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가정의 달’
친구의 막내아들은 고시(考試)에 몇 번인가 도전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이 아름다운 5월을 우울하게 보내고있다. 그러니 어미의 마음인들 오죽하랴. 지금까지 투자한 시간과 정력, 물질, 체력 등 소모한 것에 비례한 아픔또한 적지 않아 슬럼프에 빠져 있는 친구 모자의 모습을 지켜보기가 안타깝기만 하다. '칠전팔기(七顚八起)라는말이 있지 않은가'
'다시 힘을 내어 도전해봐야지'
'도전하는 삶은 아름답지 않는가?”등등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다 들어 위로를 해 주어도 좀처럼 친구 모자는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곰곰 생각한 끝에 몇 자 글이라도 전해 주어야 할 것 같아 붓을들었다.
J군.
아름다운 옷을 입은 5월, 자네에게 차라도 아니 소주라도 한 잔 나누며 묵언의 대화를 나누고 싶은 심정이네만J군의 자존심도 생각해 보게 되고 혹여 아픔을 가중시키지 않을까 염려되어 이렇게 몇 자 글로 전하네.
자네의 나이, 인생의 계절로 말하면 5월로 접어들었지 싶네. 이 아름다운 계절에 어렵고 힘든 지나간 일들일랑 훨훨 털어버리고 건전한 사고로 전환하여 내일을 향한 용기 있는 도전을 다시 시작해 보길 권하고 싶으이.
돈, 명예, 권세 그 무엇도 삶을 그려내는 무늬는 될지언정 행복의 척도를 가름하는 데 전부는 아니지 않는가.현재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지난날보다 더 성실하고 진실 되게 생활하다 보면 반드시 이루어 내고 말 것이라 믿고 싶네.
현대인들은 문명이 발달한 만큼 너 나 할 것 없이 매일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지. 자네만 그런 것은 아니니 자위하게나. 긴장이라는 강요가 심신에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적당히 팽팽한 긴장은 오히려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네.
앎이 무지를 줄이는 일이라면, 그건 어디까지나 선험적인 것이 아니라 보고 배우고 또 익히는 훈련의 과정이아닐까? 그 훈련 과정에는 실패도 있을 수 있고 더러는 나락에 빠질 때도 있지. 하지만 그 훈련의 실천 과정에는반드시 따라야 할 중요한 것이 있지. 그것이 무어냐고? 참고 견뎌내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길! 그 길은 부단한노력과 자신을 이겨내려는 극기의 힘이라고 보네.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극히 고요하고 평온할지 모르지만, 그 바닥에 무수한 자갈과 경사가 없으면 물소리는 없다네. 시냇물이 맑고 리듬이 아름다운 것을 아는 이는 많지만, 폭포의 내리치는 물이 더 맑고 리듬이 고른것을 생각하는 이는 적다네. 자네는 그 소수(小數) 점을 찾아 자갈길을 걸으며 폭포수를 맞고 있는 것이니 어찌아프지 않겠는가. 진심으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으이. 밤(栗)은 복잡한 가시로 겉모습을 이루고 있지만 그 속에 껍질이 있으며, 또 보늬(속껍질)가 있고 나서 진짜 알맹이가 있는 것을 자네의 현재와 비교해 얘기해 주고 싶네 그려. J군. 지금 자네는 보늬의 과정까지 와 있으니 머지않아 토실토실 알밤 맛을 볼 날이 있을 걸세.
이 말 저 말 내 생각만 쓰다가 고개를 들어 서가를 둘러보니 펄벅 작《어머니》란 빛바랜 책이 내 눈에 들어와 이 책과 함께 편지를 동봉하네. 고시 공부에 필요한 책 보기에도 시간이 없고 힘겨워 지겨울 텐데 한가하게 소설책이나 보라느냐며 오해하지 말게나. 나의 숨겨진 뜻은, 가이 없는 어머니의 사랑과 고뇌를 조금이나마 느끼며 때로는 나태해지려고 하거나 권태로운 마음이 생기거들랑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자신을 채찍질하라는 내 욕심을 담아 보내니 그리 알게. 책장 뒷면을 열어보니 번역 출판한 지 20여 년이 되었더군. 책의종이는 일이십 년이 지나면 누렇게 변질되지만, 지구상에서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은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라는 것을 다시 말해 무엇 하겠나.
일 년 열두 달 중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칭해오는 유래를 잠시 생각해 보았네. 물론 싱그러운 신록과 만개한 아름다운 꽃들의 영향이 이유라면 이유이겠지. 하지만 나의 생각은 이렇다네.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아 기념하는 아름다운 날들이 있어서라고. 아니, 어머니의 품속 같은 온화한 사랑의 달이기 때문이 아닐까. 내 나이 이순(耳順)이 되어서야 어머니의 참 사랑을 피부로 느끼니, 인간의 지각은 어쩌면 이다지도 더딘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