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으로 5월 5일 단오절(端午節)은 1년 중 양기가 가장 충만한 태양의 날이다. 예로부터 동양의 전통 사상에서는 홀수를 양의 수, 짝수를 음의 수라고 여겼고 양의 숫자인 홀수는 길하고 활기가 있다고 선호했다. 그래서인지 홀수가 겹치는 날은 어김없이 명절이다. 설날인 1월 1일부터, 3월 3일은 삼짇날, 5월 5일은 단오, 7월 7일은 칠석, 9월 9일은 중구(중양절)로 기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단오는 양기의 활력이 넘치는 홀수 중에서도 가운데 숫자인 오가 두 번이나 중첩되어 있기에 1년 중에 가장 활력이 넘치는 생기의 날이다. 오(五)가 중첩되었다고 하여 중오절(重五節)이라고도 불리고, 단오는 해가 머리 정수리에 오는 날이라 하여 단양(端陽) 또는 천중절(天中節)이라고도 하는데, 정수리 바로 위에 있는 태양을 뜻하는 것이다. 농경민족에게서 열매를 맺게 하는 원동력인 태양을 중히 여기고 기리는 마음에서 여름 햇살이 정수리에 내리 쬐이는 날을 명절로 삼게 된 것이다. 단오절은 순우리말로 수릿날이다.‘ 수리’는 신·높은곳·꼭대기를 뜻하는데, 우리나라 옛 풍습을 기록한 중국 진나라 때 역사서 <삼국지> 위지 삼한전의 마한 편에 주민들이 파종을 마친 뒤 하늘에 풍작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춤과 음주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학자들은 바로 이것이 우리 민족의 단오절 풍습의 시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렇게 까마득한 옛날부터 양기와 활력 충만한 단오는 아이러니하게도 여인들의 날이었다. 단오절 아침이 밝으면 여인네들은‘단오장(端午粧)’이라 하여 나쁜 귀신을 쫓는다는 주술적인 의미에서 공들여 치장을 했다. 아침 해가 솟기 전 창포나 상추에 맺힌 이슬을 모아 분을 개 얼굴에 바르고 창포물에 미역을 감고, 창포 뿌리를 잘라서는 비녀를 만들어 꽂았다. 단장을 마치면 1년 중 가장 화려한 여인네의 외출이 시작되었다.
춘향의 꿈, 창공을 차오르다!
‘오월이라 단오 날은 천중가절 아니냐
수양청청 버들 숲에 꾀꼬리는 노래하네
후여넝층 버들가지 저 가지를 툭툭 차자
너울너울 외씨 같은 두 발길로 반공중에 노닌다…’
- <서도소리> 중에서
단오 하면 그네뛰기의 날이요, 그네 하면 또 춘향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한 번이라도 한복을 입고 그네를 뛰어본 사람이라면, 치맛자락을 펄럭이지 않고 얌전하게 그네를 타는 일은 애초부터 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속치마를 잘 갖춰 입지 않으면 볼썽사납기 일쑤이다.
그네는 높이 솟구치고 전후로 왕복하는 놀이의 성격상 넓은 공간과 큰 나무를 필요로 하기에 집안 뜰에 숨어서 할 수 있는 놀이가 아니라 터진 공간에서 만인이 보는 가운데 역동적인 몸짓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꼭꼭 숨어서 담장 안에만 숨어있던 여인들의 치맛자락이 창공에 휘날리는 모습을 상상하면 자못 통쾌하기까지 하다. 우리네 여인들은 단오만큼은 신나게 하늘을 날며 자유를 만
끽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자유와 생기가 넘치는 춘향이의 그네였기에, 이몽룡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유교 전통의 억압과 굴레 속에 있던 조선조 여인들에게 있어‘그네뛰기’는 그야말로 숨통을 트여주었던 가장 신나는 놀이였다.
