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녹스의 금
‘007 시리즈’ 중 수작으로 꼽히는 ‘007 골드핑거(1964년 작)’에서 골드핑거는 미국 켄터키 주 군사기지인 포트녹스(Fort Knox)에 저장된 금을 방사능으로 오염시키려 한다. 포트녹스는 미 재무부가 가진 대부분의 금이 소장돼 있는 곳인데, 1930년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일반인들의 금 거래를 금지시키고 민간에서 매입한 금을 이곳에 쌓았다.
루즈벨트 시대의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전후 국제금융 질서를 새로 만든 ‘위대한 시대’였다. 종전을 눈앞에 둔 1944년 44개 연합국 대표들은 미국 뉴햄프셔 주의 브레튼우즈에 있는 한 호텔에서 국제회의를 열고 미 달러에 국제 화폐(기축통화)의 지위를 부여했다. 이들은 미화 35달러를 금 1온스에 고정시키고 다른 나라의 화폐는 미 달러에 연동시키기로 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도 설립키로 했다. 이 새로운 국제금융 질서를 ‘브레튼우즈 체제’라고 부른다. 포트녹스에 저장된 막대한 금은 ‘달러를 가져오면 언제든 금으로 바꿔 주겠다’는 미국의 자신감을 의미했다. 그 시절 금과 연동된 유일한 돈이 달러였으니, 영화처럼 포트녹스의 금이 하루아침에 오염돼 못 쓰게 되면 브레튼우즈 체제도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다.
브레튼우즈 이전까지는 각국의 화폐가 금과 직접 연동된 ‘금본위제’였다. 종이지폐는 금을 은행에 맡기고 받는 ‘증서’였고, 종이지폐를 주고받는 건 은행에 있는 금을 가져갈 수 있는 권리를 주고받는 행위였다.
일본 제국주의 시절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돈을 찍어내려면 금이 필요했다. 중앙은행이 금을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돈을 찍어냈다가는 화폐 가치가 폭락해 휴지 조각이 되고 만다. 일본은 전쟁에 뛰어들면서 필요한 돈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화폐 가치를 안정시키기 위해 금을 긁어모았다. 조선 곳곳에 금광이 세워졌고 그 금은 전쟁비용으로 쓰였다. 충남 천안의 직산광산, 강원 정선의 천포광산 등이 대표적이다. 금은 제한됐고 화폐 발행량이 금 채굴량보다 많다 보니 어김없이 화폐 가치가 떨어졌고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달러 ‘인디펜던스데이’
미국은 달랐다. 두 차례의 전쟁과 무역을 통해 세계의 부를 거머쥔 최강국이 됐다. 포트녹스에 저장된 막대한 금은 다른 나라에게는 미국과 미 달러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뜻했다. 예를 들어 한국이 미국과의 무역으로 350달러를 벌어들였다면 한국은 350달러를 금 10온스로 교환할 수 있었다.
브레튼우즈 체제가 이어질 수 있었더라면, 미국이 최강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더라면 ‘환율전쟁’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터다. 브레튼우즈의 종언을 선언한 건 골드핑거가 아니라 미국의 대통령 닉슨이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으로 돈을 찍어내고 있었고, 이미 달러가치는 폭락했다. 미국 은행에 미화 35달러를 가지고 가면 금 1온스로 바꿀 수 있었지만, 그 금을 유럽 시장에 내다 팔면 수백 달러를 벌 수 있었다. 프랑스를 시작으로 전 세계가 미 중앙은행에 미 달러에 대한 금 태환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1971년 8월 15일 닉슨 대통령은 달러를 가져와도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른바 ‘닉슨 쇼크’다. 달러가치는 폭락했지만 미국은 여전히 최강국이었고, 소련 견제를 위해 다른 나라들이 협력하면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국제사회는 달러를 국제통화로 인정하되 금과는 연동시키지 않기로 했다. 돈은 금으로부터 독립했고, 달러는 곧 금의 자리를 꿰찼다. 미국은 달러를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대금으로 달러를 받겠다고 선언하면서 금에서 독립한 달러는 더 힘을 받게 됐다.
기축통화의 운명, 무역수지 적자
미국으로선 기축통화의 유일한 부담이었던 ‘금과의 연동’ 이 사라지면서 온갖 혜택을 누리게 됐다. 환전 비용도 없고환리스크도 없다. 당장 1997~1998년 IMF 외환위기를 돌이켜보자. 외국 빚 만기는 코앞인데 달러를 빌려주겠다는 은행들은 없고, 투기세력까지 들끓다 보니 원달러 환율이 폭등했고 정부는 환율을 방어하다가 외환보유고를 소진했다. 정부가 돈을 구하기 위해 발행한 채권은 파리만 날렸다. 이게 얼마나 트라우마가 됐는지 외환위기 20년이 지났지만 한국에서 외환보유고는 무조건 많아야 하는 신성불가침의 가치가 됐다. 미국은 그럴 필요가 없다. 미국이 위기를 겪어도 언제나 미 채권을 구입하는 이들이 줄을 선다. 트럼프는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를 걱정하지만, 무역수지 적자는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운명이기도 하다. 다른 국가들이 달러를 많이 보유할수록, 달러가 곳곳에 전파될수록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입지가 강화되기 때문이다. 달러를 발행하지 않는 국가가 달러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역이다. 전후 독일과 일본이 수출로 성장했고, 이후 한국과 대만, 중국 등이 그 자리를 넘겨받았다. 미국의 무역수지는 적자로 돌아섰고 점점 그 폭이 커졌다. 일본· 한국·대만·중국 등은 무역으로 달러를 벌어들이지만 그 달러로 미 채권을 구입한다. 미 채권은 안전한 데다 언제든 달러로 교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3월 말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3753억 달러로 이 중 90%가 국채·정부기관채·회사채다. 그중에서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미 채권이다. 미국에서 빠져나간 달러가 미 채권으로 다시 돌아오는 시스템은 현재의 국제금융질서를 유지시키는 기반이다.
