밧줄이 숲을 끌어당긴다
마경덕
강물을 가로지른 긴 외줄 참나무 허리에 건너편 물푸레나무
가 묶여 있다.
밧줄의 거리만큼 허공이 좁혀진다.
7월의 허리통이 한 자나 늘었다. 불어난 물소리에 자박자박
물푸레나무 발목이 젖는다. 물푸레나무숲으로 바람이 밀려가고
물푸레 가지에서 첫눈 뜬 새소리가 참나무 숲으로 밀려온다.
깊은 물소리도 따라온다.
불안을 묶고 아슬아슬 건너던 밧줄, 출렁이던 무게를 버리고
저리도 태연하다.
멀고 먼 것들, 마주 보며 지나치던 것들,
끝내 닿지 못한 것들이 서로를 어루만진다.
줄 하나 붙잡고 지금 이 산과 저 산이 통화중이다.
마경덕 시인은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를 통하여 늦은 나이에 등단하였습니다. 등단은 늦었으나 이후의 활동은 매우왕성하여 시단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지요. 또「내 영혼의 깊은 곳」이라는 아름다운 블로그를 운영하여 많은 이들이 손쉽게 시를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등단 이후 시인은 온전히 시에 몰입하여살고 있습니다. 열정적으로 시를 쓰고, 여러 곳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등 그야말로 시 전도사라 할 만큼 그녀의 삶은 뜨겁습니다.
<밧줄이 숲을 끌어당긴다> !
이 시를 처음 지면에서 보았을 때 제목에 이끌려 저절로 눈이 갔습니다. 예사롭지 않은 제목 아래 아름다운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지요. 강물을 사이에 두고긴 밧줄이 참나무와 건너편 물푸레나무에묶여 있습니다. 밧줄 하나로 텅 비어있던허공이 팽팽해집니다. 강의 이쪽과 저쪽을 잇는 것은 밧줄 하나인데, 시인은 풍경의 이면을 조용히 응시하다가 생명의 탯줄을 발견합니다.
절박한 상황에서 시인의 간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밧줄을 살아 꿈틀거리게하지요. 지극한 마음이 죽음을 생명으로,단절을 소통으로 이어줍니다. 밧줄을 타고바람이 밀려오고 새소리가 건너옵니다. 사납게 포효하는 강물 앞에 서보신 적이 있는지요? 건너가야 할 저편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굴러본 적이 있는지요? 눈앞에아무것도없을때불빛한점없는 어둠속에홀로갇혀있을때홀연히 눈앞에나타난 밧줄 하나! 차가운 단절과 결핍을복원하는 영혼의 탯줄, 밧줄을 타고 건너오는 저편의 풍경들이 가슴속으로 흘러옵니다. 밧줄을 타고 건너오는‘깊은 물소리’도 시인의 귓전을 두드립니다.
‘불안을 묶고 아슬아슬 건너던 밧줄’ 을 떠올려 보시지요. 삶의 외진 구석에 남아있을 아픈 기억들은 삶의 소중한 자산들입니다. 고통은 새로운 삶의 공간으로 나아가는 문입니다. 그 문을 통과하지 않고는 저편의 세계에 닿을 수 없겠지요.
‘멀고 먼 것들, 마주 보며 지나치던 것들, 끝내닿지못한것들’이 우리 주변에얼마나 많은지요. 보다 넓은 삶의 지평을바라보지 못하고 단절과 고립의 성에 갇혀 있다면 삶은 축제가 아니라 지옥이 되겠지요. 주변의 삶과 소통하고 아름다운관계를 만들어 가는 일은 곧 튼튼한 생의밧줄을 잇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네 삶은 다양한 가치의 공존과 상생 대신 서로가 서로를 배척하는 경우가 더 많지요. 돌아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얼굴을 붉히고 드잡이를 하고, 가엾은 영혼들끼리 서로 상처내기에 바쁜 것이 우리의모습이 아닌지 곰곰이 되돌아봅니다.
서로가 서로를 어루만지고 따뜻하게끌어안는 삶을 시인은 꿈꿉니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무조건 배척하고, 나누고,선을 긋는 일이 인간의 삶을 한없이 왜소하게 할 테니까요.
‘줄 하나 붙잡고 지금 이 산과 저 산이 통화중이다.’
마침내 시인은 강물을 사이에 두고 이산과 저 산이 통화하는 풍경을 봅니다. 이것이 바로 상생이요 관계론적 사고의 모습이겠지요. 시인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풍경을 보고,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소통 부재의 답답한 현실을 단숨에 뛰어넘게 하는 청신한 언어의 힘!
마경덕 시인은 어떠한 투정이라도 다받아줄 것 같은 넉넉한 영혼의 소유자이지요. 인간을 신뢰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라고 믿고, 험한 고비들을 온몸으로 살아낸 시인은 요즈음 여러 시편에서 감동의 언어를 활짝 꽃피우고 있습니다.
오늘도 못된 버릇을 버리지 못했네요.쓸데없이 중언부언 언어의 그물에 걸려 퍼덕거리기만 했습니다. 이제부터 어설픈이정표를 버리시고, 눈앞의 빛나는 시만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