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의 재료가 맛깔스러움의 비결
밥먹기 싫다고 투정하는 작은 아이. 더운 김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흰 쌀밥에다 젓갈 반찬 하나면 밥 한 그릇은 그냥 뚝딱. 세상에 이보다 더 고소한 음식이 있을까.
속이 투명하게 비치는 무깍뚝채에 젓갈을 버무려 시아버님 상에 내놓으면 입맛 깔깔하시다던 시아버님 젓가락이 바빠진다. 이보다 더 단 음식이 있을까.
시린 겨울바람이 창을 흔들고 지나가는 저녁, 고된 하루일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과 나누는 다정한 반주 한 잔. 짜기가 시집살이 같다는 젓갈 안주 때문인지 술이 술술 잘도 넘어간다. 세상에 이보다 더 알싸한 음식이 있을까.
젓갈과 함께 평생을 살아온 동해바다 속초 사람들. 그들에게 젓갈은 과연 어떤 맛일까.
40여년 전통의 고바우젓갈
속초 사람들에게 있어 바다는 삶의 터전이다. 하늘 맑고 바람 잠자는 날. 알짜 배기 생선을 건져올려 자식들 교육시키고 노부모 공양까지 거뜬히 해내니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들에게 삶의 버팀 목이 되어주는 든든한 터전이 또 하나 생겼는데 그것이 바로 맛깔스럽게 조리된 젓갈이다.
젓갈은 원료의 생산지나 계절에 따라 지방마다 나름의 명산품이 있게 마련인데, 명란젓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속초를 맨 먼저 떠올린다. 예로부터 명란젓의 원료가 되는 명태가 동해산이 싱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바우식품(대표: 박영진)이라는 젓갈업체의 공도 컸다.
속초에 젓갈이 정확히 언제 유입되었는지는 모르지만 6 · 25전쟁 이후라고들 한다. 고바우식품은 그와 때를 같이 하는 40여년의 전통을 가진 젓갈류에서는 선두 업체이다.
함경도 신포 출신이었던 박사장의 어머니가 스물다섯살 때 월남하여 속초에 정착하면서 밑반찬으로 조금씩 만들었던 것을 제품화하여 2대째 대물림하고 있다
고바우식품이 우편주문판매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87년이었다. 당시 우편주문 판매제도가 시행된 지 1년째로 접어들면서 속초우체국 직원들은 관내 젓갈업체들을 대상으로 공급자로 나설 것을 권유하고 다녔다. 다른 업체들은 이를 외면 했으나 속초에서 20년을 넘게 젓갈업을 해오던 박사장의 선친 박원준씨는 관공서에 몇차례 납품을 해본 경험이 있었던 터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속초 명란젓을 전국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해 공급자로 선뜻 나섰다.
그때 고바우식품이 우편주문판매용으로 내놓은 상품은 속초 명란젓과 창란젓. 이미 백화점 · 시장 등에 내놓았지만 큰 매상고는 올리지 못했다. 당시의 젓 갈은 매장을 이용한 밑반찬용이 태반이 어서 그 수요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던 참에 우편주문판매제도와 접하게 된 것이다.
속초 명란젓 · 창란젓이 우편주문판매를 통해 깔끔하게 포장되어 전국적으로 배달되자 이제는 밑반찬용에서 선물용으로 바뀌면서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박사장 부친의 판단이 적중했다. 우편 주문판매를 통해 속초 명란이 널리 알려지자 소비자들도 명란젓 하면 속초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고바우식품의 실적 또한 크게 신장되었다.
고바우식품이 우편주문판매업체로 선정되기 전에는 연 7,000〜8,000만원 정도의 매출액을 올렸으나, 우편주문판매를 시작하면서 차츰 수요가 늘어나 현재 연간 약 13억원의 매출액을 올리고 있다.
그 중 우체국을 통한 우편주문판매는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
“저희 노력보다는 우편주문판매제도의 덕을 많이 봤어요. 저희 젓갈이 아무리 맛이 좋아도 소비자들이 모르면 소용이 없죠. 그런데 공신력을 가진 우체국이 전국망을 통해 저희 제품을 판매하니 실적이 늘 수밖에요.”