미 채권을 팔아 조달하는 돈이 부족하다면? 달러를 찍어내면 그만이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겪은 미국은 경기부양을 위해 2008~2012년 세 차례에 걸쳐 달러를 찍어냈다. 이른바 ‘양적완화’다. 이 자금들은 ‘핫머니’가 돼 한국과 중국 등 신흥국으로 몰렸다. 달러 자금이 한국에 투자될 때는 먼저 원화로 환전되는데 달러를 팔고 원화를 사려는 수요가 많아지다 보니 원화가치가 크게 뛰었다. 원화가치 상승은 한국산 수출품의 가격을 높이게 된다. 선진국의 경기부양을 위한 양적완화로 신흥국들이 피해를 봤다는 평가가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강력한 BHC법안
사실 미국은 그전에도 환율조작국 여부를 지정해왔다. 매년 4월과 10월 미 재무부는 교역상대국에 대한 환율정책보고서를 작성해 미 의회에 제출한다. 올해 특히 문제가 된 건 새로운 법이 발효되면서 환율조작국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대미 무역수지 200억 달러 이상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율 3% 이상 △GDP 대비 2% 이상 달러 매수 개입. 쉽게 말하면 미국산 제품·서비스의 수입보다 미국으로의 수출이 훨씬 많고, 정부가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해서 달러를 상당액 사들이는 방식으로 자국 통화 가치를 낮출 경우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다. 한국은 1988년 10월, 1989년 4월, 1989년 10월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됐지만, 현재는 두 가지 조건만 충족해 ‘관찰대상국’이 됐다. 환율조작국이 되면 미국기업이 해당 국가에 투자할 때 금융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 해당 국가의 기업이 미 연방정부 조달시장에 진입하는 것도 금지된다. 또 미국은 IMF에 해당국의 환율정책을 감시하고 환율조작 여부를 논의하도록 압박하게 된다. 작년 2월에 발효된 이 법을 미국에선 BHC법(무역촉진법 중 7장)으로 부른다. 이를 공동 발의한 마이클 베넷(Bennet), 오린 해치(Hatch), 톰 카퍼(Carper) 상원의원의 이름을 땄다. 오린 해치 의원은 ‘러스트벨트(미국의 쇠락한 공업지대)’로 불리는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 출신이기도 하다. 트럼프에게 표를 몰아준 바로 그 지역이다.
당초 중국은 유력한 ‘환율조작국’ 후보로 거론됐지만, 사실 중국으로선 억울할 만한 일이다. 당장 중국의 외환보유고만 봐도 알 수 있다. 중국 정부가 위안화를 절하시키려면 시중에 풀린 달러를 사들여야 한다. 달러를 매입하면 외환보유고는 늘어나게 되는데 최근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오히려 줄었다. 미국의 금리가 상승하면서 외국인 자금이 중국에서 투자금을 빼기 시작했고, 투자금 회수로 위안화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자 이를 막기 위해 중국정부가 달러를 사들였다는 뜻이다.
4월 초 열린 미·중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는 중국은 환율조작국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상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중은 미국의 대중무역 적자를 줄이기 위한 ‘100일 무역협력 계획’도 추진키로 했다. 한국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대미 수입을 늘렸다. 중동에서 전량 들여오던 액화천연가스(LPG)는 물량 중 상당 부분을 미국에서 수입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올해 1~3월 대미 수입은 전년 동기보다 18.8% 상승했다. 결국 트럼프 정권 1년 차 환율전쟁 이슈는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폭을 줄이는 정도로 갈 것으로 보인다.
다음번 ‘골드핑거’
37년 전만 해도 미국은 무역적자 폭이 크다는 이유로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를 절상(통화가치를 높임)시켰다.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G5(프랑스, 서독, 일본, 미국, 영국)의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들은 이 같은 내용의 ‘플라자 합의’를 이뤄냈고, 일본은 이후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경제침체기를 맞는다. 환율전쟁은 언제나 기축통화국의 승리로 끝났다.
중국 위안화는 기축통화로서의 달러를 위협하는 강력한 경쟁자다. IMF가 만든 보조 통화인 특별인출권(SDR)에 위안화가 편입된 건 단적인 예다. 중국으로선 ‘기축통화국’ 지위는 놓칠 수 없는 특권이다. 물론 달러가 이미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데다, 중국 정부의 규제 등을 근거로 기축통화로서의 위안화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패권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갈 때도 영국의 파운드가 한동안 기축통화의 위상을 누린 점을 보더라도, 달러가 상당 기간 동안 기축통화 자리에서 내려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도전은 시작됐다. 중국은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에 맞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출범시켰고, 다른 나라와의 무역에서 달러가 아닌, 위안화 결제 비중을 늘리고 있다. ‘오일 위안화’로 ‘오일 달러’를 넘어서겠다는 꿈도 있다. 지난해부터는 상하이선물거래소에서 위안화로 원유의 선물거래가 가능해졌다.
이번 ‘환율조작국’ 사태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해소하는 방식으로 무마됐지만, 중국의 부상으로 환율을 둘러싼 갈등은 점차 심해질 수밖에 없다. ‘스트롱맨’ 트럼프의 등장 이후 국제경제는 불확실성의 안개에 싸여 있다. 일단은 다들 ‘조심조심’ 다니기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달러 패권’을 무너뜨릴 다음번 ‘골드핑거’는 중국인이라는 것만은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작가소개 이재덕 기자
경향신문 기자.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농림축산식품부, 한국은행, 시중은행, 카드사 등에 출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