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하고 진행한 것까지 합치면 7천 번은 될 거예요”
아직 ‘프러포즈 플래너’라는 말이 생기기 전부터 다른 사람의 ‘프러포즈’를 ‘플랜’해왔었다는 황주원(30) 씨. 7천이라는 숫자가 나온 것을 계산해 보면 그가 인연의 끈을 매듭지어준 커플이 3천 쌍은 넘는다는 것인데 세상에 이 일 만큼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일이 또 있을까 싶다.
물론 이 중에는 결혼한 아내에게 다시 한 번 사랑을 고백하는 중년의 신사도 있고, 안타깝게도 청혼을 거절하고 도망가 버린 매정한 여인도 있다. 하지만 그는 분명 현실 속 ‘큐피트’다. 그가 쏜 화살을 맞고 이어진 사랑들이 더 많으니까.
이벤트 진행을 하기 전에는 늘 고객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래야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마음과 최대한 가깝게 보여줄 거예요”
60대 초반의 남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신은 5명의 여인을 사랑하는데 그들 모두에게 고백하고 싶다고. 그동안 그들이 힘들 때 옆에 있어주지도 못한 미안함도 크고, 그들에게 제대로 진심을 표현해 본 적도 없어서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도와달라면서 말이다.
“그분이 말씀하신 ‘여인들’은 나이대가 다양했습니다. 그분의 어머니, 장모, 아내, 그리고 따님 둘이 그 주인공이었죠. 알고 보니 그분은 20여 년을 외국에서 근무하다가 얼마 전 퇴직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신 분이었어요. 그분도 타지에서 외롭고 힘들게 보내셨지만, 아이들을 혼자 키운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이 컸고, 아버지하고 있는 시간이 영 어색한 딸들을 보니 마음이 짠했답니다. 본인 대신 아내 옆을 든든하게 지켜준 장모님과 어머니께도 감사하고요.”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의 진심을 가족에게 고스란히 전할 수 있을까. 황주원 씨는 그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그의 마음을 담아 쓴 편지를 다 읽기도 전에 그 자리의 모인 ‘그의 여인들’은 다 울었단다. 부인은 남편이 ‘이런 마음으로 살아왔구나’를 깨달은 순간이었다. 딸들은 주름이 자글자글한 엄마가 아빠에게 사랑 고백 받는 모습을 보고 ‘엄마도 한 남자의 여자구나’를 느꼈다. 오랫동안 표현하지 못한 그의 진심이 그 자리에서 통한 것이리라.
“본인이 하지 못하는 것을 대신해 그 사람의 마음과 최대한 가깝게 보여주는 것. 이것이 제가 하려는 일이지요.”
‘마음을 찍는 사진사’. 큐피트에 이은 황주원 씨의 두 번째 별명이다.
그의 다이어리에는 이벤트를 구상하면서 쓴 메모와 그림들이 가득하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아이템이 떠오르면 바로 다이어리에 옮겨 적는다.
섬세한 손길로 테이블 세팅을 하고 있는 황주원 씨. 이벤트를 할 때는 음악, 조명의 온도, 소품까지 완벽하게 조화를 이뤄야 최상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세 사람 모두 두근두근한 순간을 만들어야죠”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일상생활 속에서 일과 연관지어 생각하거나 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바로 실행에 옮긴다. 황주원 씨도 마찬가지다.
“이벤트 하면 무얼 떠올리세요? 보통 색색의 풍선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 아니면 촛불로 장식된 길 끝에 주인공이 꽃다발 들고 서 있는 것을 생각하지 않나요? TV 속에서 그런 장면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과연 내가 저런 프러포즈를 받으면 좋아할까?’하고요. 이미 많이 나온 것이잖아요. 색다르면서도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죠.”
한 남자 고객의 여자친구는 피아노 선생님이었다. 여자친구에게 청혼하고 싶은데 색다른 것을 원하는 고객이었다고. 남자에게 피아노를 배우라고 권했다. 짧은 시간이라도 연습을 해서 고백할 때 여자친구를 위한 연주를 해보라고. 처음에는 남자가 그거 말고 다른 것 없냐고 탐탁치 않아했단다. 설득 끝에 2달 간 그를 연습시켰다. 그리고 드디어 고백하는 날.
“신청자도 프러포즈를 받는 사람도, 그리고 기획하고 진행하는 저희 세 사람의 심장에 같이 불이 켜져야 해요. 물론 제일 두근거리는 사람은 고객이겠죠. 하지만 여자친구에게 드디어 그동안 몰래 연습한 피아노 연주 실력을 보여주려는 그 고객의 마음을 알기에 저희 역시 두근거렸어요.”
연주가 끝나자 그들의 두근거림은 여자친구에게로 전해졌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심이 담긴 프러포즈를 받은, 인생에서 최고로 행복한 날 중에 하나였을 테니까.
황주원 씨가 이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프러포즈 플래너란 직업은 생소했다. 그런데 요즘은 대학에 이벤트 기획이라는 전공이 생겼다.
“최선의 것을 드리자가 제 좌우명이에요”
음식도 궁합이라는 것이 있듯 이벤트도 내용마다 여러가지를 섬세하게 조율해서 궁합을 맞춰야 한다. 어떤 때는 가사가 있는 음악을 배경음악으로 깔아야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는 반면, 어떤 때는 경음악이 어울릴 때가 있다. 조명의 밝기도 마찬가지다. 장소를 유람선으로 할 것인지, 카페 옥상에서 할 것인지, 극장에서 할 것인지도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극장을 이용해서 하는 프러포즈 중에 ‘마이 스토리’라고 이름 지은 아이템이 있어요. 그동안 극장에서 연극이 끝난 후 하는 프러포즈는 많이 봐왔잖아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갔죠. 프러포즈를 신청한 고객에게 두 분의 ‘연애역사’를 들어요. 물론 신청자 입장에서 이야기가 나오겠죠. 그것으로 대본을 만듭니다. 배우를 정해 무대에서 그 때의 상황을 재연해요. 실은 그 때 그 뜻으로 말한 게 아니었는데 오해해서 싸운 부분을 연극을 통해 보니 상대를 이해하게 되고 감동이 커지죠.”
황주원 씨는 고객에게 상상 속의 봄날을 만들어 주고 싶은 것이 그의 마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영화 속 프러포즈 장면은 연출된 것이 많기 때문에 현실과 영화 사이의 간극을 메꾸는 것 역시 그의 역할이라고 덧붙인다. 동화와 현실 사이를 조화롭게 버무리는 솜씨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고객에게 최선을 것을 드리려는 마음 자세다. 그래야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만족하는 심리가 있다. 어렸을 때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엄마 대신 설거지하는 일, 아빠의 구두를 깨끗하게 닦아 놓는 것이 단지 용돈을 받기 위해서 혹은 칭찬을 받기 위해서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마음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백하는 것이 왜 감동적일까. 고백은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기 때문이리라. 처음 황주원 씨에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봐서 답하면 “어머 그런 일이 다 있네요?”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프러포즈 플래너를 꿈꾸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대학에는 이벤트 기획이라는 전공과도 생겼다.
황주원 씨는 이 일의 매력을 다른 사람에게 기쁨과 행복, 감동을 주는 것으로 꼽았다. 그는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성사시켰을 때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볼 때 제일 뿌듯하다고 말한다. 7년이라는 시간동안 고객에게 감동을 선사하면서 느꼈던 그 아름다운 두근거림이 무엇이었는지 우리도 한 번 경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 고백하기 좋은 계절, 가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