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Ameripex ’86에의 참가
금년은 머국우취연합이 창설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로서 이를 기념하여 미국이 여덟번째로 국제우표전시회를 개최하였다. 몇번의 개최 경험이 있어 여러 분야를 분담한 여러 사람들이 각기 자기 임무들을 조직적으로 잘 처리해 나갔다.
미국 시카고시 중심에서 30km 떨어진 교외 오헤어(O’ Hare)박람회관의 350,000m2 규모의 대 전시장에는 전 세계 130개국에서 출품한 4,188 틀의 우표 작품과 365개의 정부 및 민간 부스가 즐비하게 전시장을 메웠다. 한 마디로 사상 최대 규모의 국제전이었다. 이보다 더 많은 작품과 부스가 신청되었으나 장소가 모자라 받아 들이지 못했다고 한다. 국력이라는 것이 이러한 우표전시회에서도 과시되는구나 싶었다.
더욱 부러운 것은 정부의 재정 지원 없이 우취 인들이 기금을 조성하고 그들의 머리와 손과 발로 모든 행사계획을 세우각 스스로 치러 나갈 수 있는 능력이었다. 우리 현실과는 너무나 대조적 이었다. 수많은 자원 봉사자들이 친절하게 자기 들이 맡은 업무를 수행해 나갔다. 한가지 흠이라면 경비 충당을 위해 비싼 입장료를 받는 것이었다. 모든 분야에 공짜가 없을 만큼 경비 염출에 철저했다.
한국의 참가 저조가 아쉬워
대개의 국제우표전시회에는 한정된 틀 배정의 정부 작품과 민간 우취가 작품이 출품되고, 민간 우취가 작품만이 경쟁을 벌여 심사를 하고 메달을 겨루게 되는데, 처음으로 이번에는 정부 작품도 정부 작품들끼리 따로 심사를 하여 시상하는 제도를 마련하였다.
우리나라가 출품한 것은 정부 작품 3틀, 민간 출품작(1인) 6틀과 독일 교포의 작품 6틀이었다. 불행히 국내의 출품작은 입상권내에 들지 못했으나 독일 교포의 작품이「금은 」메달을 받아 겨우 체면을 유지하였다.
FIP 회장 드보라책이 여기에서 만난 한국 참가자들에게 PHILA KOREA ’ 84가 최고였다는 찬사를 또 늘어 놓았는데, 이 전시회에서도 많은 입상이 있었더라면 많은 외국인들로부터 칭찬을 받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컸다. 그 칭찬 이 곧 국위 선양이 아니겠는가.
인기를 끈 한국 부스
체신부는 1981년의 일본 국제우표전시회인 필라도쿄 때부터 민간단체의 행사이지만 정부에서 처음 참가하기 시작하여 매년 열리는 국제전에 적극 참가해 왔다.
미니 전시관이라 할 수 있는 부스의 크기는 대개 6mx3m 정도의 규격으로 나라마다 거의 비슷 하다. 다만, 두개의 부스를 빌려 하나로 터서 쓰는 경우도 있다. 또 나라에 따라서는 운동장의 좌석 값을 A, B, C 로 나누듯이 다른 값을 위치에 따라 받기도 한다.
Ameripex ’86에서의 한국부스 번호는 355호. 10일간 빌려 쓰는데 150만원이 들었다. 부스 장식은 나라마다 각기 자기네 나라(또는 자기 우표상)의 특징을 나타내려고 노력하였다.
포스터 한두장 붙여 놓고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만족해 하는 나라들도 많고 안락한 응접실처럼 전문 인테리어 솜씨를 빌어 실력 발휘를 한 나라도 간혹 있었다. 이번 Ameripex ’ 86에는 참가하지 않았지만 북한 부스는 예외없이 언제나 북괴기와 김일성의 대형 사진을 부스 중앙에 붙여 놓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평양우체국장이냐는 조롱의 질문을 받았다.
