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로 아들을 교육하다
“며칠 전에 네가 사인을 했다며 나보고 대신 갚아달라는 90파운드짜리 계산서가 왔다. 처음에는 그 돈을 지불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다. 돈의 액수 때문이 아니라 거래내역에 대해 내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네 사인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계산서를 가져온 사람은 나보고 맨 밑에 네 이름이 써 있다며 다시 한 번 들여다보라고 하더구나 (…) 세상에 그런 악필에 조잡한 사인은 난생 처음이었다. 어쨌든 속는 셈치고 돈을 치렀다.” - 1751년 1월 28일
10대 후반의 아들이 쓴 돈을 아버지가 대신 갚으면서 돈의 액수를 질책하지 않고, 자기에게 말하지 않은 서운함과 아들의 사인이 너무 조잡해서 놀랐다며 “훗날 네가 그런 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해 올리면 상사는 읽어 보지도 않고 휴지통에 던져 버릴 것”이라며 아들의 필체와 사인을 에둘러 꾸짖는다. 그러면서 사인을 할 때는 평소보다 조금 크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일러주고, 글씨쓰기 같은 작은 일을 잘해야 비로소 큰일을 해낼 수 있다고 가르친다. “훌륭한 필체는 너의 인품을 드러내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당시로 꽤 큰 돈을 허락 없이 쓴 아들에게 돈보다 사인과 글자를 잘 써야 한다고 우아하게 훈계하는 아버지는 “그곳에서 잘 지내는 것 같아 매우 흡족하다” 로 편지를 끝맺는다. 이처럼 무려 30년 동안 아들의 눈높이에 맞춰 편지를 써서 다정하고도 엄격하게 지식과 교양의 중요성을 가르친 아버지는 누구일까?
영국 신사의 롤모델 필립 체스터필드의 비밀
필립 체스터필드(Philip Chesterfield, 1694~1773)는 런던 케임브리지 대학을 중퇴한 후 당시 귀족 자제들의 필수 코스였던 로마를 비롯한 유럽 도시들을 다니며 책에서 배운 내용을 실제로 견학하고 식견을 넓히는 그랜드투어를 떠났다. 영국에 정치적 위기가 닥쳤다는 소식에 서둘러 귀국하여 21세에 의원으로 정치 생활을 시작했다. 서른 살에는 아버지로부터 백작 작위를 세습받아 상원의원이 된다. 체스터필드의 정치적 활약이 빛났던 시기는 조지 1세와 조지 2세 재임기였는데, 특히 그는 사람을 꿰뚫어 보는 안목과 유려한 화술을 바탕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웅변가로 유명했다. 50대 초반에 물러나야 할 때임을 알고 스스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자유로운 노년을 즐겼다. 자신을 위해 일했던 사람들을 가리켜 “그들(하인들)은 처지가 좋지 않은 내 친구들이다. 천성은 나와 다름이 없으나 운명만 다를 뿐인 사람들.” 이라며 2년치 급료에 해당하는 돈을 유산으로 남겼다. 신분제 사회에서 신분과 상관없이 인간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가득했던 인물로 짐작된다. 모든 면에서 영국 신사의 롤모델같은 체스터필드경은 이토록 많은 편지를 왜 아들에게 보냈을까? 여기엔 체스터필드의 떳떳하지 못한 과거사가 숨어있다. 30대 초반 4년 동안 네덜란드 헤이그의 영국 대사로 재임했던 그는 두뷔체라는 여인 사이에서 결혼식은 올리지 않은 채 아들 하나를 얻었다. 본국으로 돌아온 그는 조지 1세의 사생아이자 월싱햄 백작의 미망인 페트롤리나와 결혼했다. 부인의 돈과 자신의 명예를 맞바꾼 정략 결혼이었다. 그런 이유로 체스터필드는 멀리 떨어져 사는 자신의 사생아 필립 스탠호프에게 그토록 많은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그런 일이 당시엔 흔했다 해도 자신의 품 안에서 키우지 못하는 아들에 대한 사랑은 걱정과 그리움, 애틋함과 책임감으로 컸으리라. “네가 내 편지를 읽을 때 나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읽는다면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세상을 이렇게 살아라
“칭찬을 할 때도 기술이 필요하다. 직접 하는 것보다도 네가 한 말을 당사자에게 전할 것 같은 사람 앞에서 하면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 (…) 조심성 있고 정교하게 다듬어진 아첨은 상대방을 기쁘게 하고 결과적으로 큰 효과를 가져온다. 칭찬과 아첨은 세상을 매끄럽게 살게 하는 삶의 기술이다 (…) 혹시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나더라도 네 마음속으로 해결하고 감정으로 표정이 바뀌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따라서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는 속마음을 단단히 감추는 방패와 갑옷으로 무장한 사람이 결국 승리하는 것이다 (…) 오늘 나는 너에게 인생의 큰 비밀 두 가지를 가르쳐주었다. 내가 쉰 살이 넘어 가까스로 이해한 타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칭찬의 기술’과 ‘속마음을 감추라’는 비밀 말이다. 억지로라도 이해하도록 해 보아라. 훗날 너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잘 있어라.” - 1749년 5월 22일
