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천사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직장생활을 할 때 정자언니를 만났습니다. 당시에 저는 작은 회사의 경리로 근무하던 중이었고, 정자언니는 전자부품을 조립하는 생산직 사원이었습니다.
언니는 불행하게도 뇌성마비를 안고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중증은 아니었고 비교적 경증 환자에속하는 편이라 했지요. 사실 처음엔 그런 언니가 가엾게 느껴졌어요. 구부러져 펴지지 않는 손가락으로 자그마한 전자부품들을 집어 작은 사각의 회로 판에 정확히 꽂는 게 제겐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그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신의 임무를 묵묵히 완수하는 듬직한 그녀였어요.
고향을 떠나 객지생활을 하는데다 쌍둥이 동생까지데리고 있는 제가 언니에겐 안쓰럽게 비쳐졌나 봅니다. 당시 동생들이 고등학생일 때라 저의 손을 많이필요로 하던 때였거든요. 아침에 동생들 도시락을 싸느라 자주 지각을 해 사장님께 혼나는 제가 언니 눈에는 안 돼 보였나 봐요. 어느 날, 불편한 몸으로 커다란보따리를 들고 출근을 했더군요. 그리곤 퇴근길에 살며시 제게 보따리를 들려주는데, 그 안에 든 건 언니의 정성이 가득 담긴밑반찬들이었어요. 어머니께 사정을 말씀 드리고 늦은 밤까지 모녀가 밑반찬을 만드셨다는 거였지요.
그 후 순전히 언니의 성화로 인해 교회에 나가게 되었지요. 그리고 교회에 출석을 하면서부터 언니의 진가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지요. 청년회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은 물론, 틈틈이 봉사까지 하고 있는 언니였습니다. 여름과 겨울마다 열리는 성경학교 아이들을 위해 학원까지 다니며 레크리에이션이나 마술까지 배우고 있는 언니였지요.
처음으로 언니를 따라 목욕봉사를 간 날의 일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자그마한 체구에 몸도 불편한 언니를 처음 보신 노인들께선 대놓고 타박까지 하시더군요. 오히려 봉사를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냐는 말씀이었지요. 그러나 언니는 불쾌한 내색을 보이지 않고 소임을 다하더군요. 아기처럼 자그마한 손, 잘 펴지지 않는 손가락으로 열과 성을 다해 노인들의야윈 몸에 비누칠을 하고 쓱싹쓱싹 타월에 힘을 가해 때를 미는 언니의모습,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지금도 어느 한 곳에서 열심히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을 언니의 가냘픈 어깨 위에 풍성한 구름송이 같은 날개옷을 살며시 얹어 봅니다. 정자언니, 당신은 내가 만난 최초의 천사였습니다. ![](/upload/post_content_logo[174].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