起는 세상 문을 여는 시작이고 사계의 봄이다
한 줄의 도입 부문이 한 편의 글을 함축하여 독자에게 읽고 싶은 충동을 자아내듯, 인생의 起또한 미래의 꿈나무가 될 떡잎의 품종을 설계하여 씨를 뿌린다. 起는 부모나 주변 환경의 그늘에서 언행을 배우고 인성(人性)이 채워지면서 성장한다. 타인에게 의존만 하던 起가 세상과 충돌하면서 견문을 넓히고 학식과 이상을 키워 목표를 설정하고 承에 입문한다. 사계의 햇살은 동녘에서 출렁인다.
承은 자기 영토를 넓혀가는 성취이고 사계의 여름이다
起·承·轉·結의 구간을 획일적으로 정할 수는 없다. 개개인이 추구하는 목표나 환경, 생활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 직장을 얻고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자가발전하며 기반을 쌓고 전진하는 과정을 承의 구간으로 어림한다. 이 과정은 내면보다 외면과 체면을 중시하고, 자신과 가정을 위해 앞을 보고 달린다.
承이 수필 한 편의 줄거리라면, 인생의 承은 성숙한 체력과 능력을 바탕으로 이상과 목표를 펼쳐나가는 인생의 절정기라 할 수 있다. 承의 항해에는 명예·지위·인격·부, 그리고 가정과 대인관계가 동승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 이는 황무지를 개간하여 존경과 가치를 산출하고, 어떤 이는 잡초 밭에서 쭉정이를 낳고 시름에 젖는다. 承이 펼치는 의지와 노력의 강도는 한 인생, 한 작품의 우열을 가리는 요체가 된다. 사계의 시침은 녹음방초에서 산수를 한다.
轉은 성취한 산물을 여과하는 과정이고 사계의 가을이다
나는 이 구간을 인생의 참맛을 깨닫는 정중동(靜中動)의 과정으로 본다. 제복을 벗고 단풍이 물든 한가한 오솔길에서 承이 걸어온 현주소를 검증한다. 과불급이나 모래성을 쌓지는 안했는지, 엉뚱한 곳에 등대를 세우지 안했는지 살피면서, 탐을 삭히고 겸손을 익힌다.
시문의 轉이, 거친 글밭을 퇴고하면서 옥토를 만드는 과정이라면, 인생의 轉은 성취와 비움으로 완만한 조화를 이루고, 거울에 비친 외면보다 내시경에 나타난 내면을 밝혀 옆과 뒤를 바라보며 포장을 벗긴다. 이 항해에는 사유와 자성(自省)이 동승하고 자기 인생의 회고록이 첨부된다. 사계의 푸른 잎은 붉은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結은 비우고 정리하는 마무리이고 사계의 겨울이다
한 편의 글은 結로 태어나고, 한 인생은 結로 사라진다. 글에서 結은 전체 문장을 한 줌으로 묶고 탈고하면 한 편의 시문이 탄생 한다. 인생의 結은 한동안 轉과 동거하며 텅 빈 들녘에서 지난날을 회상하며, 起·承·轉의 궤적을 무형의 자서전에 새기고‘끝과 시작은 연리지(連理枝)’라는 의미를 안고 結의 대미를 장식한다. 結의 구간은 1년 안쪽일 수도 있고, 10년 밖일수도 있다.
벌거벗은 겨울나무는 하얀 휴식 속에서 또 하나의 사계를 그린다.
나는 지금 起· 承· 轉· 結중 어느 곳에 머물러 있는가
당해 구간의 주자(走者)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특정 구간만을 유별난 한 송이의 장미꽃으로 치장하여 흐름의 균형을 깨지는 않는지. 모두가 한 아름의 안개꽃으로 필 때 전체가 아름답다. 구간마다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다. 인생도, 글도,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마부작침(磨斧作針)의 심경으로 현주소에 정열을 쏟을 때 훌륭한 인생, 좋은 작품이 된다.
起·承·轉·結은 시문, 인생, 사계의 순리가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