한국 부스의 장식은 국제전에 참가할 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만들어 가지고 간다. 이번에는 한국적 특색을 돋보이게 하고자 태극 문양에 무궁화 꽃과 잎을 함께 합성한 대형 컬러사진 패널을 중앙에 붙여 걸고 오가는 관람객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좌우 벽면에는 88올림픽우표 사진과 선박 • 자동차 • 음악 시리즈우표를 사진 확대 패널에 붙여 조화있게 부착했다. 88서울올림픽 개최를 홍보함과 동시에 88올림픽우표를 선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자동차우표는 한국의 포니엑셀이 미 대륙에 상륙한 것에 때맞춰 홍보하기 위한 일거양득의 시도였다. 또한 진열대 위에는 Ameripex ’ 86 참가기념우표를 적은 와이드컬러로 만든 선장판을 세워 놓아 지나가는 관람객의 시선을 끌도록 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부스의 안내원으로 현지 교포와 유학생 두 사람을 채용하여 일손을 돕고 한국을 선전하도록 하였는 데,그들에게 입힌 한복의 인기는 어느 부스보다도 우리 부스를 돋보이게 하였다.
처음 발행된 국제전 참가 기념우표
체신부가 외국 국제우표전시회에 참가하면서 참가 기념우표를 발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참가기념우표를 발행하면서 국내 우취인 몇 사람에게 자문을 구한 일이 있다. 그들은 거의 모두 발행 자체를 반대하였다. 그 이유인즉, 우표 발행 종수가 늘어난다, 국내 수집가들의 부담이 커진다. 당초의 발행계획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다른 나라 국제전 참가때도 또 참가 기념우표를 발행해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그처럼 찬성 의견은 거의 얻기 힘들었다. 옳은 말이었다. 그러나 체신 세입을 올리려는 뜻이 아니고 국위 선양이라는 측면에서, 발행하는 것이 발행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국익에 플러스가 된다는 판단에서 발행을 강행하면서도 내심으로는 그 반응이 궁금했다.
그러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변에 가까운 일들이 벌어졌다. Ameripex ’ 86에 참가한 130 개국 중 65개국이 기념우표를 발행했던 것이다. 그들 나라들도 거의 사전에 그 우표의 발행계획을 발표한 일이 없었다. 우리가 이 기념우표를 발행하지 않았더라면 전시장내의 우리 부스는 외면당하고 말았을 뻔했다. 더욱 자랑스럽게까지 여겨지는 것은 우리 참가 기념우표가 다른 나라의 그것들에 비해 소재나 디자인이 뛰어났고 시트 구성이 특이해서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판매용으로 가져 간 6만매의 우표가 전시회가 끝나기도 전에 매진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것도 전지 단위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한장씩 낱장으로만 사는 수집가 수준의 나라 전시장 에서 … 그렇다고 국제전 참가 때마다 참가 기념우표를 발행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 • 불수교 100주년 기념우표전시회
100년 전인 1886년 6월 4일 조선조의 전권대사 김만식과 프랑스의 코고르당 전권대사 사이에 한불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었다.
한국과 프랑스가 새로운 2세기를 맞게 되면서 우리는 이제 100년 전 까마득한 후진국 위치에서 선진국의 대열에 과감히 진입하려는 역사적 전환기를 맞는다. 그간 앞세워온 경제발전으로 소득 수준만 높아진다고 해서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와 병행해서 생활 문화, 정신 수준 등 모든 분야에도 뒤짐이 없어야 명실공히 선진국이라 자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 국민이 각기 맡은 일에 하나같이 선진국 수준에 버금가는 일이 되도록 노력을 다해야 될 줄로 생각한다. 이러한 마음으로 이번 한불수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치렀다.
문화의 도시 파리에서 우표전시회를 열다
정부는 금년을 「한불수교 100주년의 해」로 정하고 프랑스와 한국에서 각각 가질 수 있는 기념 사업을 펴기로 협의하고, 정부와 민간 차원에 30여종의 기념행사를 갖기로 했다. 민간 차원의 행사로서는 미술전, 사진전, 음악회, 의상 • 매듭전시회, 예술단 공연, 자매결연, 운동회 등등이 있고 정부 차원의 행사는 새로운 도로, 광장의 명명식, 세미나의 개최, 기념담배의 발매 정도가 고작인데, 행사 중 가장 돋보일 수 있는 행사가 우표전시회였다.