유력 정치인이자 학식이 높은 인물로 평가받았던 체스터필드의 서간집이 출판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의 냉정하고 솔직한 처세술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아들에게 사람을 정직하게 대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양보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칭찬과 아첨을 적절히 하고 속마음을 절대 들키지 않으며 항상 진실만을 말한다는 평판을 얻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성공하는 비결이라고 가르친다.
“말로써 네 결점을 포장해 속이려고 하거나, 네 탁월한 재능을 더 빛내야겠다는 생각 따위는 절대 하지 마라. 아마도 십중팔구 결점은 더 도드라지고 탁월한 재능은 시들해질 것이다. 네 스스로 입을 다물고 있으면 누구도 쉽게 너를 평가하지 않는다 (…) 겉모습은 솔직하고 숨김없고 성실하게 보이면서도 내면으로는 신중한 마음을 가져라. 그러면 네 스스로를 지키면서도 사람들에게는 선량하고 쾌활하게 보일 수 있다. 말할 때는 항상 상대방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말해라. 그렇지 않으면 뭔가 죄책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뿐 아니라 네 말을 듣는 그들의 표정이 어떤지 살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 이 편지를 마무리하기 전에 위에 내가 언급했던 모든 행동원칙도 품위가 뒤따르지 않으면 효과가 반감된다는 말을 해야겠구나.” - 1748년 11월 5일아들이 사회에 나가서 품위 있는 신사로 성공하길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간절히 느껴진다. 정치인과 외교관으로 평생을 살았던 탓에 그는 상대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는 방법(말하기, 쓰기, 태도, 옷차림 등)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그렇게 좋은 평판을 얻으면 어떤 이익이 있는지도 시저(Caesar)와 카토(Cato)의 사례로 설명한다. 모든 나쁜 짓을 했던 시저는 탁월한 처세술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지만, 모든 위대한 미덕은 다 가졌어도 처세술이 좋지 않았던 카토는 친구들에게서조차 사랑받지 못했다.
만일 시저가 아닌 카토가 능란한 처세술을 갖고 있었더라면 시저는 로마의 독재자가 되지 못했을 것이며, 카토는 원로원을 지
켰을 것이다. 영국의 수필가 조지프 애디슨은 <카토>에서 시저에 대해 이렇게 썼다.
“나라를 몰락시킨 그의 미덕에 저주를.” - 1749년 12월 2일
아버지와 아들은 친구
세상을 사는 데 처세술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는 그의 결론은 냉정하고 현실적이다. 그래서 예비 외교관(정치인)에게 보내는 핵심 노하우 모음집 같은 그의 편지들은 지금도 탁월한 처세술과 자기계발서로 읽히고 있다. 편지 한 통에 이렇게 해라, 저렇게는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최소한 서너 가지에 이르고 역사나 문학에서 인용한 문구들도 곳곳에 삽입되어 있다. 이외에도 종교와 도덕, 시간 관리법과 돈을 잘 쓰는 법, 좋은 친구를 사귀는 법과 사교계에 적합한 행동 양식, 신사가 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덕목과 책에서 얻은 지식을 현실에서 체험하는 방법 등 거의 모든 것들에 대한 가르침이 폭넓게 담겨있다. 부자 관계의 어려움은 서로의 마음을 직접 전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조언을 했지만, 아들은 그것을 잔소리로 듣기 마련이다. 조언과 잔소리는 내용이 같다 해도 듣는 사람이 들을 준비가 됐는지가 중요하다. 아버지의 존재감이 클수록 아들에게 드리우는 그림자는 짙기 마련. 심지어 자신을 사생아로 만든 아버지에 대한 미움도 있었을 텐데, 아들은 편지에 꾹꾹 눌러 담아 보낸 아버지의 사랑을 잘 받았던 모양이다.
