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
이상국
나 고등학교 졸업하던 해
대학 보내 달라고 데모했다
먹을 줄 모르는 술에 취해
땅강아지처럼 진창에 나뒹굴기도 하고
사나로 씩 집에 안 들어오기도 했는데
아무도 아는 척을 안 해서 밥을 굶기로 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우물물만 퍼마시며 이삼일이 지났는데도
아버지는 여전히 논으로 가고
어머니는 밭 매러 가고
형들도 모르는척
해 가지면 저희끼리 밥 먹고 불 끄고 자기만 했다
며칠이 지나고 이러다간 죽겠다 싶어
밤 되면 식구들이 잠든 걸 확인하고
몰래 울 밖 자두나무에 올라가 자두를 따 먹었다
동네가 다 나서도 서울 가긴 틀렸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낮엔 굶고 밤으로는 자두로 배를 채웠다
내 딴엔 세상에 나와 처음 벌인 사투였는데
어느 날 밤 어머니가 문을 두드리며
빈속에 그렇게 날 것만 먹으면 탈 난다고
몰래 누룽지를 넣어주던 날
나는 스스로 투쟁의 깃발을 내렸다
나 그때 성공했으면 뭐가 됐을까
자두야
요즈음은 '자발적 가난'을 말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과거의 절대적 빈곤 속에서 앞날의 희망을 이야기할 수가 없던 시절을 생각하면 꿈만 같습니다. 어찌 보면 '자발적 가난'은 사치요 허영일지도 모릅니다. 생존 자체를 위협받으며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이 마양 버겁기만 한 사람들에게 '자발적 가난'은 허황된 얘기 일지 모릅니다. 물론 E.F.슈마허의 이 책은 부자들의 허영에 대한 자발적 각성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었지요.
보릿고개를 기억하는 세대는 다들 잘 아실 겁니다. 초등하교 다닐 때 밥을 굶고 다니는 아이들이 많았지요. 학교에서는 강냉이 죽을 가마솥에 끓여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한 두 해 지나자 가냉이 가루로 만든 빵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나마 그것 조차 양이 충분치 않아 못 먹는 아이들도 있었지요. 돌아가며 빵을 타먹는 날은 아침부터 가슴 설렌 기억이 새롭습니다. 어쩌다 교실 청소를 마치고 남은 빵을 선생님으로부터 얻어 먹는 날은 얼마나 행복했었는지요. 지금도 그때 먹은 빵의 향기가 눈만 감아도 아려힌 떠오릅니다. 학교 오갈 때 마다 고무마, 감자 등을 주인 몰래 캐먹기도 하고, 소나무 가죽을 벗겨 속살을 긁어 먹던 기억도 나는군요.
이상국 시인은 쉬운 시를 쓰는 시인입니다. 어느시를 일어도 아무 부담 없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시들이지요. 현란한 수사나 상징으로 요란하게 치장 한 시가 아닙니다. 그의 시는 평범한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백하고 수수하게 그려내면서 진한 감동을 담습니다. 꾸미지 않은 천연의 감동이지요.
이 시는 가난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대학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던 시절의 이야기지요. 남들처럼 전답이라도 있어 그걸 팔아 학비를 마련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그래도 행복한 사람들이었지요. 논도 밭도 없던 사람들에게 대학은 한낱 꿈에 지나지 않았이요. 기껏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겨우 마치고 생존 경쟁의 현장으로 달려 가는 것이 고작이었지요.
이시의 화자도 대학을 가기 위해 '사투'를 벌입니다. 단식 투쟁을 해서라도 꼭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고 싶었지요. 그러나 식구들은 모른체합니다. 이삼일이 지나도 아무도 아는 척을 하지 않습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럭 겁을 납니다. 살아야지요. 밤이 되어 몰래 울타리 밖에 있는 자두나무에서 자두를 따 먹습니다. 굶주린 배를 채우면서 버팁니다. 대학은 그만큼 간절한 희망이었지요. 아무 희망이 보이지 않는 촌구석에서 젊음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큰 도시로 나가 푸른 꿈을 펼쳐 보고 싶었던 거지요.
절망과 슬픔의 몇 날이 지났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문을 두드리며 "빈 속에 그렇게 날 것만 먹으면 탈난다."며 몰래 누룽지를 넣어 주었습니다. 결국 시인은 그날로 '투쟁의 깃발'을 내리고 맙니다. 어머니는 다 알고 있었던 겁니다. 다른 가족들도 모두 알고 있었겠지요. 그러나 내색하지 않고 기다려 줍 겁니다. 홀로 정말을 딛고 일어 설 때까지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던 겁니다. 할 수만 있다마녀 귀한 자식을 대학에 보내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그렇게 하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요?
어머니는 아들이 단식하는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고 뒤척이셨을 겁니다. 어머니의 타는 속을 아들은 깨닫습니다. 이제 장성한 아들은 자두를 볼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 지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이상국 시인은 <성묘>라는 시에서 화장하여 바다에 뿌려 달라는 어머의 생전 유언과 달리 선친의 묘에 합장 한 후 이렇게 노래합니다.
'30촉 짜리 전등이라도 하나 넣어 드릴 걸
평생 어두운 집에서 사시던 분들'
시인의 따듯한 마음이 오래도록 가슴에 머뭅니다. 가만히 어머니를 불러 보지만 이제 어머니는 너무 먼 고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