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를 막론하고 옛사람들의 문화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렀다. 문화 수준이 높은 나라에서 낮은 나라로, 상류층에서 점차 하층민으로 말이다. 놀이, 유희 거리 도마찬 가지이다. 궁중과 귀족, 양반층에서 시작된 놀이 가시 간이 감에 따라 점차 평민 계층에까지 퍼지고 온 백성이 즐기는 놀이가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궁중의 놀이가 양반계층으로 퍼져나갔는데, 백성들도 대궐의 임금님과 왕비님은 어떻게 노실까 궁금했을 것이다. 구중궁궐 속에 숨겨진 유희의 모습은 어떠할지 살펴본다.
투호, 마음의 올바름을 보다
궁중에서 하는 놀이 중 일반에 가장 많이 알려졌던 것은 바로 투호(投壺) 놀이다. 투호는 일정한 거리에 놓인 항아리 속에 청·홍 두 편이 화살을 던져 넣어 승부를 가리는 놀이인데, 그 유래는 중국 당나라 시대로 알려져 있다. <북사( 史)>의‘백제전’과 <신당서(新唐書)>의‘고구려전’에 이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존재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사마광의 <투 호격 범>에 따르면 “투호병은 입지름이 3치(寸)이고, 귀의 입지름은 1 치이며 높이는 1자(尺)이다. 병 속은 팥으로 채운다. 병은 던지는 이의 앉을자리에서 2살(矢) 반쯤 되는 거리에 놓고, 살은 1개를 사용하며 그 길이는 2자 4치이다.”라고 설명한다. 즉, 병으로부터 화살 길이의 2배 반 정도 되는 거리에서 화살을 병 또는 귀구멍에 화살을 꽂힘으로써 점수를 정하였다. 던지는 이는 양쪽 어깨에 균형을 취해야 하고, 어깨 가기 울어지지 않게 주의해야만 살을정확하게던질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 에도 투호에 대한 언급이 무려 147번이나 될 만큼 이 놀이는 궁중놀이 중 가장 널리 그리고 자주 애용되었던 듯하다. 그러나 나라의 정사를 보시는 임금님이 너무 노는 것만 밝히는 것이 아니었나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52권에 나온 내용을 잠깐 소개한다.
때는 세종 13년(1431 신해, 명宣德 6년) 6월 24일이었다. 세종께서는 장차 문종임 금이 되실 세자의 약한 심성을 걱정하셨나 보다. 신하들에게 이르시기를 “세자는 깊은 궁중에서 자라나서 보고 들은 바가 없기 때문에 사람을 대하면 얼굴빛이 붉어지고 행동이 수삽(羞澁) 하니, 지금부터 종친들이 만약 투호하고 활쏘기를 하거든 세자로 하여금 입시하게 하여 사람을 접촉하고 진퇴(進退)하는 의식을 익혀 보게 함이 어떨까.”하니, 정초·윤회 등은 “위에서 하는 바는 예(禮)가아니면움직이지 않으므로, 세자로 하여금 입시하여 관감(觀感) 하게 함이 가하옵니다.”하고, 신장·정인지 등은 “세자가 이제 바야흐로 학문에 전심하는데 잡된 일을 익히고 보는 것은 옳지못합니다.”했는데, 세종임금이 이르시기를 “투호는 옛사람이 심술(心術)의 사정(邪正)을 보던 것이니 참예하는것이가하나, 과녁에 활 쏘는 것은 보지 못하게 하라.”
그렇다. 세종대왕의 말씀처럼 투호는 옛사람들이 심술의 사정을 보던, 즉 마음의 올바름을 살피던 인격도야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성군으로 세종대왕에 버금가는 임금으로 꼽히는 성종 임금 역시 투호에 대해서 한 말씀을 남기셨는데, <조선왕조실록> 97권에 등장한다. 성종 9년(1478 무술, 명成化 14년)에 성종 임금은 경연에 나아가서 이렇게 말씀했다. “예전에 투호하는 예식이 있었는데, 지금은어찌하여행하지 아니하는가? … (중략) … 투호는 희롱하고 놀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기를 구하는 것이다.”
이후에도 성종 임금은 스무 차례에 걸쳐 투호놀이를 장려하는 내용이 실록에 소개되고 있다. 이렇듯 선조들은 여가를 즐기는 놀이 하나에도 마음과 몸을 다스리며 삿됨이 없도록 경계하셨다. 놀이는 마음을 흩뜨리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 속에 하나로 모아서 삶의 원천이 되도록 한건 전한 유희였다.
유객주, 손을 머무르게 할만한 놀이
경중을 막론하고 나랏일의 결정이 모이는 궁궐에는 늘수많은 신하 와선 비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법이다. 그 많은 손님의 기다리는 지루함을 덜어주기 위한 배려로서 궁뿐만 아니라 관청과 민가에까지 퍼졌던 놀이가 있다. 유객주( 客珠), 말 그대로 손을 머무르게 하는 구슬이다. 유객 주는 막대기에 세 개의 구멍을 뚫고 구슬이나 고리를 꿴 끈을 구멍에 끼운 것이다. 이것을 갖고 한쪽 편 구슬을 다른 쪽으로 옮기는 것이데, 매듭에 걸려 있는 구슬을 옮기려다 보면 놀이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자 연기 다리는 시간이 언제 가는지 모르게 지루함을 없앴던 것이다.