이러한 기념행사들을 각기 전문 소관 부서별로 개최하기로 하고, 작년 9월 외무부가 종합하여 시행하게 된 것이다. 민간 기념행사는 대한항공 사장이 사업단장으로 추대되어 여러 행사를 시기적으로 조정하고 있다.
체신부가 다른 나라들과 함께 우표전시회를 가진 일은 있으나 이번처럼 단독으로 외국에서 주최하기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세계에서 문화 수준이 가장 높다는 파리의 한복판에서 개최한다는 것은 여간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동서문화의 차이가 있어 아무리 프랑스의 문화 수준이 높더라도 우리의 고유 전통문화와는 다른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것을 보인다는 점에서는 꺼릴 것이 없겠으나, 문화 유산을 보존 관리한다는 보호 측면과 그 양적인 것에는 비교도 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 우표를 갖고 우표 속에 담겨진 한정된 그림으로 한국의 문화와 발전상을 한 눈에 보여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파리시내 전체가 한개로 뭉쳐진 조각예술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중 한채의 건물 200평에 전시실을 꾸미는 것이 그들 눈에 뜨이기나 할 것 인지, 흔히 쓰는 말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 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더우기 우표 한 가지만 놓고 보더라도 프랑스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서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전시회를 개최한 우정박물관 현관에서는 기념우표를 판매하고 있는데 성인 수집가들이 하루 종일 그치지 않았다. 눈여겨 보아도 우리와 같이 우표를 전지로 사는 사람은 발견할 수 없었다.
거리에는 거창한 우표상들이 눈에 뜨일 뿐만 아니라 시내의 공원길에서는 1주일에 세번씩 오전에 노점우표상이 시장을 이뤄 외국 수집가들이 이곳을 즐겨 찾기도 한다고 한다. 이러한 점들을 일찍 간파한 북한은 자유진영에 그들 우표를 가지고 체제 선전을 하기 위한 거점도시로 이용하고 있는 곳이 바로 파리이기도 하다. 저명 신문 잡지에 우표에 관한 유료 광고를 내기도 하고 영세 우표상을 유혹하여 북한 우표를 싼값에 대량으로 판매하고 있으며 국제우표전시회에 내보내 북한 부스를 차려 놓고 우표 판매를 대행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하에 있는 파리에서 우표전시회를 개최하면서 우표를 통해 한국을 알린다는 것이 매우 뜻있고 보람된 행사라고 생각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하니까.
우편사료의 전시에 역점
파리에서 가장 중심가라는 몽빠르나스에 위치한 프랑스 체신성 산하의 5층짜리 우정박물관 아래층 240평 규모의 전시홀에서 지난 5월 27일부터 6월 16일까지 3주간, 민간우취가 출품의 17작품 106틀과 우표과에서 만든 83틀의 우표액자를 주종으로 하여 프랑스와 관련한 우정 사료, 그리고 한국을 소개하는 사진 패널을 조화있게 진열 하면서 이를 다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구분 분류해 보았다.
전시 기획은 먼저 한국의 우편사를 짧게 소개 하면서 우편을 통한 한국과 프랑스와의 인연, 그리고 전문 우취가들이 평가할 수 있는 전문 우취가 작품과 아마추어 수집 가격인 일반관람객을 위해 체신부가 비전문가의 작품을 별도로 기획 제작하였다.
전문 수집가의 작품만을 전시하면 수집가 아닌 일반 관람객들은 너무 어려워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번 전시회는 전문 수집가나 일반 관람객이 모두 관심을 갖게 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또한 알맹이 있는 전시회가 되도록 우표는 아니 지만 우표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우편 사료들, 즉, 한국의 우편사와 프랑스와 관련된 사료를 골라 입체적으로 전시하였다. 또한 이 전시회개최 목적이 우표를 통한 국위 선양이기 때문에 한국의 발전상을 알리는 데 역점을 두었다.