“다행히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이면서 친구다. 여태껏 그래왔지만 앞으로도 서로의 마음속을 파고 들어가 미세한 결점이라도 찾아내 올바르게 바로 잡아주는 그런 친구이다. 나는 네게 지지자이자 친구이면서 조언자가 되려고 한다. 한편으로 너는 노년에 이르는 내게 위안이 될 뿐만 아니라 자랑거리이다(…) 잘 있어라, 사랑하는 아들아,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란다.” - 1751년 7월 15일그는 아들을 여러 번 직접 만났고, 편지를 통해 가르치지 못했던 부분을 심도 깊게 전했다. 체스터필드경이 죽은 다음 해 아들이 소중히 간직했던 편지들이 출판되어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고 있다.
* 편지 출처 : <아들아, 걱정 말고 살아라>(필립 체스터필드 저, 이은주·이계정 옮김, 올리브)
오늘의 편지이야기
사랑하는 세건이에게
2017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대학/일반부 <장려상> 노은희
사랑하는 아들! 넌 지금쯤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겠구나. 세건이가 어느덧 사슴반에 진학하고 이번 식목일에는 화분에 상추도 심어서 엄마에게 선물해 주었지. 작고 앙증맞은 예쁜 손으로 푸른 상추를 심고 다독다독 흙을 다듬었을 귀여운 너의 모습이 떠올라서 피식 웃었어.
어린이집에서부터 세건이는 꽃을 좋아하고 동물을 사랑하는 아이라는 칭찬을 들었어. 아마도 엄마 배 속에 세건이가 있을 때, 아빠랑 함께 공원을 거닐며 지저귀는 예쁜 새소리, 올망졸망 피어난 어여쁜 꽃들을 가까이서 보고, 듣고, 느낀 탓에 자연스럽게 자연을 사랑하는 아이가 된 것 같아. 세건이는 요즘 상추 친구로 인해 많이 바빠졌지. 상추가 목 마르지 않게 물도 주어야 하고, 볕이 잘 드는 곳에 상추를 놓아주고, 날마다 얼마나 자랐는지 키도 재어주는 너. 세건이가 가꾸는 것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보살피는 모습을 보며 엄마도 배우고 느끼는 것이 많아.
지난주에 놀러 간 공원에서 작은 쓰레기까지 함부로 버리지 않고 쓰레기통에 넣는 모습이 정말 대견하고 기특했단다. 작은 꼬마가 분리수거를 척척 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주변의 어른들께서도 아낌없이 칭찬해주셨잖아.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아빠의 어깨가 으쓱해지는 걸 엄마는 보았어. 세건이가 지금처럼 자연 보호에 앞장서는 착한 어린이였으면 참 좋겠다. 지난주에 엄마랑 함께 읽었던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준 고양이’라는 동화책 기억하고 있지? 함부르크 항구에 사는 용감한 고양이 소르바스처럼 우린 서로 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해. 죽어가는 엄마 갈매기 켕가는 세 가지 약속을 모두 지켜 준 소르바스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했을 거야. 알을 먹지 않고, 품어서 보호해 주고, 고양이 스스로가 단 한 번도 날아 본 적 없는 하늘을 날 수 있게 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잖아. 가엾게 죽어간 켕가의 죽음이 조금 덜 슬펐던 건 고양이 소르바스의 희생과 사랑 때문이지.
세건아, 우리 내년에는 앞마당에 식목일 기념 나무를 심자. 세건이가 좋아하는 초록 소나무를 심는 거야! 멋진 계획이지? 순수하고 착한 세건아! 지금처럼 맑고 깨끗한 마음을 지켜가자. 엄마는 항상 너를 응원하고 있단다. 시나브로 찾아 온 새봄에는 우리 가족에게 행복한 일들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소르바스처럼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 ‘가족’이 되자.
온 맘 다해 사랑해,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