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박자박 봄의 절정에서, 부부의 첫 서울여행
전남 순천에서 서울 경복궁까지, 3시간 반 여를 달려왔지만 순천우체국 이형록 팀장과 아내 박혜옥 씨의 얼굴엔 일말의 피곤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오는 내내 부부가 처음 떠나는 서울여행에 대한 설렘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고 하니, 이보다 더 다정한 부부가 있을까.
“친척들의 경조사가 있을 때마다 서울에 올라왔지만 오늘처럼 순전히 여행을 목적으로 온 건 처음이에요. 서울을 여행한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집니다. 경복궁은 남편도 저도, 학창시절 수학여행 이후로 처음 오거든요. 오늘 하루 우리네 멋을 마음껏 즐기겠습니다!”
이형록 팀장의 아내 박혜옥 씨가 환한 얼굴로 인사를 건네며 말을 잇는다. 언제나 복닥복닥 정신없는 서울 한복판에서 우리의 문화와 멋을 느낀다는 사실이 특별한 즐거움으로 다가온단다.
“저는 1984년에 우정사업본부에 입사했고, 바로 다음 해인 1985년에 결혼했어요. 약 30년간 아내가 저를 훌륭히 내조해줬습니다. 두 아이를 바르게 키우면서 맏며느리로서 집안의 대소사도 관장해야 했으니, 내색은 안했지만 참 힘들었을 거예요. 더욱이 작년 2월 어머님께서 쓰러지신 후, 아내가 자신의 모든 생활을 접고 헌신적으로 병간호를 하고 있습니다. 고마운 아내에게 오늘 여행이 모처럼 휴식이 될 것 같아 저도 기분이 참 좋습니다.”
이형록 팀장의 말에 아내에 대한 깊은 사랑이 담겨있다. 이형록 팀장 역시 집안의 맏아들이자 순천우체국의 팀장으로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달려왔다. 지난 1999년엔 모범공무원상을 받았고 장관상도 3번이나 수상했다. 2008년엔 통상우편매출대상까지 수상했고, 현재는 은퇴 후 사회봉사를 하기 위해 야간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다. 아름다운 봄의 절정에서 즐기는 오늘 서울여행은 이형록 팀장에게도 바쁜 일상에 쉼표를 찍는 특별한 하루다.
경복궁, 유유자적한 행복을 만끽하다
딱 나들이하기 좋은 날씨 덕일까. 오늘 경복궁은 정말 사람으로 만원이다. 대부분 외국인이라 오히려 외국에 놀러온 느낌이 들 정도다. 우리의 궁에 감탄하는 외국인이 이렇게 많다고 하니 괜스레 마음이 뿌듯해진다. 갑자기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아마도 봄 소풍을 나왔나보다. 그 모습에 이형록 팀장과 박혜옥 씨도 오래 전, 수학여행 시절로 돌아간 듯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이제 본격적으로 경복궁 곳곳을 탐험할 차례다. 경복궁은 조선 왕조 제일의 법궁(法宮, 임금이 사는 궁궐)으로, 드넓은 궁역과 질서정연한 건물 배치가 특징이다. 이형록 팀장 부부가 제일 먼저 근정전 앞에 섰다. 근정전은 왕이 문무백관에게 조회를 받고 외국 사신을 접견하며, 즉위와 책봉, 혼례 같은 나라의 주요한 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왕과 나라의 권위와 품격을 드러내는 중요한 공간인 만큼 그 위용 역시 남달라 특히 많은 관광객이 모여 있었다. 이형록 팀장 역시 카메라를 꺼내 들어 근정전의 모습을 담는다. 아내가 아름다운 모델이 되어 이형록 팀장의 사진을 빛낸다. 다음으로 둘러볼 곳은 수정전이다. 수정전이 자리한 곳이 바로 세종대왕 시절 한글 창제의 산실이 되었던 집현전이다. 그래서인지 수정전 앞에 서자 새삼 한글의 우수성에 고개가숙여진다. 집현전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졌지만 1867년 재건되면서 수정전이란 새 이름이 붙여졌다.
수정전 뒤편으론 경회루가 있다. 경복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꼽히는 경회루는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마다 연회를 베풀던 누각이다. 외국의 사신을 접대하던 곳도 경회루였다. 잔잔한 호수 위에 자리한 경회루는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이다. 호수 주변으론 멋스러운 수양버드나무가 자리해있고, 마치 머리에 꽃 모자를 쓴 듯 아름다운 벚꽃나무가 그 자태를 뽐낸다. 경복궁의 봄을 즐길 때 향원정이 빠지면 섭섭하다. 작은 연못과 어우러진 정자는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 정자 주변엔 꽃분홍 진달래가 가득 피어 있다. 여인의 볼터치마냥 은은한 색감에 마음에도 봄빛이 스며든다.
삼청동, 골목마다 아기자기한 재미가 숨어있는 곳
경복궁 나들이를 끝내고 자박자박 서울 길을 걷는다. 다음 행선지는 언제부턴가 ‘트렌드 좀 안다’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입소문을 탄 ‘삼청동’이다. 삼청동은 향기로운 차 한 잔을 즐길 수 있는 카페와 독특한 레스토랑, 귀여운 소품을 판매하는 상점들로 가득하다. 뒤편 골목엔 한정식집이 자리해 있고, 소박한 북 카페와 예술가들의 공방도 보물찾기 하듯 숨어 있다. 또 현대미술관 서울관을 비롯해 특색 있는 갤러리들이 자리해 삼청동에 아름다운 문화의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골목골목을 걸을 때마다 아기자기한 재미가 가득한 삼청동. 그간 화려한 종로에 가려 눈에 띄지 않던 이 조용한 동네는 이제 서울 시내에서도 가장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 되었다. 봄날의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부터, 아빠엄마의 손을 잡고 나온 가족 나들이객까지 삼청동 골목 곳곳에 사람들이 물결을 이룬다. 이형록 팀장과 박혜옥 씨 역시 TV에서만 봤던 삼청동 특유의 매력에 푹 빠졌다. 처음 방문한 곳이지만, 사람냄새가 폴폴 나는 정겨운 골목이 마음에 쏙 든단다. 이색적인 인테리어로 무장한 가게를 구경하며 걷는 재미도 참 쏠쏠하다고. 삼청동 골목길이 훤히 내다보이는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 청포도 주스 한잔을 마시니, 이보다 더 좋은 봄나들이가 없단다. TV나 잡지 등을 통해 유명세를 타고 서울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약간 복잡해지긴 했으나, 여전히 삼청동은 소박한 동네다. 당장이라도 아이들이 웃으며 뛰어올 것 같은, 동네 강아지와 참새가 어울려 놀 것 같은 골목을 걷다보면 서울이란 도시의 정겨운 표정과 마주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