과거관에서 미래관까지
전시실 문에 들어서면 가장 눈과 가까운 곳에 한국의 서울, 그리고 프랑스의 파리를 표시한 대형 세계 지도를 내걸었다. 외국에 나가보면 한국이 어디 있는 나라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전시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한국의 위치를 쉽게 알려 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전시장 중앙에 한국의 인상을 강하게 심어 줄 우리의 전통 기와집을 주된 심볼로 하여 지어 놓았다. 이 기와집 내부에 태극기와 프랑스기를 나란히 세워 놓고 이와 간격을 두고 100년 전에 체결한 한불수호조약 원문을 와이드컬러로 튀어나오게 하여 100년 전 두 나라가 수교된 인연을 상기 시켰다.
다음으로 2mx2m의 봉덕사종의 대형 사진을 붙인 벽아래에 한국의 아름다운 4계절, 국화인 무궁화꽃, 찬란한 금관, 세시풍속, 구식 결혼 풍속, 신나는 농악놀이, 연등행사,향원정, 설악산 절경 등 와이드컬러쇼케이스를 깔아 놓아 한눈에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지닌 나라임을 알 수 있게 했다. 굳이 에밀레종을 내세운 것은 한국에도 1,500년 전에 이렇게 정교한 주조 조각품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시키기 위함이었다.
이어 주전시실인 과거관 • 현재관 • 미래관 중 과거관에 들어서면 봉수대의 모습과 우역 • 파발 제에서 근대식 우편제도가 창시된 1884년 당시의 한국의 우편제도 창시자, 우정총국, 최초의 문위우표 등등의 사진과 당시에 사용한 일부인 • 관인 • 인쇄용 괘판 • 양식 • 휘장 • 우편규칙 등등의 사료 실물을 쇼케이스에 담아 놓았다. 여기에서 빼어놓을 수 없는 것은 30여종의 우편사료 가운데 1898년 프랑스 체신성 직원으로 있으면서 한국에 고문으로 고용되어 와서 우리나라 국제우편제도를 자문했던 클레망세라는 프랑스인의 기록물들이었다. 클레망세와의 고용계약서, 우편 작업을 지켜보는 사진, 그의 강의 노트, 외국우편 개시 안내서 등은 프랑스 관람인들의 많은 시선을 끌었다. 이 사료의 준비는 체신부 정책자문위원 진기홍씨의 아이디어와 도움에 힘입은 것이 었다.
이어 한국의 민화우표, 한국의 전통의상우표, 한국미술5천년우표 작품순으로 과거관을 엮어 나갔는데, 이 장면에서 금관 • 귀걸이 • 탑 • 토기 • 도자기 • 불상 • 팔만대장경 등 정교하고 아름다운 한국 예술품들의 모습에 매혹되는 관람객들의 얼굴을 읽었다. 또한 자랑스러운 한글과 세종대왕우표, 이순신과 철갑거북선우표 등으로 과거관의 전 벽면을 장식한 한가운데 홀에는 전문 수집가들의 작품을 진열하였다. 한국 최초의 발행인 문위 우표를 비롯한 구한국시대의 우표작품들이었고, 프랑스인 클레망세의 건의에 따라 프랑스에서 디자인하여 인쇄하여온 일명 독수리우표 13 종과 관련한 우표 앞에서 관심들을 보이기도 했다.
현재관으로 자리를 옮기면, 한국의 종교와 종교관계 우표 작품이 소개되었는데, 불교문화가 형성된 고려말까지의 한국의 모습, 기독교와 천주교의 전래, 특히 1984년에 교황 바오르2세가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의 방한기념우표를 위시하여 당시 103위 시성식을 집전한 여의도광장에 운집한 카톨릭 신자들의 사진과 함께 구성한 작품은 프랑스 대다수인이 카톨릭 신자인 것을 감안 해서였다. 다음으로 한국의 관광우표와 관광지 사진들을 조화시켜 만든 작품들이 「현재의 장」을 황홀하게 꾸몄고, 연하우표 작품에 이어 한국의 동 • 식물우표 작품을 관람할 때에는 사전에 녹음 해 간 뻐꾹새 소리의 경쾌한 방송 효과가 관람객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현재의 장」에서 민간 우취가 작품인 참전우표틀 앞에는 프랑스군이 UN군으로서 6 • 25 때 참전한 것을 기념하여 발행한 우표인 것을 설명해 줘 관심을 끌었다.
