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아이를 가졌을 때 꿈을 많이 꿨어요. 학교에 교복 입고 갔는데 내 책상이 없고 친구들이 너 학교 그만뒀는데 왜 왔냐고, 그래서 깨면 막 울고 그랬어요….”눈물을 글썽인 채 그녀의 말은 계속됐다.
“그때 수학여행 1주일 전에 학교를 그만뒀죠. 여고 시절 친구들과 평생 추억에 남을 멋진 수학여행을 가고 싶었는데 그 꿈을 이룰 수 없었어요. 그게 너무나 한이 됐는데 오늘에야 소원을 풀었네요.”
여고 수학여행 이틀째. 우리 학교 선배라는 곱상하게 생긴 삼십대 초반의 아줌마가 저녁‘자유의 밤’시간에 지난날을 회상했다. 부모의 이혼으로 가출을 거듭했던 여고 2학년 때 뜻하지 않은 임신으로 고민하다가 결국은 혼자서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주변에서 반대도 많았지만 결국 출산을 했단다.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어른들이 혀를 끌끌 차면서‘쯔쯧, 저게 아이 엄마야? 에구 어린 게 애를 어떻게 키우노! 아이 엄마가 옷차림이 왜 저러나. 아이는 잘 키울까 몰라’주변에서 이렇게 대놓고 손가락질 할 때마다 아기를 잘 키워서 보란 듯이 데려다 보여줄 거라고 다짐했어요.”그녀는 미혼모. 학교를 도중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꿈 많던 여고시절, 수학여행 직전에 학교를 자퇴하며 그것이 한이 됐단다. 아이를 키우면서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방송대학을 다니고, 지금은 공무원이 돼서 알찬 가정을 꾸리고 잘 살고 있는데, 어느 날 문득 그때 못간 수학여행이 너무나 가고 싶어 우리 뒤를‘쫓아’왔다고 말했다.
“저기 계신 잘생기신 김명환 선생님, 그때 저희 담임선생님이셨어요. 제가 애기 키울 때 분유 값도 많이 보태주셔서 그 은혜는 평생 간직할 거예요. 지금도 자상하시죠?”
다행히 그때 담임이셨던 은사님이 아직도 계시길래 용기를 냈다며 웃었다. 오늘 후배들을 만나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해주고 인생에서 한 번의 실수가 자칫 험난한 역정의 길을 걷게 만든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 찾아왔노라고 말을 맺었다.
장내가 떠나갈듯한 박수가 터져나왔다. “선배님!” “선배님!” “선배님!” 누군가의 선창에 맞춰 후배들의 연호가 터져 나오자 그녀는 쑥스러운 듯 얼굴을 가렸다. 붉은 홍조 띤 보조개가 참 예쁜 얼굴이었다.
“우리 진희 학생은 공부 잘하고 성실한 범생이었어요. 똑순이 같은….”
담임이셨다는 김명환 선생님의 환영사가 수학여행지 경주의 맑은 하늘에 아름답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