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은박이 초록 모자를 머리에 눌러쓰고 나란히 줄지어선키작은요구르트 병들, 꼬맹이 아이들도 단숨에 먹어 치울 수 있었던 호리병 모양의 미니 코카콜라,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던 바나나 우유….
자욱한 수증기와 후끈 달아오른 열기 속에서 한 시간 이상을 있다 보면 차가운 음료수 한 모금이 무엇보다 간절하긴 하지만, 으레 목욕탕에서 파는 음료수는 일반 가게보다 비싸다는 생각에 냉큼 사먹기가 크나큰 사치인 것처럼 느껴지던 그때. 엄마는 두 살 어린 남동생과 나를 얼른 씻기고는, 분주히 또 당신 몸의 묵은 때를 씻어내셨다.
목마르다고 칭얼대는 우리에게 큰 맘 쓰고 사주신 콜라 한 병을 사이좋게 나눠 먹으며, 우리 남매는 엄마 곁에서 얌전히 앉아 있곤 했었다. 그때 마셨던 콜라가 얼마나 시원하고 짜릿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시원스럽게 옆 아줌마의 등을 밀어주시던 엄마의 젊고 건강한 모습은 아직도 뽀얀 목욕탕 안 연기 속의 도드라진 풍경처럼 선명하기만하다.
중고등학교 시절, 일요일 새벽 6시면 목욕탕에 가자고 어김없이 나를 깨우던 우리 엄마. 어두컴컴하고 추운 새벽길을 걸어 목욕탕에 가는 것도 고역이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근처 교회에 다니는 초등학교 동창 남자 아이와 마주칠 때의 그 당혹감과 민망함이란…!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긴 샴푸통과 비누, 빨간 때수건, 그리고 커다란 도끼빗을 수건으로 잘 덮어 교묘하게 위장을 한다고 해도, 채 마르지 않은 머리에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은 목욕탕에 다녀왔다는 것을 금방 눈치 챌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엄마가 직장에 다니면서부터 일요일 새벽의 목욕탕을 고집하셨던 같다. 하루에 두 개씩 싸가는 수험생 딸의 도시락에 챙겨줄 일주일 치 밑반찬을 만들고, 빨래며 청소며 한 주간 쌓인 집안일을 하기엔 일요일 하루가 너무 짧았던 엄마. 못된 딸의 투덜거림도 묵묵히 참아내고 앞서 걸어가시던 엄마의 두 어깨가 참으로 무거웠다는 것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얼마 전, 아주 오랜만에 엄마와 함께 목욕탕에 갔다. 하지만 엄마는 얼마 못 가 현기증이 난다며 탕에도 못 들어가고, 결국 탈의실 한구석에서 한동안 누워계시기까지 했다. 대학에 들어가고 직장생활을 하고 또 결혼을 하면서 난 엄마의 울타리를 점점 벗어났고, 그에 따라 엄마를 따라 목욕탕에 가는 일도 드물어졌다. 십여 년의 시간을 훌쩍 넘어 마주한 엄마의 약해진 모습이, 사우나니 찜질방이니 하며 그 이름과 모양새가 변해버린 목욕탕만큼이나 낯설기만 하다. 이젠 내 등을 밀어주시던 엄마 차례가 끝나고, 엄마의 등뿐 아니라 몸 구석구석에 쌓인 세월의 고단함을 시원스럽게 닦아드릴 내 차례가 되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