「미래의 장」에 들어서기 전에 적은 공간에 미니 영사실을 꾸며 VTR 필름을 앉아서 관람하도록 했다. 쉬는 시간에 한국을 재미있게 알리고자 한국의 전통문화, 발전상, 88올림픽, 관광지 등 테이프를 연속으로 이어 돌렸다. 테이프는 현지의 문화원에서 빌렸다. 우표가 너무 정적인 것이 어서 동적으로 분위기를 바꾸어 보려는 착상에서 였다. 단체학생들이 담임선생과 함께 관람도 하고, 노부부가 손을 꼭 맞잡고 앉아 테이프가 마지막까지 돌아가도록 지켜보는 인상적인 모습도 보였다.
「미래의 장」에 들어서면 한국이 많은 국제기구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모습을 담은 수십종의 우표들, 즉, UN 창설, ITU ,UPU , 라이온즈, 보이스카웃, JC, ANOC 등 한국이 국제기구를 통하여 전 세계 많은 나라들과 협력관계를 유지 하고 있음을 과시했고, 오늘날 눈부신 한국 경제의 발전상을 알리기 위해 우표와 함께 자동차 생산공장, 조선 광경, 6천도의 쇳물 포철, 동양 최대의 가전제품 공장 전경, 정유, 가스, 댐 등의 사진을 곁들였다. 이들의 웅장함에 아마도 프랑스인들은 한국이 오히려 프랑스보다 더 발전된 나라라고 느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끝으로 88올림픽이 서울에서 개최됨을 알리는 대형 사진으로 주경기장을 뽑아 중앙에 붙인 후 좌우로 현재까지 발행된 88올림픽우표와 초일봉투,맥시멈카드 등을 함께 전시하여 피날레를 장식했다. 88올림픽 때 문화행사로 가질 세계올림픽우표 전시회 개최와 이에의 초대도 잊지 않았다.
치밀한 사전 준비
이 전시회를 준비하기 위해 지난해 9월부터 어떤 우표를 갖고 어떤 방식으로 작품올 꾸미고 제작할 것 인가를 검토하였다. 우표 작품은 국내에서, 그밖의 구축물들은 현지에서 만들도록 구상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표 작품은 국내가 아니면 만들 수 없고 구축물들은 부피와 무게가 엄청나 운송료가 대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 우취가의 작품은 우취가들 중 이 행사 개최의 취지를 잘 이해하여 주고 개인의 이해보다는 나라 일을 더 소중히 여기는 뜻있는 이들의 협조로 이루어졌다. 체신부 제작 작품과 사료들을 바삐 발송을 해놓고 현지 준비차 파리로 뒤따라 갔다. 전시장 안에서는 내부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는데, 프랑스인들이 일하는 것은 꼼꼼하고 빈틈이 없었는데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일을 하지 않았다. 개관일이 임박해 시간외근무를 부탁해도 마이동풍이었다. 아침 8시에 출근한 날은 오후 4시에 일을 끝낸다. 오후 4시면 대낮이다. 파리는 오후 10시나 되어야 어두워지니까 시간외 나 휴일에 일한 것은 우리와 같이 간 한국인뿐이었다.
