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가끔은 편지를 씁니다. 그동안 궁금하고 보고싶었던 친구에게 쓰기도 하고, 제가 글 지도를 하는아이들한테도 쓰지요. 이런 편지를 쓸 때는 오래전 추억 속으로 돌아가 별도 쳐다보며 커피도 한 잔 마시며 씁니다. 요즘은 빠른 이메일이 있지만 가끔은 이렇게 편지를 써야 왠지 속이 개운하다고나 할까요, 아니면건조한 일상에 촉촉한 단비를 맞은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요. 어떨 때는 새벽까지 편지를 쓰며 그동안 고마웠던 사람들과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 봅니다. 그렇게 편지를 쓰다보면 일상의 고단함이 금세 감사함으로 바뀌곤 합니다.
이렇게 쓴 편지는 붉은 배를 볼록 내민 우체통에 넣기도 하지만, 시간을 내어 우체국을 찾습니다. ‘우체국’하면 좋은 느낌들만 가득 떠오릅니다. 우체국 계단을 올라가며 나란히 놓인 화분에 담긴 꽃들에 눈을맞추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릅니다. 계절 따라 줄줄이 늘어선 꽃을 감상하기도 하고 더러는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우체국에 비치된 책을 보기도 합니다. 그렇게 편지를 쓰고 우체국에 가는 일은 어린 시절 소풍가는 것처럼 설렘과 기쁨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편지쓰기는 멈추지 못할 것 같습니다.
편지를 쓰고 우표를 붙이다 보면 꼭 생각나는 일이하나 있습니다. 23년 전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이것저것 알아보다 단청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림을 그렸던 저는 사찰에 단청을 할 때 물도 떠다주고, 붓도 빨아주면서 쉬운 부분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다른 일보다 수입이 좋았는데, 집을 멀리 떠나는 것과 아주 시골로 가는 것이라 조금은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여름에 시골로 가게 되었습니다. 며칠씩 일하면서 저는 밤이면 친구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런데 너무 시골이다 보니 우표를 팔지않거나 때로는 우체통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우표 붙이는 난에“친구야, 여기서는 우표를 구할 수가 없어 붙이지 못했다. 네가우표값을내라. 미안~”이라고 아주 작게 써서 보냈습니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른 후 그 친구랑 우연히 편지 얘기를 하다가“그때 우표를 붙이지 못했는데…”하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분명 우표가 붙여져 있었다.”고 말하지 뭡니까. 그러다 친구가 끝내 그 편지를 찾았고, 정말 내가 쓴 편지에는 우표가 떡 하니 붙어 있었습니다.
순간“아! ”하고 스쳐지나가는 게 있었습니다. 우표를 붙인 이는 그 편지를 꺼낸 집배원 아저씨나 우체국 관계자였을 것이란 사실이었습니다(1985년 여름, 충북 덕산에서 우표를 붙여주신 그 분에게 이 지면을 빌어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작은 우표 한 장이었지만 지금도 제 가슴에는사람 살아가는 정과 따스함이 우표 크기의 몇 천배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 밤은 참 순한 것 같습니다. 어디선가 좋은 꽃향기 실은 바람이 불어옵니다. 이럴 땐 저는 편지지를 준비합니다. 어쩌면 너무 좋은 분위기탓에 꼬박 밤을 새우면서 많은 편지를 쓰지 않을까 합니다. 여전히 바람이 참 좋은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