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여름휴가를 맞아 고향에 간 다음날, 엄마는 늘어지게 자고 있던 날 흔들어 깨웠다. 아침 일곱 시에 동네앞을 지나가는 군내버스를 타려면 일찍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군내버스에는 장에 가는 아주머니들로 북적거렸다. 평소에는 손님들이 별로 없지만 장날은 버스도 만원이라고 했다. 동강 장은 고향집에서 버스로 이십여 분 거리에 있다. 오랜만에 가보는 시골재래시장이었다. 어렸을 때는 엄마를 따라 자주 다녔으나 고향을 떠난 뒤로는 가기가 쉽지 않았다.
장은 많이 변해 있었지만 재래시장 특유의 분위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어 보였다. 시장 입구에는 수박을 잔뜩 실은 트럭과 참외며 복숭아 등을 팔고 있는과일장수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생선전, 포목전, 옷전, 야채가게, 잡화점 등이 있고 고깃간과 방앗간도 있었다.
장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르신들이었고시장을 보는 분들도 어르신이 많았다. 간혹 젊은 사람들도 볼 수 있었지만 시골장이라 그런지 연세 드신 분들이 훨씬 많았다. 엄마랑 함께 이곳저곳을 둘러보다보니 어린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솟아났다. 동강 장은 외갓집하고 가까워서 외갓집에 가는 날이면 우리는 장으로놀러가곤 했다. 외할머니는 집에서 두부를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았는데,장에 가면 할머니는 우리에게 맛있는 것들을 사주셨다. 팥죽을 사주는 날도 있었고, 엿이며 뻥튀기 등을 사주기도 했다. 할머니가 두부를 팔던 난전 옆에는 뻥튀기장수가 있었다.
뻥튀기를 튀기는 사람들은 부부였는데, 아내 되는 사람은 말이 약간 어눌하고 잘 웃어서 시장 사람들이‘방글이’라고 불렀다. 어른들이 그렇게부르다보니 아이들도 따라서“방글아, 방글아”하다 어른들께 혼이 나기도 했다. 뻥튀기 부부는 성실하고 정이 많았다. 아이들이 둘러서서 입맛을 다시고 있으면 바가지에 가득 튀긴 옥수수를 건네주기도 했다.
할머니는 그런 뻥튀기 부부가 예뻐 보였던지 두부가 남는 날이면‘방글이’아줌마 손을 꼭 잡고 두부를 건네주었다. 그러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던‘방글이’아줌마는 꼭 어린아이처럼 순수했다. 외할머니가 자리를 잡고 있었던 곳을 지나가자 문득 외할머니와 뻥튀기 부부가 무척 보고 싶었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돌아가신 지 오래되었고, 장 어디에서도 뻥튀기부부는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세월이 많이 흐른 탓이다.
엄마랑 장을 보고 군내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 앉아 지나간 추억을 더듬는 동안 어린 시절의 내가 시장 안을 뛰어다니며 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들어 있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재래시장이 앞으로도 계속 살아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