어느날 준비작업 중인 오후 2시경이었다. 건물 전체에 요란한 비상벨이 진동하였다. 박물관 건물내의 모든 사람은 급히 밖으로 대피하라는 명령이었다. 방금 전시장을 폭파하겠다는 괴전화가 걸려 왔다는 것이다. 쫓기듯 건물 밖으로 나오자 마자 경찰들이 까맣게 몰려왔다. 이제까지 박물관 폭파 위협 전화는 처음 있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삼엄한 경비망을 쳤다. 겁도 났지만 공사 준비 작업이 늦어지는 것이 걱정스러웠다. 직감적으로 북괴가 우리 행사를 망치려고 방해공작을 하는구나 싶었다. 건물 구석구석 수색작업이 끝난 후 경비만 강화시킨 뒤 일은 계속됐다. 한편으로는 우리 귀중한 물건에 대한 도난의 걱정이 덜어지고 이로 인해 선전이 잘돼 관람객이 늘었으면 하는 욕심도 생겼다. 그러나 끝내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아니했고 누가 괴전화를 걸었는지 밝혀내 지도 못했다.
피가로지에 장문의 기사 실려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현지 한국문화원과 박물관장에 부탁하여 프랑스 최대의 르몽드지와 피가로지, 국영 TV 기자들과의 회견 교섭을 의뢰, 이틀 뒤 한식으로 점심을 나누며 전시회 내용을 홍보하였더니 이를 두 신문과 TV에서 보도해 주었다. 국영 TV 에는 대담방송 가운데 2~ 3분 동안 간단히 전시가 있음을 소개했고, 르몽드지에는 전시계획을 발표했고 피가로지는 6월 2일자의 우취란에 「한국 우표전시회가 파리에서 」라는 제목하에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었다.
“6월 16일까지 우정박물관에서는 프랑스와 한국 —— 정확히 말하자면 14세기부터 이씨왕조가 지배한 한국의 옛 왕조와의 외교관계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전시회가 열린다. 이 나라는 대한 제국이 되었다가 중국과 일본의 세력다툼의 틈바구니에서 1910년 일본에 의해 완전히 합방되었다. 따라서 일본 우표가 1945년까지 유통되었다. 우표 수집가들에게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 일어난 사건들을 상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소련의 지배하에서 북한이 발행한 우표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을 선전하기 위해 몇종의 책에 30여페이지에 달하는 카탈로그를 발행했다. 그에 비해 한국의 활동은 그리 활발했던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와서 주최하는 우표전시회가 있으므로 이를 관람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이 전시회에서는 수백 종류의 우표를 볼 수 있다. 주제에 따라 분류되어 5000년의 예술과 민속 풍물을 보여 준다. 무덤에서 발견된 보물류와 탑류, 도자기류, 그림류, 의복류, 동물군과 식물군…. 실제 사료의 전시와 다수의 사진들이 이 전시회를 예외적으로 완벽하게 해 주고 있다.
우정박물관에서는 소인이 찍힌 한국 우표를 판매할 예정이다. ”
한국의 특파원들과도 만나 전시장 관람과 홍보를 요청, KBS와 MBC에서 5월 28일 저녁 9시 뉴스에 방영되도록 인공위성을 중계로 파리에서 전파를 띄웠다. 국내 일간지들도 파리발 기사로 한불수교 100주년 우표전시회를 활자화했다.
개관일에는 프랑스 체신성장관과 주불한국대 사를 비롯하여 프랑스의 문화계 인사, 언론인, 우취신문 및 잡지사 기자, 우취가, 우표상, 한국 특파원, 교포, 한국 파리지사 임직원, 체신성 간부 등 300여명이 참석하였다.
전시장내를 먼저 관람한 후 12분간에 걸친 체신성장관의 스피치는 온통 한국 발전에 대한 찬사와 훌륭한 우표전시회에 대한 칭찬이었다.
참관한 프랑스인들은 입을 모아 “우표가 이렇게 한 나라의 모든 역사와 문화, 그리고 발전상을 보여 줄 수 있게 할 수 있는 것인지는 처음 알았다. ” 또한 국내외 많은 인사들이 “이제까지 한국이 프랑스에 와서 가진 어떤 행사보다도 가장 훌륭했다.”는 격찬을 아낄 줄 몰랐다. 이는 오직 이 행사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음으로 양으로 지원을 아끼지 아니했던 모든 이들의 덕분이라 생각되어 여기에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