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우리네 살림이 먹고 살기에 빠듯하고 버거웠던 시절에는‘왕후의 밥, 걸인의 찬’으로도 근근이 허기를메우고 달래던 때가 있었다. 국수말이 양푼에 여럿이서 머리 박고 목구멍으로 국수 가닥을 들이밀어 넣던때가 있기는 있었다.
그보다는 먹고 살기가 좀 나아졌던가 보다. 여름이당도하면 우리는 너른 모래사장 그 언저리 천변에 멍석 두어 장 펴놓은 만큼의 미루나무 그늘에서 어죽을끓이곤 했다. 예닐곱 명이 너끈히 먹고도 남을 양은냄비에다 고추장과 마늘, 파, 풋고추, 쌀 칠팔 홉에 국수 가락 한 뭉치를 수레에다 바리바리 실어서 천렵을가곤 하였다. 피라미를 튼실한 놈으로 열댓 마리쯤 마투리로 끌어내 펄펄 죽을 끓여 그것으로 영양 보충도하고 천둥벌거숭이로 문명에 멀찍이 비켜서서 원시적으로 살았다. 아마 그때 내 나이 열서너 살쯤이었을것이다.
그 즈음 천변 풍속에 변화가 생겼다. 우리 동네 구멍가게에 꼬실꼬실하고 입에 착착 감기는, 부숴 먹는라면이 아니라 끓여 먹는 라면이라는 것이 들어왔기때문이다. 라면은 우리의 주머니 사정을 더없이 황폐하게 만들었지만 우리가 찾던 바로 그 맛이었다. 새로운 입맛의 지평을 라면이 아주 거하게 열어준 셈이었다.
이후로 천렵을 가선 어죽에 늘상 라면을 넣게 되었다. 쌀알이 바닥에 눌러 붙지 않게 저어가며 달달 끓인 피라미 국물에 국수를 넣고 휘휘 저은 뒤 라면을뽀개 넣고 파, 마늘, 풋고추 듬뿍 넣어서 참 맛 나는 어 죽을 만들었다. 고슬고슬하고 찰랑찰랑한 곱슬 라면이 제일 먼저 입 안으로 후르륵 빨려 들어갔다.
지금도 그 짓을 그때 그 친구들을 만나면 하곤 한다. 그때의 그 맛을 나는 지금도 고층 아파트 소파에 걸터앉아서 근사하게 음미할 수도 있다.윤기 잘잘 흐르고 꼬실꼬실한 라면은 나의 천둥벌거숭이 시절에 아주 도도하게 입 안으로 들어왔었다. 오늘 중학생 딸아이에게 라면을 먹자고 성화를 해댔는데 사뭇 몸이 굼뜨다.
이제는 천변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천렵이래야 네 다리 짐승들의 살점을 사 가지고 와서 기름일랑 숯불에 쏙 빼서는 쌈빡하게 비치파라솔 밑에서 잘도 먹고 간다. 저 살점을 씹어야 뭐 좀 먹었다고 한다나. 당최 그 살점들이 아니면 힘을 쓸 수가 있다나, 없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