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아름다운 고장으로
장흥은 전라남도에서도 상당히 작은 규모의 군(郡). 인구가 4만밖에 되지 않으니 ‘한 다리 건너’면 모두 아는 사람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정도다. ‘그런 작은 고장의 장날이라 해봤자 무어 특별한 게 있을까’라는 생각은 적어도 토요일만큼은 접어두도록 하자.장흥의, 아니 전라남도의 자랑거리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장흥토요시장이 시작되는 곳은 바로 탐진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서부터. 탐진강은 영산강, 섬진강과 함께 전남의 3대 강으로 꼽히는데, 읍내를 가로지르는 물길도 여전히 오염이 되지 않아 여름이면 물축제를 즐길 수 있는 명소가 된다.
탐진강의 수질이 얼마나 좋은지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장흥의 자연환경이 얼마나 잘 보존되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준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맑은 탐진강을 건너는 동안, 장흥토요시장에서 판매되는 지역 농산물에 대한 기대는 커질 수밖에 없다.그리고 시작된 장터의 초입은, 기대에 어울릴 만큼 싱싱한 상품들이 여기저기 가득히 쌓여 있었다. 대부분은 제철에 생산된 채소류와 과일들. 그중에서도 이제 막 출하시기를 맞은 마늘이 한 가득이었다. 거의 대부분 장흥과 인근 지역에서 재배된 것들이라고 한다. 당연히 신선한 것은 두말할 이유가 없는 부분.
마늘 못지않게 많이 보이는 또 하나의 작물은 바로 파프리카. 장흥은 대표적인 파프리카 재배지인데, 대형 유리온실을 이용해 재배하여 덕분에 품질이 상당히 좋다고 한다. 그래서 한 입 베어 물면 마치 과일처럼 단 과즙이 입안에 확 퍼진다는 게 상인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파프리카를 구입하는 데 있어 굳이 그런 설명은 없어도 된다. ‘때깔’이 워낙 좋아 사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니까.
전남장흥토요시장 info
찾아가는 길
남해고속도로 장흥IC > 장흥IC 삼거리 좌회전 > 약 2km 직진 후 장흥교5거리에서 우회전 > 장흥칠거리에서 7시 방향 진입 > 약 300m 직진
운영시간 06:00~18:00(시장), 06:00~21:00(식당마다 상이)
문의 061-864-7002
시장주변 관광지 물 과학관, 탐진강, 편백숲 우드랜드
버섯에 담긴 맛있는 이야기
장흥토요시장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작물은, 마늘도 아니고 파프리카도 아닌, 표고버섯. 일찍이 장흥은 표고버섯 재배를 많이 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인공적인 재배를 하기 전인 조선시대 때부터 표고의 산지로 유명했다고 한다. 이는 장흥의 자연 덕분이었는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분석하자면 다음과 같다.장흥은 평야지대인 전라남도 중에서는 유별나게 높은 산이 많다. 그리고 그 산에는 참나무 같은 활엽수들이 빽빽하게 자라고 있는데, 그 나무들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습기가 가득한 바람을 사시사철 맞으며 서 있다. 깨끗한 바람으로 통풍이 잘되면서도 항시 어느 정도의 습기가 담보되어야 하는 버섯의 생육환경에 장흥보다 더 좋은 곳을 찾기는 힘들다. 그러니 전국에서 유통되는 표고버섯의 약 20%를 장흥에서 재배된 것들이 차지한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랄 만한 일도 아닌 셈이다.
표고가 가장 맛있는 시기는 3, 4월. 이미 시기가 지났다고 안타까워하지는 말자. 다른 표고버섯도 마찬가지지만, 장흥 표고버섯도 말리면 그 감칠맛이 더 깊어진다. 당연히 시장에서도 말린 표고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뿐인가, 생표고는 참기름에 찍어 먹을 수 있게 수북이 쌓아두었다. 마트나 백화점 등에서 마치 ‘분쇄’를 해놓은 것처럼 보이는 시식용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바구니에 표고버섯을 정리하던 할머니께 그 이유를 물으니 정겨운 답이 돌아온다.
“아 묵는 것 갖고 섭섭하게 굴면 쓰간디?”
남도의 인심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다.
