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기 좋은 곳을 안다
- D 시인에게
이명수
울 만한 곳이 없어 울어보지 못한 적이 있나
울음도 나이테처럼 포개져 몸의 결이 되지
달빛 젖은 몸이 목숨을 빨아 당겨
관능으로 가득 부풀어 오르면
그녀는 감춰둔 울음의 성지를 순례하지
징개맹개 외배미들은 아시겠지
망해사 관음전에 마음 놓고 앉았다가
바다 끝이 뻘밭 지평선에 맞닿을 때
심포항 끼고 바삐 돌아 화포포구로 가지
갈대는 태어날 때부터 늙어 버려 이미 바람이고
노을이고 눈물이지
갯고랑이 물길을 여는 나문재 소금밭으로 가 봐
갯지렁이 몸을 밀면서 기어간 뻘밭의 자국들
그것이 고통스런 시쓰기의 흔적처럼 남아 있을 때
뒤돌아 봐, 울음이 절로 날 거야
갯고랑처럼 깊이 파인 가슴 한쪽이 보이지
그래도 울음이 솟지 않거든 한 번 더 뒤돌아 봐
녹슨 폐선 하나 몸을 누이다 뒤척이며
갈대숲 너머로 잠기고 있을 거야
거기 낡은 폐선 삐걱이는 갑판에 역광으로 꿇어앉아
울고 있는 여자 하나 보일 거야
깨진 유리창 틈으로 흔들림이 미세한
울음의 음파가 허공에 닿아
길 떠나는 도요새 무리들 울리고 있을 거야
울음도 감염되어 분열하고 성장해서
화포포구엔 울기 좋은 울음의 성지 오래된
소금창고가 남아 있는 거지
그곳 우주 가득한 관능을 빨아들이며
잠몰(潛沒)하고 있는 달빛 아래
바로 그녀가 울음의 진드기야
예나 지금이나 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은 뜨겁습니다. 은밀한 곳에서마음껏 쏟아내는 울음은 일종의 정화의식이지요. 드넓은 요동 벌판 앞에서 연암 박지원은 부평초 같은 인생의 실체를 깨닫습니다.
“내 오늘 처음으로, 인생이란 본시 아무런 의탁함이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밟은 채 떠돌아다니는 존재임을 알았다.”
연암은 그 자리에 말을 세우고, 아득히펼쳐진 대평원을 돌아보다가 이마에 손을얹고 말합니다.
“좋은 울음터로다. 가히 한 번 울만 하구나.”
‘울음의 성지’를 발견한 연암 박지원의 독백입니다. 호곡장(好哭場)을 말하면서연암은 울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풀어놓습니다.
“기쁨이 지극하면 울 수가 있고, 분노가사무쳐도 울 수가 있네. 즐거움이 넘쳐도울 수가 있고, 사랑함이 지극해도 울 수가있지. 미워함이 극에 달해도 울 수가 있고, 욕심이 가득해도 울 수가 있다네. 가슴 속에 답답한 것을 풀어버림은 소리보다 더 빠른 것이 없거니와, 울음은 천지에 있어서 우레와 천둥에 견줄 만하다 하겠소.”
서두가 길어졌습니다. 이명수 시인의《울기좋은곳을안다》는 울음에 대한 시입니다. 시인은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하는 삶을 주목합니다. 마음 놓고 울 수 없는버거운 삶은 우리 주변에 많습니다. ‘울음도 나이테처럼 포개져 몸의 결이 되지’ 라고 말하는 시인은 누구보다도 많이 울어본 사람입니다. 너나없이 우리는 울음의 나이테를 몸에 지니고 살아가지요. 겉으로 잘 보이지 않지만 울음은 존재의 아픈 이력들이지요.
달빛 젖은 몸이 부풀어 오르면‘울음의성지’를 찾아다니는 여인이 있습니다. 그여인은 화포포구에서 좋은 울음터를 발견하고, 갈대를 바라봅니다. 갈대는 태어날때부터 이미 늙어버려 눈물이고 노을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하고 있습니다. 인간을 내던져진 존재로 규정했던 하이데거(Heidegger)는“사람은태어날때이미죽을수있는 만큼 충분하게 늙어 있다.”라고 말하지요.
시인은 갯지렁이가 몸을 밀면서 기어간뻘밭의 자국들을‘고통스런 시쓰기의 흔적’이라고 말하면서 뒤를 돌아보라고 말합니다. 뒤를 돌아보는 행위는 곧 존재에대한 조용한 응시입니다. 응시의 한 끝에서 절로 스며 나오는 울음을 만납니다. ‘갯고랑처럼 깊이 파인 가슴 한쪽’이 거기 있기 때문이지요.
갈대숲 너머에는 녹슨 폐선 하나 저물고 있습니다. 삐걱거리는 갑판 위에는 꿇어앉아 울고 있는 여자가 있고요. 시인은여인의 울음이 허공에 닿아 도요새 무리들을 울게 한다고 말합니다. 여인의 울음과 철새의 울음이 가느다란 끈으로 이어져 가을의 적막한 하늘을 붉게 적시고 있습니다. 시인은 우연히 마주친 풍경을 한동안 바라보면서 감염된 울음에 슬그머니눈가가 젖습니다. 애틋한 연민이지요. 연민은 동정이 아니라 동등한 수평적 연대의 따뜻한 손길입니다. 타인의 슬픔을 내것으로 끌어안는 능동적 수용이지요.
여인의 상처와 울음에 감응하면서 시인은 마지막 부분에‘잠몰(潛沒)하고 있는달빛’과‘여인’을 배치합니다. 달과 여성은 근친입니다. 달과 물은 생명의 근원과여성의 자궁을 상징하는 보편적인 메타포이지요. 달의 주기는 여성의 월경 주기와 일치하고, 달은 치유와 생성, 재생의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울음의 성지’ 는 곧 재생과 부활의 성지이기도 하지요.
시인은 슬픔을 넘어서는 방법을, 지독한 통한의 아픔을 견디는 방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울음의 긴 터널을 빠져나와 ‘소금창고’같은 생명의 성지를 발견하기까지 시인의 발걸음은 많이 고단했겠지요.
8월입니다. ‘울음의 성지’를찾아떠나보시지요. 칠면초와 갈대 우거진 화포 포구는 김제시 만경읍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