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월미도 연안부두 전투경찰대에서 대학 동창을 만나고 시내로 돌아온 사내는 동창 녀석이 헤어지며 건넨 인사말이 왠지 계속 마음에 걸려왔다. 그래서 그는 동창 녀석이 전투경찰로 근무하고 있는 방향 쪽으로 무의식적으로 자꾸 고개가 돌아가는 거였다.
“야, 몸조심해. 비상이야, 비상. 검문검색 강화 명령 떨어졌어. 어제 임진강 쪽으로 무장간첩이 침투했대. 건투를 빈다. 잘 해봐! ”
어느 새 사내의 몸에 닭살이 돋아났다. 사내의 옆에 불안하게 서 있던 그녀는 서서히 덮쳐오는 어둠의 그림자를 느끼며 이 위기 상황을 벗어나려고 눈동자를 분주히 돌리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초면의이 사내와 여관엘 들어간다는 사실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눈빛을 그녀는 하고 있었다.
사내는 신학생이라고 했다. 경춘선 열차 안에서 그렇게 고백했다. 믿음이 깊고 또 성령이 충만하건 간에 일단 그가 예수쟁이라는 사실에 그녀는 다소 안도했다. 그것은 그녀의 엄마가 서울 장위동에 있는모 교회 전도사라는 점 때문에 자연스럽게 우러난 동질감의 조건반사였다. 그리고 사내의 무릎 위에 올려져 있던 두툼한 신구약 성경책이 그런 믿음을 더욱 부축이고 있었다.
“저, 인천에서 춘천까지 곧바로 가는 기차는 없대요. 어떻게 하실래요? 2학기부턴 개척교회 전도사로 나갈 사람이에요. 아가씬 아까부터 나를 치한으로 생각하고 있나 보죠? ”
그녀는 대답 대신 사내가 이끄는 대로 순순히 여관으로 빨려 들어갔다. 자유공원이 올려다 보이는 중구 관동의 허름한 여관은 일제 강점기 때 지은 건물처럼 오래되어 보이고 다소 을씨년 스러웠다.
사내와 함께 여관에 들어서자 내실 문이 열리고 몸뻬 차림의 여인네가 숙박부를 건넸다. 숙박부를 건네받은 사내는 뭔가를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이내 빈칸을 볼펜으로 채워 나갔다. 사내는 숙박부에 그녀와의 관계를 약혼녀라고 적어 넣었다.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신학생이었고, 옆구리에 끼고 있던 성경책이 그를 보증해서가 아니라 적당한 기회를 틈타 그를 벗어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녀의 계획은 허사가 되었다. 경찰서에서 숙박업소에 배포한 중요 지명수배 피의자 중 한 사람으로 사내의 얼굴이 걸려 있었고, 몸뻬 차림 여인의 재빠른 신고로 사내는 객실에 들어와 숨도 돌리기 전에 긴급 체포되었다.
사내는 그 날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되었고, 구속된 그를 몇 번 면회 다닌 인연으로 결국 그녀는 신학생으로 위장한 사내가 친 결혼의 덫에 걸려들고 말았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사내의 아내가 되었다. 사내는 지금 충청도 바닷가의 조그만 교회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