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올드 걸의 추억
속초에서 나고 자란 친구는 이상하게 만두만 보면 치를 떨었다. 새해를 맞아 집에서 만두나 함께 빚어먹자고 했더니 손사래를 치며 거절의 뜻을 명확히 했다. 이토록 맛있는 만두에 무슨 억하심정이 있나 싶어 사연을 물었더니 고개가 절로 끄덕거려졌다. 친구의 아버지는 속초에서 한때 만두가게를 운영했다고 한다. 속임 없이 실한 만두를 직접 빚은 덕분에 제법 장사가 잘 됐다. 비극은 바로 거기서 시작됐다. 매일 빚어야 할 만두가 늘어나다 보니 친구가 손을 보태지 않으면 장사를 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스무 살 무렵의 친구는 대학에 가서 꿈도 펼치고 마음껏 연애도 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만두가게 골방에 처박혀 기계처럼 만두를 빚어내는 것밖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녀에게 만두는 청춘의 굴레이자 지긋지긋한 감옥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렇게 5년여를 꼼짝없이 만두 빚는 일에 충성을 바친 끝에 그녀는 겨우 속초를 탈출해 서울로 오게 되었다.
옹기 종기 모여 앉아 꼼질 꼼질
나에게 만두는 그녀가 기억하는 만두와 느낌이 사뭇 달랐다. 만두를 생각하면 따뜻한 온돌방에 모여 앉아 농담을 나누는 가족의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설 전날이 되면 우리 가족은 녹두전을 시작으로 다양한 차례 음식을 먹다 지칠 만큼 양껏 준비했다. 설 음식 준비의 피날레는 역시나 만두 빚기. 혼자 빚으면 한숨이 절로 나올 만큼 많은 양이지만 8남매가 모이는 우리 집에선 한두 시간이면 뚝딱 끝나는 짧고 스펙터클한 게임에 불과했다. 큰 며느리인 우리 어머니는 만두 속과 피가 담긴 그릇을 대충 던져주고는 ‘누가 제일 예쁘게 빚나 지켜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면 수십 개의 손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뚝딱 예쁜 만두가 길쭉하게 빚어져 나왔다. 어머니는 만두를 빚는 가족들 옆에서 한석봉 어머니처럼 얌전하게 허리를 숙이고 떡을 썰었다. 엄마는 혼자였기 때문에 몇 시간씩 떡을 오래 썰어야 했지만, 우리는 함께였기 때문에 후딱후딱 재미있게 만두 빚기를 끝낼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어머니가 가지런히 썬 떡과 나머지 가족들이 삐쭉빼쭉 함께 빚은 만두가 한데 뒤섞여 부엌에서 보글보글 익어갔다. 떡만둣국을 한 그릇 떠먹고 나면 그제야 한 살을 배부르게 또 먹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대륙을 건너 바다를 넘어 수저에 안착하기까지
새해에 떡만둣국을 만들어 먹는 것은 비단 우리만 즐겼던 문화는 아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만두는 중국에서 유래했다. 이름은 중국 만터우(饅頭)에서 가져온 것이지만 실제로 중국에 가서 만터우를 시키면 짐작과 전혀 다른, 속이 텅 빈 밀가루 빵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우리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만두는 사실 중국 자오쯔(餃子)에 가깝다. 밀가루 반죽을 얇게 빚어 속을 채운 음식을 중국에선 자오쯔, 일본에선 한자음 그대로 교자라고 부른다. 만두의 본향은 산둥성이다. 산둥성 사람들은 새해 첫 음식으로 물이 흥건한 만두를 끓여 먹었고, 이것이 중국과 한국으로 퍼져나가 새해 음식으로 굳어졌다.우리나라로 넘어온 산둥성 출신 화교들은 새해가 되면 고향을 그리워하며 뜨끈한 만둣국을 끓여 먹는다. 이북 출신이나 화교 문화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새해에 만둣국 끓여 먹는 것을 당연한 연례행사로 여겼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고개를 든다. 우리나라 새해 음식은 떡만둣국이 아니라 떡국이 아니었나. 어떤 집에선 만두를 떡국에 올리는 고명 정도로 취급하기도 한다. 사실 이는 철저히 지역 색이 가미된 결과다. 한반도 위쪽에선 중국의 영향을 받아 새해 음식으로 만둣국을 끓여 먹고, 아래쪽에선 주로 떡국을 끊여 먹는다. 날씨가 비교적 온난한 남쪽에선 속이 쉽게 상하기 때문에 만두 요리가 크게 발달하지 않았다. 만두는 당연히 선선한 이북의 요리였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간단한 음식으로 허기를 달래는 중국의 점심 문화였다. 그런데 한반도로 흘러들어온 만두 문화가 흥미로운 충돌의 음식을 빚어냈다. 북쪽의 만두와 남쪽의 떡이 중부 지역에서 만나 절묘하게 화합한 것이다. 문화의 용광로 같은 서울 사람들은 이제 새해 첫날 떡국이 아니라 떡만둣국을 끓여 먹는다. 사골이나 고기를 푹 고아 육수를 내고 김치와 두부, 야채, 고기로 속을 채워 야무지게 여민 만두는 쫄깃한 가래떡과 맛이 잘 어울린다. 두 가지 재료를 넣고 팔팔 끓이면 따뜻한한상 차림이 완성된다. 떡만둣국을 만들 때 중요한 것은 재료의 입수 순서. 육수가 팔팔 끓을 때 떡을 먼저 넣고 어느 정도 익은 다음 만두를 넣어야 한다. 담백한 한 그릇의 떡만둣국을 씹어 먹는 것은 시간을 야무지게 곱씹는 작업이다.
