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유수라 했던가.
열한 달의 동료 주자들을 다 보내고 홀로 정해년(丁亥年)의 끝자락을 지키는 12월의 모습이 애잔하다. 마지막 주자의 부담일까.
흘러간 동료들의 궤적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긴다.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종점에서 본분(本分)에 더하여 풀어야 할 과제들이 고개를 든다. 미완의 마무리, 각종 모임과 행사, 한 해의 결산과 새해의 계획…. 마음도 발걸음도 동분서주하는 12월, 달랑 한 장남은 캘린더가 어느새 검게 물든다. 12월에 수놓을 마무리의 미학을 그려본다.
첫째, 관용과 화해로 상처 난 감정을 치유해야겠다.
‘우리’는 수많은‘나’의모임이다.‘ 나’없이‘우리’는존재할수없고,‘ 우리’없이‘나’가 존재할 수 없는 공생의 축 안에서만 나는 독립성을 갖는다. 올해도 많은 사람들과 관계성을 유지하면서 종점에 이르렀다.
본의든 오해든, 크던 작던‘나’와‘타’의 관계로 인하여 서로에게 빚이 침묵속에 묻혀 있다. 은혜와 상처가 감사와 반목으로 얼룩져 마음 한 구석에 똬리를 튼 나에게“은혜는 소중히 간직하고 상처는 과감하게 도려내라.”고 충언한다.
상처는‘나’와‘타’의 서로에게 무거운 짐이다. 이 짐을 지고 새해까지 갈수는 없지 않은가. 상처를 오래 묻어두면 건강도 사람도 잃는다. 시시비비에 앞서 관용의 손길을 내밀어 먼저 화해를 청하는 것은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겸손이고 덕을 쌓는 지혜다. 관용은 감정의 응어리를 녹이는 묘약이고, 얽힌 매듭을 풀어주는 묘리(妙理)이고, 낮춰서 높아지는 기술이다.
둘째, 끝이 깔끔해야 한다.
황혼녘에서 흠집 난 지난 달들의 흔적을 어루만지며 사유(思惟)에 잠긴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최후의 승리는 끝에서 미소 짓는다. 끝은 그 해 농사의 결산서이고 또 하나의 시작으로 이어지는 씨앗이다. 겨울은 사계절의 끝이지만 그 속에 새봄의 씨앗을 잉태한다. 끝이 아름다울 때 지난날의 허물은 묻히고, 끝이 추하면 지난 날의 성공적인 삶마저도 휩쓸려 오점으로 남는다. 12월이 소중한 이유다. 지난달들의 생활상이 실망스러워도 그들의 공과가 도로(徒)되지 않도록 후회에 앞서 반성하고 보완하여 결실을 맺어야 한다.
시종일관(始終一貫), 100%의 완벽을 기대하는 것은 과욕이다. 계획한 일이 의도에 어긋났다 하여
종반에 포기하는 것은 변명이고 완주하는 꼴찌보다 볼썽사납다. 삶의 참모습은 반성이고 가능성이고
완벽을 향한 새로운 도전이 아닐까. 현주소의 여건에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최선의 노력으로 한
해의 계획한 일을 꼼꼼히 살피고 깔끔하게 정리하는 자세가 12월의 모습이어야 한다.
셋째, 분명한 목표를 세워 새해를 준비해야겠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자신의 그릇 크기를 알고 일정량을 담아야 한다.
새해에 기필코 이루어야 할 과제, 보강하거나 고쳐야 할 약점을 면밀히 분석하여 12월에 수놓을 색실(色絲)을 우선순위로 선발해야 한다.
지난 수년간 세모 때마다 지나친 욕심으로 계획이나 다짐을 남발했던 과제 중, 끝가지 만족하게 목표물의 과녁을 맞힌 화살이 몇이나 되든가. 더 이상 자가당착에 빠져서는 안 된다. 첨가보다 삭제가 나무의 중심을 올곧게 하지 않던가. 과욕이 불러온 대실(大失)을 반면교사로 삼아 용두사미가 연례행사의 메뉴가 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
목표는 단순하고 명확해야 한다. 실천 가능한 능력의 범위 안에서 필요불가결한 최소 몇 개만의 목표를 선정하여 끝까지 달릴 수 있도록 각고정려(刻苦精勵)해야 한다. 실천은 힘이라기보다 인내로 얻어진다.
관용과 화해, 깔끔한 마무리, 분명한 목표는 12월의 의무이고 권리다.
수적석천((水滴石穿)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지속하면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는 사자성어를 가슴에 품고 힘차게 달려야겠다.
‘12월의 미학’은 독백 연기가 아닌‘우리’와‘나’의 공연이고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 12월의 황혼을 유난히 붉게 물들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