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M
수화기 너머 아들 녀석 목소리가 어둡다. 어디 가서 싫은 소리 한 번 듣고 자란 적 없는 내 아들이 세상의 벽에 부딪혀 스스로 작아지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따뜻한 저녁밥이라도 든든히 양껏 먹이고픈 마음에 한 상 차렸건만 왜 아직 안 오는지… 아! 왔구나 내 아들. 어깨 처지지마라. 너는 이 엄마의 자부심이야.
SON
이번에도 낙방이다. 이토록 수많은 빌딩 숲 속에 내 몸 하나 앉힐 책상이 없단 말인가. 집에 들어갈 면목도 없다. 할 수 없이 허한 마음만 가득 안고 집에 돌아와 보니 집안 가득한 청국장 냄새. 못난 아들 먹으라고 구수하게 끓여주신 어머니의 청국장. ‘그래, 먹고 또 시작하자. 잊지 말자, 나는 어머니의 자부심이다.’
힘겹기만 한 첫 날개짓
어린 새가 처음 나는 법을 배울 때 어미 새는 평소와는 달리 과감히 아기 새를 둥지 밖으로 내온다고 한다. 수차례 떨어지고 넘어지며 스스로 깨쳐야만 비로소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어미 새는 첫 날갯짓을 시작하는 순간만큼은 아기 새에게 조금은 모진 어미가 된다. 그러나 사람의 어미는 어미새와는 다른지 세상으로 나가려는 자식이 벽에 부딪혀 아파할 때마다 좀처럼 의연한 마음을 먹을 수 없다. 계속되는 경기 불황과 취업난 속에서 오늘도 책상머리에 앉아 두 세장 남짓한 자기소개서에 자신을 통째로 밀어 넣느라 고달푼 취업 준비생들. 불확실한 미래에 본인 속은 물론이거니와, 그러한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속에 얹힌 체증 또한 좀체 가시질 않는다. 이 아기 새들의 날개는 언제쯤 힘차게 펼쳐질까. 어미새가 부리로 꼭꼭 씹어 부드러워진 먹이를 아기 새에게 먹여주 듯 취업 준비에 지쳐 있는 자녀에게 어머니가 든든히 먹여주고 싶은 한 끼 식사, 청국장과 꼬박 무침을 권해볼까 한다.
구수한 청국장에 담은 청춘의 위로
우리 민족이 청국장을 먹기 시작한 유래와 그 어원은 불분명하지만 전쟁통에 먹는 장이라는 뜻인 ‘전국장(戰國醬)’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학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전쟁 중에는 한 곳에 오래 주둔하지 못하고 자주 이동해야만 하기에 장이 익을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만들어 바로 먹을 수 있도록 고안된 식품이라는 것이다. 전국장에서 왔다는 이름만 보아도 취업이라는 목표를 위해 사회라는 전장을 나서는 자식에게 이보다 더 좋은 응원의 메뉴가 또 있을까. 앞서 말했듯, 우리네 식탁의 단골 터줏대감인 된장과 비슷하지만 된장이 발효시켜 먹을 수 있게 숙성되기까지 몇 달이 걸리는데 비해, 청국장은 담근 지 사나흘 정도면 바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청국장을 만들 때 나는 그 특유의 향이 워낙 강한 탓에 집에서 만들어먹기를 꺼려하는 사람도 더러 있으나 청국장은 된장보다 염분은 낮으면서도 콩을 통째로 발효시켜 그대로 먹기에 콩이 가진 단백질의 이로운 성분만을 그대로 유지해 더없이 좋은 건강식이다. 이와 함께 제철인 1월을 만나 살이 통통하게 차오른 꼬막을 무쳐 함께 내어보자. 꼬막은 모든 조개류 중 단백질 함유량이 가장 높으며 아미노산이 풍부해 겨울 입맛을 깨우는 별미로 꼽힌다. 특히 피로회복제의 성분으로 불리는 타우린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간장(肝臟)의 해독작용과 체내 콜레스테롤을 낮추는데도 효과적인 식재료다. 삶은 꼬막 한 알 한 알마다 짭조름한 간장양념을 얹은 꼬막무침은 청국장과 함께 든든한 한 끼 식사를 채워줄 반찬이다. 흔히 기운을 북돋고 입맛을 깨우는 데는 고기나 탕처럼 진하고 기름진 음식을 쉽게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구수한 맛의 청국장과 정갈하고 담백한 꼬막처럼 소박하지만 정성과 영양이 알찬 식사도 삶에 지친 청춘들을 위로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날로 추워지는 날씨로 온 몸이 얼어붙는 요즘, 어머니가 끓여주는 청국장 한 그릇, 꼬막 한 접시로 취준생들의 얼어붙은 마음이 조금이나마 온기를 머금길 소망한다.