한 살의 나이를 거뜬히 먹어치워야 우리는 다시 새해가 시작됐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떡만둣국과 함께 2016년 새해가 여지없이 밝았다.
Recipe
돼지고기 만두
재료 만두피 40장, 간 돼지고기 600g, 부추 200g, 두부 1모 (460g), 숙주 600g, 양파 1개, 대파 1뿌리, 다진마늘 1Ts, 계란 3개, 간장 2Ts, 소금 2ts, 설탕 1ts, 후추 약간
돼지고기 밑간 생강술 2Ts, 소금 1ts, 마늘 1Ts, 후추 약간
만드는 법
01. 돼지고기는 분량의 밑간을 넣어 잘 섞어둔다.
02. 숙주는 깨끗이 씻어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찬물에 행궈 물기를 꼭 짠다.
03. 양파는 잘게 다져 약간의 소금으로 절여 면보에 싸서 물기를 제거한다.
04. 부추를 깨끗이 씻어 물기를 제거해 0.4cm 길이로 잘라둔다.
05. 두부는 면보에 싸서 물기를 꼭 짠다.
06. 볼에 돼지고기, 숙주, 두부, 양파를 넣고 계란 2개를 넣어 치대준다.
07. 계란이 잘 섞이면 간장, 소금, 설탕, 후추를 넣어 간을 해준 뒤 잘라둔 부추를 넣어 살살 섞어준다.
08. 만두피에 만두소를 적당량 올린 후 가장자리에 계란물을 바른다. 반으로 접어 붙인 후 양끝을 모아 붙여 만두를 빚는다.
사태장국 떡국
재료 떡국떡 300g
국물 재료 쇠고기 사태 300g, 건표고버섯 5장, 물 1.5L, 국간장 3Ts, 소금 1Ts, 후추
고명 재료 계란 2개, 김가루, 표고버섯 무침(진간장 1Ts, 참기름 1Ts, 설탕 2ts)
만드는 법
01. 건표고버섯을 물에 불려두고 사태는 찬물에 담가 핏물을 제거해 둔다.
02. 떡국떡을 물에 담가 말랑말랑 해질 때까지 불려둔다.
03. 표고버섯을 불린 물에 사태를 넣어 은근한 불로 끓여준다.
04. 중간중간 떠오르는 거품과 기름을 제거해 맑은 육수를 만든다.
05. 달걀은 노른자와 흰자를 분리해 얇게 지단을 부쳐두고, 불려진 표고버섯은 기둥을 제거하고 물기를 짜네 채 썰어 무쳐준다.
06. 1시간~1시간 30분 정도 끓인 뒤 고기를 건져 식혀두고 육수에는 떡을 넣어 끓여준다.
07. 건져둔 사태는 결대로 찢거나 결 반대로 썰어서 준비한다.
08. 떡이 익으면 국간장 소금 후추로 간을 해 한소끔 더 끓여준 뒤 담아낸다.
09. 황백 지단과 김가루, 표고버섯을 곱게 올려 담아낸다.
사골육수
재료 사골 600g, 물 5L, 대파 4뿌리, 마늘 10알, 통후추 10알
만드는 법
01 깨끗이 씻은 사골을 물에 담가 핏물을 빼준다, 중간중간 물을 갈아주며 최소 반나절 이상 핏물을 제거한다.
02 끓는 물에 사골을 넣어 10~15분 끓였다가 흐르는 물에 깨끗이 헹궈낸다.
03 찬물에 사골, 대파, 마늘, 통후추를 넣고 물이 끓어오르면 마늘과 대파 후추를 건져내고 은근한 불에 7~9시간 끓여준다.
04 한김 식혀 냉장고에 차갑게 식힌 사골육수는 체를 이용해 남은 기름을 제거해 마무리한다.
레시피 제공 및 요리도움. 한희원(Cooking&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