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출근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지
태성 씨가 들어서는 문 옆으로 작은 간판 하나가 보인다. 사회적기업가 인큐베이팅센터. 태성 씨는 사회적기업을 창업해 운영하는 청년사업가다. 회사명 콘삭스에서 알 수 있듯이 옥수수실로 친환경 양말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유일한 직원인 광우 씨가 출근하자 태성 씨는 곧 다가올 명절에 맞춰 출시할 선물세트에 대한 구상을 꺼내놓기 시작한다. 정해진 출근시간도 없으니 두 사람이 만나는 시간이 곧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파티션도 없는 책상 사이로 진솔한 대화가 오고 갔다. 태성 씨는 얽매이는 생활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해진 출근시간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출근은 꼭 지키지만 시간은 정해놓지 않은 것. 생활이 틀에 박히면 사고도 경직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태성 씨와 광우 씨가 게으르거나 태만한 것도 아니다. 정해진 출근시간이 없지만 오히려 하루 대부분의 시간에 일을 하고 있으니까 밤을 지새우거나 집 대신 가까운 사우나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날도 많다. 직원 수가 두 명뿐이지만 이미 조직문화에 대한 철학은 대기업 못지 않다. 사람들이 콘삭스를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사고 더 사랑해 줄 때 콘삭스의 조직문화도 꽃피우게 될 것이다. 선물세트에 대한 열띤 회의가 이어졌다.
왜 윤리적 소비가
필요할까요?
태성 씨가 어떤 기반도 없이 머릿속에만 있던 그림을 현실세계로 꺼내 놓을 수 있었던 건 윤리적소비에 대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윤리적소비가 사람들의 소비문화로 자리 잡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윤리적소비는 나를 위한 소비이기도 하지만 우리를 위한 소비이기도 하니까, 많은 사람이 함께 할수록 우리가 사는 공간이 더 좋아지는 거죠. 결국 모두 함께 잘사는 사회가 빨리 오는 것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처음에는 딜레마에 빠지기도 했다. 먹는 옥수수는 친환경 원료이긴 하지만 식량자원이기 때문이었다. “빈곤국가의 국민들에게 한 줌의 옥수수가 아쉬울 텐데 그것으로 양말을 만든다는 것은 윤리적소비 차원에서 생각해도 문제가 될 수 있었어요. 결국 국제옥수수재단을 통해 아프리카 빈곤국에서 생산성이 좋은 옥수수를 심는 데 수익을 사용하기로 결심했어요.” 콘삭스의 사회적 가치 실현은 이렇게 완성되었다.
스킬 보다 마음이
먼저입니다
광우 씨가 무언가를 그리고 있다. 익살스러운 표정이 재미있는 옥수수 캐릭터다. “콘삭스의 캐릭터를 만들고 있어요.” 지금까지 나온 콘삭스의 양말을 직접 디자인한 장본인인 광우 씨지만 디자인을 전공한 디자이너는 아니다. 그렇다고 전문적인 디자인 작업을 해본 경험도 없었다. 게다가 전공은 다소 일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사회학이다.
그런 광우 씨를 직원으로 채용한 태성 씨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디자인을 제가 할 수는 없으니까 디자이너가 필요했는데, 디자인에 앞서 콘삭스 사업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했어요.” 사실 옥수수 양말을 생각하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을 때 태성 씨 옆엔 3명의 동료가 있었다. “처음에는 모두 동의해서 함께 시작했는데 구상만 있고 실체가 없으니 하나 둘 떠나고 혼자 남게 되었죠.” 태성 씨는 경험을 통해 기술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걸 체득했다. 그래서 디자인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캠퍼스에서 디자인이 필요한 프로모션을 꾸준히 해왔고 무엇보다 공공의 이익을 생각하는 광우 씨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했던 것이다. 이렇게 첫 만남의 장소 순댓국집에서 지금의 콘삭스가 완성되었다.
옥수수가 양말이
되기까지
먹는 옥수수로 양말을 만든다면 십중팔구 내구성을 의심한다. 실제로 양말을 먹어도 되느냐고 묻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내구성은 기존의 면양말과 동일한 수준이에요.” 사실 태성 씨도 처음에는 양말을 만들 생각만 있었지 이렇게 혹시 일어날지 모를 문제에 대한 생각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일단 두 눈으로 옥수수 양말을 보기 위해 무조건 부딪혀가며 지금의 콘삭스를 만들어 온 것이다. 처음 양말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이해를 하고 나니 옥수수로 만든 실이 필요했다. 국내에 옥수수실을 취급하는 곳은 없었고 어렵사리 정부에서 실험용으로 다룬 옥수수실을 납품했던 업체를 통해 최소 구매수량에도 못 미치는 실을 겨우 구할 수 있었다. 패션양말로 콘셉트를 잡은 태성 씨가 처음 선택한 색은 밝은 머스터드 색이었다. 염색공장의 이해를 돕기 위해 겨자를 예로 설명했는데 결국은 겨자를 고추냉이로 착각해 카키색 실이 나왔고 그 실로 양말공장의 디자인을 적용해 최초의 옥수수양말을 눈으로 보고 또 만져 볼 수 있었다. “처음 양말을 보고 또 손으로 만지던 그 순간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었죠. 액자로 만들어볼까도 생각해 봤는데 그렇게까지는 못했고 그냥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지치고 힘들고 외로운 순간을 홀로 이겨낸 결실이라 열매는 더 달콤하다고 하지 않았나.
또 다른 정류장을 찾아서
수익창출과 가치창출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는 고민에는 정답이 없다. 물론 느리지만 정확한 좌표를 보며 걷는 태성 씨이기에 언젠가는 꿈을 이루는 날이 올 것이다. 지금까지 온 것처럼 앞으로도 가치를 알리고 수익을 창출하고 또 씨앗을 뿌려 사회를 치유해 나갈 선순환을 만들어 낼 것이다. 2013년 태성 씨는 한국 나이로 31살이 되었다. 직장생활을 하고 자영업도 해보고 또 이렇게 청년사업가로 살아오면서 많은 경험을 했지만 여전히 그는 젊다. 얼마 후에는 인큐베이팅센터를 나와 사무실을 이전할 계획이다. 직원도 채용한다. 식구가 많아지면 사업도 번창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그건 곧 윤리적소비를 알아주는 사람이 더 많아지고 윤리적소비가 늘어난다는 기대와도 같다. 옥수수양말이 많이 팔리면 옥수수는 더 많이 심어지고 배고픈 사람들의 허기를 조금이나마 채워줄 것이다. 양말 하나 샀을 뿐이지만 생명도 살릴 수 있는 것이다. 따뜻한 봄이 오면 태성 씨와 광우 씨는 새로운 정류장을 찾아 간다. 그들이 뿌린 가치를 키워 울창한 숲을 만들어낼 어느 희망의 정류장이 태성 씨를 기다리고 있다.
콘삭스는 100% 옥수수 섬유로 만든 착한 양말을 제작하고 있다. 수익금 일부를 빈곤국가의 옥수수 농가에 기부하여 자립을 돕고 있다. www.cornsox.co.kr