박사장은 고바우식품이 이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을 우편주문판매제도의 공로로 돌렸다. 그러나 그의 겸손함 뒤에는 젓갈 맛을 일품으로 내기 위한 남 다른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매출액의 60%를 차지하는 명란젓을 예로 들면, 명란젓은 담그는 원료, 처리, 시기에 따라 질과 맛이 다르다. 선도가 떨어진 명태는 채란수율이 낮고 좋지 않은 냄새가 나기 때문에 질이 나쁘다. 그래서 박사장은 제 철에 갓 잡아올린 명태에서 채취한 알을 구입해 냉동창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젓갈을 담근다. 그리고 방부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 소금 · 고추가루 · 설탕 · 마늘 등 갖은 양념을 사용한다. 속초 명란젓의 맛이 일품인 것은 바로 여기에 비결이 있다. 또한 창란젓의 경우는 싱싱한 생태의 창자를 사용하는데, 그 재료를 손질할 때 모두 수작업으로 한다.
이렇듯 정성을 들여 만든 젓갈이 전국으로 보내져 소비자들의 구미를 돋군다.
“일단은 품질이 좋아야 소비자들이 다시 찾더라구요. 그래서 저희들은 이익은 많이 남지 않더라도 최상의 재료를 사용하죠. 한해 판매하고 그만둘 것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우편주문판매는 소비자가 직접 상품을 보지 않고 우체국을 믿고 상품을 구입하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책임감을 느낍니다.”
박사장은 우편주문판매 제품은 가격도 싸야 되지만 그보다는 좋은 품질의 상품을 소비자들에게 제공해 주어야 된다며,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속초 명란젓이 가장 맛있는 젓갈로 통하고 있다.
고바우식품은 이처럼 철저한 품질 관리로 지역 특산품을 보급해 강원도지사가 인정하는 푸른 강원 인증 마크를 획득했다.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통식품
속초 명란젓과 창란젓은 쌀밥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네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통식품이다. 쌀밥만을 먹었을 때 부족되기 쉬운 필수 아미노산과 비타민 B군을 보급해 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노신산 등 핵산 물질을 많이 가지고 있어 식욕을 높여 준다. 또한 메티오닌이라는 아미노산이 많아 간을 보호해 주는 역할도 한다. 그래서인지 빈부와 귀천의 구별없이 일상식품으로 널리 애용 되었을 뿐 아니라 임금의 수라상에는 빼놓지 않고 올려졌다고 한다.
“어머니께서는 저희 외할아버지한테서 젓갈 담그는 법을 배우셨대요. 함경도에서 외할아버지께서는 젓갈을 일본에 수출도 하셨다나봐요. 저도 어머니께 그 기법을 전수받아 앞으로 후대에까지 전수시킬 계획입니다.”
최근 일본의 젓갈업체를 견학하고 온 박사장은 고바우젓갈을 앞으로 국내 시장뿐 아니라 세계 시장에까지 진출할 수 있도록 철저한 품질 관리로 경쟁력을 키울 생각이다. 더불어 고바우식품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밑바탕이 되었던 우편주문판매제도가 정착되어 나갈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고자 한다.
'지금까지는 업체들이 지원을 받으려고만 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서로가 합심해서 지원을 받을 때는 받아야 되지만 업체들도 베풀어야 되지 않을까요. 한 예로 우체국에는 우편주문판매 전용차량 조차 없습니다. 이것이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었는데도 업체에서는 지원해줄 때까지 기다리기만 했어요. 영세 업체들은 할 수 없다지만 우편주문판매제도로 많이 성장한 업체들만이라도 투자를 해서 쌍방이 노력해 나간다면 더 많은 시너지 효과를 거두지 않을까요.”
우편주문판매제도에 대해 이제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나가야 서로가 커나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박영진 사장. 그는 남 달리 우체국과의 협조와 신뢰 관계를 강조하며 실천해 오고 있다. 작년부터 시작한 속초우체국 집배원 자녀들에 대한 장학금 지급이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일선 우체국에서 정말 애들을 많이 쓰십니다. 창구에서 이 업무를 성실하게 취급하는 분들, 또 중량이 많이 나가는데도 마다하지 않고 배달하시는 분들, 이런 고생하는 분들이 있었기에 저희들이 이렇게까지 발전할 수 있었죠. 그런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 장학금을 지급하기로 마음을 먹었죠.”
앞으로 2〜3년 후에는 선친의 아호를딴 우송장학회를 설립하여 좀더 많은 장학금을 지급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그는 우편주문판매와 인연을 맺은 지가 벌써 10년이 되어간다며, 앞으로 이 제도가 튼실히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