Recipe
재료 청국장 200g, 두부 1/4모, 돼지 앞다리살 150g, 무 100g, 대파 1뿌리, 감자 1개, 팽이버섯 약간, 청양고추 1개, 홍고추 1개, 소금 1TS, 고춧가루 1Ts
국물재료 물 1.2L, 멸치 10마리, 다시마 10X10cm 1장
만드는 법
1 - 찬물에 멸치와 다시마를 넣어 끓여주다가 끓기 시작하면 다시마는 빼고 멸치만 끓여준다. 2 - 감자, 무는 넓적하게 썰어 준비하고, 두부와 돼지고기는 한입에 먹기 편한 크기로 썰어둔다. 3 - 대파, 홍고추, 청양고추는 어슷하게 썰어 준비한다.
4 - 팽이버섯은 끝의 지저분한 뿌리부분만 잘라 새끼손가락 두께로 찢어 준비한다.
5 - 끓는 육수에 감자, 무 먼저 넣어 5분간 익혀주다가, 돼지고기를 넣어 끓여준다.
6 - 청국장과 고춧가루를 넣어 잘 풀어주고, 두부와 대파, 고추를 넣어 한소끔 끓여준다.
7 - 그릇에 담아낸 뒤 팽이버섯을 하나씩 올려 마무리한다.
(기호에 따라 소금을 추가하고, 팽이버섯은 끓이면 질겨질 수 있으므로 따로 담아냅니다.)
양념 꼬막
재료 꼬막 400g, 홍고추 반개, 쪽파 2~3뿌리, 해감용 소금 100g
양념재료 간장 3Ts, 매실액 1/2Ts, 깨 1Ts, 참기름 1Ts, 고춧가루 1/2Ts, 다진마늘 1Ts
만드는 법
1 - 꼬막은 소금을 뿌려 손으로 문질러 찬물에 씻어내 껍질에 묻은 흙을 깨끗하게 씻어낸다.
2 - 찬물에 소금을 타서 바닷물에 가까운 염도로 최소 2시간 이상 해감해준다.
3 - 분량의 양념을 모두 섞어 만들어 냉장고에 숙성해준다.
4 - 홍고추는 잘게 다지고, 쪽파는 송송 썰어 준비한다.
5 - 해감한 꼬막을 다시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준다.
6 - 물을 넉넉하게 끓여 끓어오르기 직전에 꼬막을 넣어 한 방향으로 저어준다. (저어주며 익혀야 꼬막의 한쪽 부분만 익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7 - 40~50 초 정도 돌려가며 익히면 꼬막이 입을 벌리는데 다 벌릴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절반이 입을 벌리면 체에 받혀 꼬막을 걸러준다. (찬물에 식히지 않습니다.)
8 - 껍질이 벌어진 꼬막은 한쪽 껍질만 까주고, 입을 안 벌린 꼬막은 벌어지지 않는 반대편에 숟가락을 넣어 비틀어 껍질을 까준다.
9 - 꼬막을 곱게 담아 준비한 양념을 뿌리고, 홍고추와 쪽파를 올려 완성한다.
요리/푸드스타일링 한희원 대표 이진영 쉐프(Cooking & ) 02.568.1003
그릇협찬 김태윤 도예 공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