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
“오래 볼수록 희한하게 끌리더라고요. 이런 게 인연이구나 싶었지요.” 어느덧 결혼 8년차 부부가 됐다니 세월 참 빠르다. 장지연 씨는 2003년 택시운전기사인 남편 송용길 씨와 결혼해 명철·미선 남매의 엄마가 됐다. 그리고 머지않아 학교에 입학할 자녀를 둔 학부모로서 다문화사회가 급속도로 진행 중인 한국의 변화에 대한 관심은 점점 깊어만 간다. 일하는 엄마를 도와 동생을 잘 돌보고 심부름도 곧잘 하는 명철이는 요즘 그림 그리기에 푹 빠져 있다. 아직 어린 미선이는 한국어는 물론이고 베트남어도 곧잘 알아듣는다. 장지연 씨는 이미 현실인 다문화사회를 이끌어갈 힘은 ‘다름’을 인정하는 교육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베트남에 있는 외할아버지, 할머니와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틈틈이 말을 가르쳤지요. 한국어를 보완해주면서 부모 나라의 언어까지 가르치는 특성화교육이 한국인이 갖지 못한 언어와 문화의 다양성을 개발하고 미래의 동력으로 키울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웬만한 건 다른 엄마들만큼은 한다고 자부하는데, 아직 한국어 실력이 미흡해 숙제 검토를 잘 못해줘 속상해요. 그래도 주변에서 좋은 분들이 두 팔 걷어붙이고 많이 도와주셔서 한결 마음이 놓여요.”
서로 돕고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모습은 지구촌 어디든 다 똑같은 것 같다며, “좋은 엄마·좋은 아내·좋은 이웃으로 살다 보면 코리안 드림쯤이야 대수겠느냐?”며 너스레도 떤다.
이민자들을 위한 지원책 다양
장지연 씨는 같은 처지의 이주여성들을 보건소나 각 지역의 지원센터로 데려가 “이렇게 좋은 지원책이 많으니 꼭 활용하라”고 권하는 잔소리꾼으로도 유명하다. 2008년부터 우정사업본부가 전개한 다문화가족 안전망 구축 프로젝트와 멘토링사업도 손잡아 끌며 들들 볶아 똑소리 나는 활용을 거들었다.
“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가정폭력 예방 교육을 비롯해 폭력으로 피해를 입은 이주여성에게 생계비와 의료비를 지원하는 등 우정사업본부가 많은 예산을 들여 이주여성 정착프로그램을 지원한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낯선 땅에서 어렵게 적응하며 살아가는 대부분의 이주여성이 정작 자신을 위해 어떤 지원책들이 있는지를 잘 알지 못하거든요. 왜, 한국 시조인 단군 할아버지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고 말씀하셨잖아요.” 부당한 대우와 냉대 속에서 외국인 이민자들의 반한감정은 극에 달한 지 오래라고들 하지만, 적어도 장지연 씨 주변의 이민자들은 “한국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것만으로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는 닫힌 한국인들에게 이들은 조용히 경종을 울린다.
희망적인 코리안 드림의 꿈
장지연 씨는 오전에는 검정고시 학원에서 공부하고, 오후에는 ‘인천 여성의 전화’ 에서 이주여성을 위한 상담에 나선다. 우정사업본부의 지원으로 멘토링활동에도 적극 나서,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이주여성들에게 병원 가기 미션부터 시작해 장보기, 지하철 타기 등 소소하고도 꼭 필요한 일상 A to Z를 알려주고 있다. 한국어와 베트남어 통·번역 과정, 다문화 강사 양성과정을 수료한 그녀는 베트남 출신 여성끼리 도움을 주는 모임인 ‘궁남따이(다 같이 손잡자)’의 회장이자, 아시아 이주여성 다문화공동체마을의 보조활동가이기도 하다.
일 때문에 함께할 시간이 많지 않아 늘 미안하다는 다정다감한 남편은 그래서 주말만큼은 무조건 가족과 함께하려고 애쓴다. 얼마 전에는 호랑이해를 맞아 다 함께 대공원에 놀러가 백호의 기운을 담뿍 받아왔다. 큰 아들 명철이가 새로운 만화 캐릭터 그리기를 완성해 벽에 장식해둔 그림이 또 하나 늘었고, 막내딸 미선이가 어린이집 동생들을 잘 돌봐 선생님에게 칭찬받고 왔다는 사실을, 바쁜 아빠는 사려 깊은 아내 덕분에 고스란히 알고 있다. 무뚝뚝해도 속정 깊은 남편에게 잔소리 한번 할 일 없었다는 명랑·쾌활한 아내는 베트남을 경유해 이제 막 대한민국 인천에 터를 잡은 인생 여정이 너무나 소중하고 즐겁다고 했다. 더 높이 날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어깻죽지에 튼튼한 날개가 돋아나는 상상을 해본다. 미래를 이끌 아이들에게 살맛 듬뿍 안겨주기 위해 장지연 씨 부부가 바쁘지만 기쁘게 초능력을 발휘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