그네뛰기의 역사는 기록을 통해 볼 때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고려시대 고종 때의 <한림별곡(翰林別曲)>에 그네 뛰는 모습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처음에는 왕궁을 중심으로 한 귀족사회에서도 호화롭게 성행하던 놀이였지만, 조선시대로 오면서 주로 서민층의 여인들에게서 많이 성행된 놀이였다. 물론 그네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즐기는 놀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처녀들이 타는‘댕기그네’, 남자들이 타는‘장정그네’, 어린아이들을 위한 ‘떼떼그네’, 두 사람이 타는‘쌍그네’이처럼 다양한 그네놀이를 했었다. 그러나 태양이 한껏 그 위세를 뽐내는 이 계절, 마을에서 가장 높은 나무에 매단 그네는 역시 여인의 차지가 되지 않을까?
재미있는 것은 여성의 억압이 심한 인도에서도 그네가 여성들의 놀이로 알려졌는데, 힌두교 전통에 보면 태양의 힘이 가장 약해지는 동짓날에 생식력이 왕성한 여인으로 하여금 그네를 뛰게 해서 그 여인이 태양에 가깝게 접근하면 태양의 힘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믿었다는 것이다.
널뛰기, 세상을 향한 규방의 도약!
전통적으로 우리 여인네들이 즐겼던 놀이로 그네와 함께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널뛰기’이다. ‘도판희’라고도 하는데, 뜰안 담장 곁이나 마당에 짚이나 가마니로 널밥을 만들어 놓고 그 위에 기다란 널판을 얹어놓은 다음 두 사람이 널의 양편에 각각 올라서서 널을 뛰는 놀이다.
그네는 모든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뛰어야 했던 까닭에 사대부가 지체 높은 양반집 규수와 마님들은 그림의 떡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널뛰기는 명절이면 마당 앞에 펼쳐놓고 부녀자들이 마음 놓고 즐기는 놀이였다.
유득공이 쓴 <경도잡기(京都雜記)>에는 널뛰기가 초판희(超板戱)로 표현되어있다. “정월초 하루 마을 부녀자들이 흰 널판을 짚단 위에 걸쳐놓고, 양쪽 끝에 나눠 서서 세게 굴러 뛰면 대여섯 자까지 올라간다. 그때 패물이 쟁쟁 울리거나 지쳐서 나가떨어지는 것을 즐기니 이것을 널뛰기라고 한다.” 이러한 널뛰기 놀이의 신나는 재미를 노래한 민요 한 토막을 들어보자.
‘허누자 척실루 네 머리 흔~들 내 다리 삽작
허누자 척실루 네 댕기 팔~랑 내 치마 낭~넉
허누자 척실루 네 눈이 휘~휘 내 발이 알~알’
녹의홍상(綠衣紅裳)의 어여쁜 처녀들이 모여 널뛰는 모습은 젊음의 약동 그 자체였다. 평소 외출할 기회가 없었던 규방의 규수들도 이때만큼은 높이 뛰어올라 바깥 세계를 구경하였던 것이다.
여성들이 즐겼던 우리 전통놀이를 살펴보면서 억압된 자유를 한바탕 풀어내며 공중을 향해 한껏 뛰어오르는 그네와 널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실은 전통적으로 한민족의 여성들은 매우 활달한 기상을 지닌 이들이었다. 널뛰기만 해도 고려 이전부터 전승되어 온 것이라 추측되고 있는데, 고려시대 기록에는 여성들이 매우 활발하여 기마나 격구 같은 경기를 했다는 내용이 남아있을 정도이다. 널뛰기 역시 그러한 시대상 속에서 소녀들이 몸을 단련하고 씩씩한 기상을 길러온 놀이로 출발했을 것이다.
이렇듯 여인들의 놀이에는 그 어떤 남정네의 놀이보다 큰 추진력과 비상이 들어있지 않은가? 2000년대는 여성들의 능력이 빛을 발하는 시대라고들 한다. 높이 높이 하늘 높이 오르고자 한 춘향의 꿈이 많은 여인들의 삶 속에서 이뤄지기를 기대해본다. 학창시절 배운 노랫가락이 자꾸만 귓전을 맴돈다.‘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 나가 구름 속에 나부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