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정비결
아버지는 늘 노래를 불렀습니다. 집에서도 한복을 입고 어릴 적 서당에서 글을 읽을 때의 버릇으로 몸을 좌우로 흔들었습니다. 아버지의 노래는 늘 한결 같았습니다. 그저 듣기에는 시조창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손자들이 오랜만에 오면 낭랑하게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를황으로 시작되는 천자문을 외우다가 다음의 한 대목으로 마무리를 하시곤 했습니다.
‘堂上鶴髮 千年壽 膝下子孫 萬歲永’(집안의 부모님은 천년토록 오래 살고 슬하의 자식들은 만세토록 영원하리라)
두 달 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니 아버지가 떠나신 게 아니라 아버지만 빼고 우리들만 이곳의 지금으로 떠나왔습니다. 아버지는 그곳에 잘 계실 것입니다. 아버지가 이곳으로 올 수 없듯이 우리 또한 이제는 그곳으로 갈 수 없습니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무료함을 달래며 노래를 부르고 있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유해는 고향으로 모셨습니다. 대강의 위치는 미리 집안 어른들과 상의도 하고, 또 해마다 벌초하러 가는 길에 둘러도 보았더랬습니다. 막상 터를 잡아 산소를 이룩하고 보니 아버지께서 이승에 계셨던 그 어느 곳보다 높고 편안한 곳이라 여겨져 많이 안심이 되었습니다. 맞춤하게 주문이라도 한 듯 건장한 청년 같은 소나무 두 그루가 좌우 입구를 지키고 있어 보기에도 좋았습니다.
삼우제를 지내고 우리는 산소 주위에 잔디를 심었습니다. 내년 봄이면 파릇한 풀포기를 아버지는 잔뜩 우리 쪽으로 밀어내 주실것입니다. 이윽고는 나 또한 아버지의 뒤를 따를 것이기에 연습 삼아 그곳에 엉덩이부터 깔고 앉은 뒤 눕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하기도 했습니다. 문패도 주소도 없지만 아버지의 새집을 나설 때 나는 내 오랜 소망 중의 하나가‘어서 늙고 싶다’였는데 아버지 덕분에이제 그 소망의 급을 좀 높여야겠다고 아내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이즈음은 아버지께서 어김없이 토정비결을 꺼내고 새해의 책력(冊曆)을 찾는 시기입니다. 아버지는 손가락을 이리저리 맞추며 간지를 따지기도 하면서 많은 궁리를 하시는 듯했습니다. 아버지 없이 맞이하는 첫 번째 설날입니다. 설날 아침, 차례 준비를 하는 부산한 와중에서 책력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다시 아버지 노래 이야기 입니다. 아버지는 어릴 적 한문 선생님께서 겨울 공부를 마치면서 읊었다는 다음 노래도 즐겨 불렀습니다. 올 설에는 옛 기억을 더듬어 아버지의 빈자리를 그리며 아버지의 노래를 흉내라도 내 볼 작정입니다.
‘好在커라 上山齋室臺야 春風來日에 更相尋하세’(잘 있거라 상산재실대야 봄바람 부는 다음에 서로 다시 찾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