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중학교 3학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오는 아린 기억들이 있지만 그 아픔 속에는 담임이셨던 가정선생님과 졸업에 대한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다.
나의 학창 시절은 슬픔의 나날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나는 무척 힘든 세월을 보냈다. 내가 그렇게 학창 시절을 우울하게 보낼 수밖에 없었던 건 아버지가 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원양어선을 타러 갔다가 바다에 빠져서 머리를 다치셨다. 그 후 서서히 병은 깊어지기 시작했고, 내가 초등학교 육학년이되던 해부터 정신분열증이 너무 심해 우리 가족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견디다 못한 우리는 아버지를 피해 도시로 피난을 가게 되었다. 내가 중학교 삼학년 졸업을 몇 달 앞두고 있던 때였다.
학업도 중단한 채 방직공장에서 보조원 노릇을 했으나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한동안은 힘든 줄 몰랐다. 그러나 차차 시간이 지나자 공부를 할 수 없고, 졸업식에 참석할 수 없다는 생각은 점차 슬픔으로 다가왔다. 졸업을 못하게 될지도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선생님께 긴 편지를 썼다. 담임선생님은 걱정하지 말라는 답장을 보내왔는데 내게 많은 힘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아버지를 피해 숨어 지내던 생활도 오래 가진 못했다. 우리는 다시 보따리를 싸서 고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그때는 아버지의 병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소문이 나 있던 터라 우리를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많았고, 외삼촌이 이리저리 알아본 결과 아버지는 마침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중학교 졸업식은 이미 끝나버렸지만 나는 선생님을 뵈러 학교에 갔다. 너무나 반가워하며 맞아주시던 선생님은 내게빛나는 졸업장과 선행상장을 건네주셨다. 그런 사연으로 나에겐 중학교 졸업사진이 한 장도 없다. 예쁜 꽃다발과 상장,가족들과 웃으며, 때론 친구들과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하며 찍었을 졸업사진, 아니 졸업식장의 풍경조차도 내 기억 속에는 없다. 그래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가슴 한쪽이 따뜻해오는 건 나를 마음으로 보듬어주셨던 선생님의 따뜻한 눈빛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나이 벌써 마흔넷. 나는 올해 방송통신대학교 이학년이 된다. 다시 공부를 시작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학구열에 푹 빠져 사는 요즘이 좋다. 아마 삼년 후 내가 졸업을 하게 될 때는 나도 여러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졸업장을가슴에 안고서 활짝 웃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