또 유객주를 처음 대한사람들에게는 매듭을 사이에 둔 두 개의 구슬을 한쪽으로 모으는 놀이로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결국은 넘어가는 길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선조들의 유연한 사고력을 기르게 한 우리 전통의 퍼즐이었던 셈이다. 성격이 급한 사람들도 다과와 함께 내놓던 유객주를 받으면, 어쩔 수 없이 인내심을 갖고 놀이에 심취해서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고 한다. 이 얼마나 여유롭고 지혜로운 문화인가? 우리 민족의 두뇌는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것으로 정평이나 있다지만, 그것 은하 루아 침 에이 루어진 쾌거가 아니다. 이렇게 조상 대대로 이어진 유객주와 같은 놀이 문화 덕이다. 자투리 시간이라도 머리와 손을 쓰면서 인내심을 기르고 사고력을 높였던 까닭인 것이다. 또 짧은 시간이라도 기다리는 손님을 위해 배려하는 마음까지 담긴 데에 와서는 단순한 놀이 문화의 차원을 넘어선 예의 경지가 느껴지지 않는가!
칠교, 지혜의 판을 펴라
유객주와 함께 손님에게 내어놓은 놀이로 유객판(留客板) 또는 유객도(留客圖)라고 불리던 놀이가 있으니, 바로 칠교판(七巧板)이다. 이 놀이는 특히 궁중의 여인네들과 왕자, 공주님들 사이에 유행하던 놀이였다고 한다.
궁궐에서 왕비를 이르는 ‘중전마마’라는 호칭도 실은‘중궁전’을 줄인 말이었다. 왕실 내명부를 책임지던 왕비의 권세에도 불구하고 거처에서 벗어날 수 없는 답답한 시간들을 벗해주던 놀이가 바로 칠교인데, 이것 역시 일종의 퍼즐이다. 정사각형을 삼각형과 사각형 등 7개로 쪼개 어이를개구리나새등다양한 사물의 형태로 만드는 놀이인데, <칠교 해(七巧解)>라는 서적에는 칠교놀이의 방법과 함께 칠교판으로 만들 수 있는 300여 종의 모양이 수록돼있어서, 우리 선조들이 오래전부터 이 놀이를 즐겼음을 알 수 있다. 칠교는 약 5,000년 전 중국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양사람들 도탱 그램(tangram)이라고 불리는 칠교놀이를 즐겼는데, 미국의 작가 애드가 앨런 포는 탱그램을 광적으로 즐긴 마니아로 유명하고, 프랑스의 황제나 폴레 옹은 세인트 헬레나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이칠교, 탱그램으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일곱 가지 조각으로 얼마나 많은 모양을 만들겠는가 하겠지만, 수학적으로 칠교를 가지고 만들 수 있는 배열의 숫자는 크다. 일렬로 배열할 경우에만 가능한가 짓 수는 모두 7 ×6 ×5 ×4 ×3 ×2 ×1=5,040가지인데, 공간적으로 의미 있는 모양의 배합은 현재 약 1,000가지의 배열이 알려져 있다고 한다.
갖가지 모양의 칠교판을 늘어놓으려 궁리를 하다 보면 지혜를 기를 수 있다 하여 ‘지혜의 판’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래서 이 칠교놀이는 최근 어린이들의 두뇌를 계발시켜주는 놀이기구로도 각광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우리 주변에서도 칠교의 전통문화를 찾아볼 수 있다. 서울 지하철 김포공항역에 내리면 벽화가 성완경 씨가 디자인했다는 거대한 칠교판을 구경할 수 있는데, 정사각형 모양의 칠교판은 큰 직각 이등변 삼각형 2개, 작은 직각 이등변 삼각형 2개, 중간 크기의 직각 이등변 삼각형 1개, 작은 정사각형 1개, 평행사변형 1개 등 모두 7조각의 도형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 작품의 제목은‘직녀가 꿈에서 본 그림’이다. 옛 궁중의 여인들이 지혜의 판을 펴고 놀던 꿈과 이상의 세계를 만나본 듯 반갑기 그지없다. 전통놀이 칠교는 지혜의 판이다. 그 판 위에 서면 우리의 마음도 세상사의 무게를 내려놓고 다시금 사고와 즐거움의 힘을 얻는다.
문화는 놀이에서 출발한다. 이미 지난 세기초에 네덜란드의 역사가 호이징가는 그의 저서 <호모루덴스>(유희하는 인간)에서 모든 문화는 놀이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호이징가가 아니더라도 한나라의 문화 수준이 얼마나 높은 지는 그 나라의 놀이문화를 살펴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한나라한시대의 문화척도는 다름 아닌 ‘놀이’인 것이다.
마음 다스리는 지혜와 함께 예가 살아있는 우리의 ‘전통 궁중놀이’를 이제는 모든 국민이 함께 즐겼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지혜의 판 위에 올라함께 놀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