끝에 우리 음악, 우리 악기에 대한 정성이 가득하다. 우리 악기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 그리고 고민이 오늘의 그를 있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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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평생 악기와 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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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곤 장인의 연구소에는 장인의 일을 돕는 제자들이 있다. 또, 문화재청에서도 전수장학생들을 기르고 있다. 이쯤 되면 대외활동을 활발히 할 것 같지만 장인은 거의 하지 않는다. “전 악기를 더 많이 만들어야만 해요. 제가 외부로 돌면 작업할 시간이 줄어들죠. 그럼 악기를 만들어 낼 수가 없습니다. 제자들을 키운다는 것은 그들의 생계 또한 보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국악기의 생산량은 양악기의 5% 수준밖에 안 됩니다. 수요가 많다고 하는 가야금만 해도 일 년에 팔천 대를 생산해요. 우리나라 한 해 생산량이 그래요. 양악기와는 엄청난 차이죠.” 최근 국악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사람들의 생각도 많이 바뀌고 있다고 하지만 현실은 아직 멀었다는 얘기다. 악기를 만드는 시간을 다른 곳에 나눌 여건이 안되기 때문에 대외활동을 되도록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악기장으로서 앞으로의 국악정책에 대한 확고한 생각과 의지를 피력했다. “교육이나 학교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권의 역할입니다. 그 나라의 경제력이나 국력은 그 나라의 음악이 발달한 것으로도 알 수 있지요. 학교에서 음악이라고 하면 양악입니까? 국악입니까? 서양음악이 ‘음악’이고 우리 음악은 ‘국악’이라고 따로 부르는 나라는 대한민국 외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대부분 우리 악기를 한번 접하면 좋아한다. 학생들도 우리 악기를 만나면 너무 좋아하지만 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는다. 음악교사들은 많지만 국악전공 음악교사는 국내 100명도 채 안되는 수준이라고 하니 국악계에서 교과에 국악 비율을 50%까지 올려놓아도 가르칠 교사가 없다는 것이다. 악기장의 우리 악기와 우리 소리에 대한 사랑이 절절히 와서 닿았다.
요즘은 국악공연이 활성화됐지만 옛날에는 안방음악, 즉 사랑방음악이었다. 공간에 있는사람끼리 함께 즐기고도 남는 연주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공간이 커진 만큼 악기자체를 공연에 적합하도록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일도 필요한 만큼 그 몫을 장인은 본인의 책임이자 의무로 받아 안았다. 국민 한 사람이라도 우리 악기와 우리 소리의 참 가치를 알 수 있도록 악기장 고흥곤은 오늘도 쉼 없이 명주실을 당기고 나무를 깎는다. ![](/upload/logo_r[670][593].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