어머니의 손길이 시장에
전통시장에, 특히 지방의 전통시장에 할머니들이 많이 보이는 거야 무어 특별한 일일까만, 장흥토요시장의 할머니들은 그렇지 않다. ‘어머니 텃밭장터’라는 팻말이 서 있는 곳부터 시작되는 골목에서 좌판을 벌이고 있는 할머니들은 모두 목에 명찰을 걸고 있기 때문. 그 명찰을 보고 팻말에 적혀 있던 문구를 다시 한번 떠올린다.
『매주 토요일마다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판매하는 믿음과 정겨움이 있는 어머니 텃밭장터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농산물 실명제’를 실시하고 있는 구역이라는 뜻. 이곳에서 마늘을 까고 매실을 쌓고 콩을 쏟아내고 있는 할머니들은 모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장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 좌판을 벌일 수 있는 할머니는 총 120여 명 정도. 조를 나누어 격주로 장사를 하고 있는데, 경쟁률이 상당히 높다고 한다. 그러니 좌판에 깔아놓은 작물들 중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된 게 없었고 자식 같지 않은 것은 없다는 게 할머니들의 말씀.
“나넌 밥 못 묵어도 야들은 때마다 물 주고 키운 것잉게 맛이 없을 거라는 생각은 하덜 말더라고.”
웃으며 나물들의 모양을 잡는 할머니의 말에는 자부심이 하나 가득이었다. 그런 할머니들이 가장 반기는 손님은 다름 아닌 아이들. 이제 막 걸음마를 제대로 하기 시작한 아이들을 보면 금세 얼굴이 꽃처럼 밝아지며 “오메 어쩜 저리 예쁜가!” “아가, 이리 와. 할미가 요 하나 주게!” 하며 손짓을 한다. 그것은 분명히 상인의 목소리가 아니라 정겨운 할머니의 목소리다. 아이들도 낯선 할머니가 건네는 작은 과자, 과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고 깊이 머리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시장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이웃 모두가사이좋게 지내는 아주 오래된 마을의 풍경이라는 편이 더 잘어울린다.
그리고 그 오래된 마을에 새로 이사를 온 젊은 이웃들도 보인다. ‘다우리 음식거리’에서 여러 나라의 먹거리를 만들고 있는 이주 여성들이 바로 그들. 장흥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 필리핀, 몽골, 베트남 등 ‘다국적 요리사’들이 매주 토요일이면 모두 모여 고향의 음식으로 장흥토요시장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에서 양식하는 김은 잡태(바다의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염산을 사용하지 않고 모든 작업은 사람의 손에 의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바다의 생태계가 건강해지고 맑은 바다에서만 번식이 가능한 키조개들이 장흥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것은 더없이 당연한 일이 되었다. 아울러, 장흥이 아니면 상상도 못 할 조합을 자연이, 그리고 그 자연을 존중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셈이다. 그러니 장흥 삼합은, 단순한 식재료의 조합이 아니라 장흥의 자연이한 데 어우러진 맛이라 해야 정확하겠다. 그래서 장흥의 삼합,장흥토요시장에서 맛보는 한우와 표고버섯과 키조개의 어우러짐은, 쾌락이라 부를 정도로 달콤하고 감칠맛이 넘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것을 맛보는 장소가 바로 장흥토요시장이라 그런지도 모르겠고.
Mini Interview
장흥토요시장은 이제 전국에서 손님이 몰려오는 시장입니다. 그래서 손님에게 더더욱 친절해야 하고 정직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인들끼리 공유하고 있습니다.
조성일 | 장흥시장 상인회 회장
호객 행위를 절대 하지 말자는 캠페인, 원산지 표시를 정확히 해야 한다는 약속 모두 소비자의 권익을 지키는 동시에 상인들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라는 점을 힘주어 이야기하던 조성일 회장.
그는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시장에서 팔고 있는 농산물은 대부분 장흥산 혹은 국산”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상인들은 그만큼 장흥의 것을 알리고 퍼뜨리는 데에 열심이라고. “장흥은 사시사철 언제나 좋지만 특히 물축제가 열리는 여름은 더더욱 좋습니다. 깨끗하고 시원한 탐진강에서 즐겁게 하루를 보내고 장흥 삼합으로 원기를 보충하시면, 그보다 더 좋은 피서도 없을 겁니다.” 조성일 회장의 초대가, 땀을 닦아주는 산바람처럼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