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한 사람
며칠 전, 소포가 와서 뜯어보니 휴대용 국어사진 한 권과 함께 자필로 쓴 편지가 동봉되어 있었습니다. 소포를 보내주신 분은 뜻밖에도 선생님이셨지요. 푸른 잉크로 꾹꾹 정성 들여 써주신 편지에는 가을하늘보다 더 넓고 푸른 선생님의 사랑이 담겨 있는 듯했습니다.
지난여름 실시한 중간고사에서 난생 처음으로 반에서 일등을 했습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늦깎이 고등학생의 길을 가기까지 성심껏 도와주셨던 선생님이 안 계셨더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입니다. 얼마나 기쁘던지 그 순간만은 주부라는 사실도 잊은 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즉시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지요. 전화를 받으신 선생님께서도 저처럼 기뻐하시며 어쩔 줄을 몰라 하셨습니다. 당신 따님이 일등 했을 때보다 더 기쁘다고, 넌 할 줄 알았다고 용기를 북돋워 주시는데 그만 참고 있던 눈물을 쏟고야 말았습니다.
이년 전 겨울, 아는 선배언니의 도움으로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입학원서를 내는 순간까지 저는 과연 제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지요. 그때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드렸습니다. 이러이러한데 과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선생님께서 앞으로의 삶에 나침반이 되어주신다면 그 뜻 인생의 지침으로 삼아 따르겠노라고 말입니다.
중학교 삼학년 때 담임이셨던 선생님께선 집안 형편상 고등학교 진학을 못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만 했던 저를 무척이나 안타까워하시며 물심양면 돕겠다는 제의까지 하셨던 분이십니다. 학비는 어떡해서든 당신께서 마련해볼 터이니 공부 열심히 해서 기숙사 생활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집까지 찾아오셔서 어머니를 설득하셨지요. 그러나 한창 사춘기라 예민했던 저는 선생님께 폐를 끼치는 것도 자존심 상하고 연년생 동생들이 줄줄 딸려 있는 형편을 생각해 선생님의 제의를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꼭 못 다한 학업을 다시 잇겠다던 다짐은 생활고에 맞닥뜨려 하루하루 버겁게 사는 형편에 그저 꿈으로만 머물고 말았지요. 그러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마흔 넘은 나이에 다시 공부할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저의 전화에 뛸 듯이 기뻐하시며 용기를 북돋워주시던 선생님, 그 말씀에 힘입어 늦깎이 고등학생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입학하자마자 따님의 교과서와 참고서까지 알뜰히 챙겨주시며 때론 개인지도까지 자원해 주셨던 선생님이 계셔서 오늘의 제가 있게 되었지요.
저와 꼭 아홉 살 터울이 나는 선생님이 어느 땐 친언니처럼 듬직하게 느껴집니다. 제 인생에 선생님과의 동반이 없었더라면 과연 저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가끔 생각하며 새삼 선생님의 따뜻한 동행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 주는 의미로 사용되는 멘토, 제겐 선생님이야말로 세상 최고의 멘토십니다. 선생님의 가르치심에 엇나가지 않는, 꿈을 향하여 한 올 한 올 정성을 깁는 제자가 되겠다고 선생님께 약속드립니다. 제 인생의 영원한 멘토, 정영순 선생님 고맙습니다, 존경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